체크아웃 후, 경주에서 꼭 가보자고 이야기했던 불국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온 이후 처음이었는데, 어렴풋이 그때 기억이 났다.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불국사는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주차 요금은 들어가는 길에 현금으로 천 원을 받고 있었다.
주차 후 불이문을 지나 숲길을 조금 걸으면, 소나무 사이로 웅장한 불국사의 전경이 펼쳐진다.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호국사찰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석굴암과 함께 지정되었다.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하여 대규모로 중창하기 시작했다. 탑과 석교 등도 축조하여 오늘날 불국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출처 : 위키백과, 불국사 홈페이지]
불국사 하면 떠오르는 양측의 돌계단 다리(석교)가 있다. 오른쪽에 위치한 다리는 청운교와 백운교, 왼쪽 다리는 연화교와 칠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불국세계의 관문에 해당하는 자하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이 회랑에 둘러싸여 있다. 불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사는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물을 건너고 또 구름 위로 가야 된다고 한다. 즉, 청운교와 백운교는 부처님이 사는 곳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상징적인 장치로 볼 수 있다. 계단을 다리라고 표현한 것도 일반인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고는 국보 제22호이다. 다리는 현재 보존을 위해 통행을 금하고 있기에, 오른쪽 길로 돌아서 사찰 내부로 들어갔다.
불국사 대웅전을 마주 보고 섰을 때, 가운데는 통일신라시대 석등이 있고, 좌측에는 석가탑, 우측에는 다보탑이 있다.
(좌)석가탑 (우)다보탑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 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 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석가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불국사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탑과 다리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싶어, 검색을 통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비교하며 적어보았다. 그중 흥미로웠던 내용은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석굴암을 창건하였다는 내용은 삼국유사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의 규모를 보면, 한 나라의 국력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이다. 이걸 왕이 아닌 재상이 건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원래 불국사는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중창하였고, 석굴암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 혜공왕이 시해당하면서 통일신라의 왕위는 순수한 진골 혈통과 단절되어 버렸다.
후에 왕위에 오른 원성왕은 성덕왕과 경덕왕의 사당까지 없애버린다. 자신과 혈통이 다른 왕들을 추모하는 절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창건자를 재상 김대성으로 만들어 소문을 내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던 고려시대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설이다. [출처 : 위키백과]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내용들이 진실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역사 공부의 즐거움(?)도 다시 한번 느꼈던 불국사 여행이라고 쓰고, 답사라고 마무리해본다.
ps. 전날 마라톤 이후 아직 발등이 회복되지 않아, 석굴암은 다음번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