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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스토리텔러 Jul 07. 2018

#2. 어시스턴트 OOO의 일 1

뷰티 어시스턴트 정아름의 하루는 정말 길었다.


여전히 그 때의 설레임과 고생한 기억들이 교차하면서 아직 두 가지 생각이 날 들었다놨다 한다. 하나는 '열정페이'인줄도 모르고 왜 그렇게 미련하게 일 했을까? 그래도 그때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라는 것. 그럼에도 길고 긴 터널 속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걸 보니 후자의 마음이 더 큰가보다.



먼저, 뷰티 에디터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공채에 합격해 인턴 에디터로 그리고 정식 에디터가 되는 법.

두 번째는 어시스턴트에서 정식 에디터가 되는 법.(개고생을 해서 최소 6개월만에 눈에 들거나 아웃되거나)



2010년 12월 3일 '어시스턴트'로 첫 출근을 했다.

2011년 1월호부터 패션지 만드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처음 출근한 곳은 중앙엠엔비(현재 JTBC PLUS)에서 발행되는 패션지 중 하나였다. 현재 폐간됐지만 국내지임에도 뷰티 기사의 분량이나 파워가 꽤나 있고 그만큼 일의 강도가 쎈 곳. 뷰티 기자는 총 4명이고 난 경력 서열로 두번째, 세번째 선배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어시스턴트는 디렉터 선배 담당이고 막내 기자 선배는 정말 급한 일을 제외하고 어시스턴트의 손을 빌릴 수 없는 분위기다.


미팅 룸에서 잡지를 읽고 있는데 선배가 같이 일할 어시스턴트를 소개해줬다. 동갑이고 패션 디자인과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시, 정신 없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업무는 화장품 회사에 협찬 전화 돌리기. 그 달 선배들이 기획안 기사에 필요한 촬영용 화장품을 협찬 받는 일이다. 다행히 뷰티 홍보 담당자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굉장히 상냥했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좀 부끄럽긴 했지만 워낙 외향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콜 포비아는 없었다. 주의할 점은 에디터마다 협찬을 받는 스타일이 다른데 A선배는 그 달 신제품 중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만 콕 찝어서 받았고 B선배는 기사와 관련된 최근 아이템은 모두 다 받으라는 주위라서 협찬요청에도 센스가 필요하다. 대부분 B선배처럼 최근 3개월 출시된 제품을 모두 받는다.


오후, 하우스 스튜디오에 가서 화장품 정리하기.

매거진마다 하우스 스튜디오가 있는데 예전엔 잡지사에 함께 상주했지만 따로 존재해서 차를 타고 이동한다. 도산공원 근처 스튜디오였는데 도착해보니 엄청나게 많은 화장품 쇼핑백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백화점에서 애지중지하면서 쉽게 버리지 못할 쇼핑백들이 노다지라니. 흥분은 잠시 비닐 지퍼백이나 뽁뽁이에 쌓인 화장품을 꺼내 기사별로 정리해야 한단다. 2011년 1월에 출시되는 것들인데 한 선배의 분량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화장품 브랜드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것도 많다. 이렇게 브랜드를 눈으로 익히는 연습을 하는거다. 직접 세보지는 않았는데 거의 800개 정도 제품을 테이블에 펼쳐놓는다. 여기서 기사에 나가는 제품은 30개 남짓, 아니 때에 따라 이것보다 더 적게 책에 실린다. 이때 어시스턴트가 할 일은 기사에 최종으로 실리는 제품의 캡션을 쓰는 것인데 화장품과 함께 온 보도자료를 보고 <브랜드/제품이름/제품용량/제품가격>을 정리해서 선배에게 전달한다. 이런 촬영이 각 에디터 선배마다 매달 적게는 5꼭지, 많게는 8꼭지 정도 로테이션 되는데 선배의 셀렉이 끝나면 촬영이 끝난 화장품 몇 천개를 홍보 대행사 별로 화장품 회사별로 정리해서 마감이 끝나고 난 후, 그들에게 직접 가서 돌려주어야 한단다.


이게 어시스턴트 일의 전부는 아니지만 -

출근 첫 날, 어마어마한 화장품을 보고 놀랐는데(기뻐서) 이미 3개월 째 일을 하고 있던 다른 어시스턴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리고 내가 오기 전 친구가 그만둔 이유를 들었다.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인데 본인같은 고급인력이 만년 화장품 정리같은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싫고 잡지에 나오는 모든 화장품이 온전히 제품력을 바탕으로 실리는게 아니라 누구는 광고주라, 홍보의 힘을 빌린다는 것의 괴리감 때문에 실망해서 그만뒀다고. 그리고 워낙 짠 페이에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이 고생 뒤에 에디터가 된다는 게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숱한 어시스턴트가 그만두고 잘리고 절반은 물갈이 되기 때문에 에디터 선배들도 그닥 정을 주지 않는는다고. 이 말을 듣고 일단 체력은 자신있는데 앞으로 서울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부터 시작해서 많은 걱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끝 없는 '희망고문'이 시작되었다. 뭐야, 뷰티 에디터는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이지 로또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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