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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 Feb 05. 2021

집중력과 기억력, 그리고 회의록의 추억

퇴사 후 소회

 남들보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 이전의 사원들은 남다른 메모 요령을 갖고 있었거나 사전 지식을 공부해오지 않았을까 싶다. 뭐, 나보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좋아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그래도 나는 유난히 교육이나 회의, 실무 와중에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을 모두 기억하기가 매우 어려워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직장상사들이 몇 주간 매일 한 시간 정도씩 업무 교육을 했다.

구두로만 들으니 기억하기가 너무 어려워 메모를 하려 했지만 말이 빨라 전부 받아 적기가 힘들었다.

결국 녹음까지 해가며 겨우 내용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핸드폰의 녹음 기능에 의지했다. 

타 부서 상사들과 통화할 때면 말한 내용을 바로 잊어버려 자꾸 되물었다. 몹시 답답해 했다.

바로 뒷자리 상사들의 지시사항을 들을 때면 듣자마자 내 자리로 와서 바로 까먹지 않으려고 메모를 했다.


하지만 회의록 쓰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다.

거래처에서 회의를 할 때면 들은 내용을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적고 다음날 회의록에 정리해서 돌려야 했다. TV쇼 '굿피플'에서 한 인턴이 회의에 들어가 회의 내용을 적어내려가는 모습이 내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빠짐없이 다 적었을까. 회의를 하면서 나는 나름 많은 내용을 적어내려갔지만 막상 다시 보면 정리가 안 돼어 있었다. 매번 회의가 지옥같았고 회의록 쓸 때면 속으로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회의록을 메일로 뿌리고 난 뒤 일어났던 일들은 별로 상상하기도 싫을 지경.


황진규 저자의 '당당한 신입사원의 7가지 습관'에 의하면, 일을 잘 못하겠거든 형식이라도 확실히 안틀리게 내라고 했다. 권투선수 출신 사수님은 최소한 넘버링이랑 회의 제목, 그리고 본인이 회의한 내용을 적어서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해두었다가 집에가면 술 덜 깬채로 회의 내용을 들으며 회의록을 작성하곤 했던 내 뻘짓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막내사원이 모든 회의내용을 적게 시켰다가 자꾸만 못하고 온갖 욕을 다 들어먹으니 포기하고 내용을 각자 쓰게된 것이다.


그러다가 몇 달 뒤,

어느 회의에서 회의록을 썼는데 회의 내용이 다소 쉬웠는지 메모를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다.

메모 내용에 아직 휘발되지 않은 기억을 덧붙여 회의록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 잘했어요.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이후에도 회의 내용이 많아지면 내용을 많이 못적어 냈다. 내가 뭐 그렇지.

하지만 내가 능력이 안돼서 못하던 일을 무식한 노력 끝에 작게나마 해낸 경험 덕분에

예전보다 조금은 다른 사람들 말에 집중하고 기억하는 일은 ...







사실 여전히 자신이 없다....

부딛혀 가며 있는 힘껏 집중하고 기억하는 노하우를 쌓는 것 외에는 어쩔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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