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계속 보거나 읽고 있긴 한데, 그에 대해서 뭐라고 끄적이고 싶어 브런치를 켰다. 시간순서에 상관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1. 서울선언, 김시덕
6월의 알라딘 굿즈 '휴대용 선풍기'를 받기 위해서 책을 네 권정도 샀는데, 그 중 하나이다. 종이책을 늘리지 말자, 되도록이면 빌려 읽고, 아니면 전자책으로 읽자고 다짐하고 전차책 리더기까지 샀는데, 틈만나면 종이책을 사는 버릇은 아무래도 안고쳐지는 것 같다. 선풍기는 바람은 잘 나온다만, 소리가 너무나 요란하여 회사에서 켜고있기가 살짝 민망할 때가 있고, 사실 그렇게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라 쓸 기회가 많이 없다. 그리고 가방에 넣고 다니면 나도 모르는 새 자기 멋대로 켜져서 신나게 돌아가있을 때도 많다.
각설하고. 이 책은 문헌학자인 저자가 직접 서울에 살았던, 그리고 걸어다니며 답사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어언 9년여째. 언뜻 기억나는 이사만 대여섯번. 그러면서도 서울 구석구석 놀러다니길 좋아하고 누구보다 서울이란 도시를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 재밌게 다가온 책이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함께 볼 수 있어 더 재밌다. 저자는 최근 서울의 복원사업, 예컨대 식민지 경성의 또는 해방이후의 현대 건물을 허물고 조선왕조의 건물들을 복원하려는 풍조에 대해 퇴행적인 현상이라 비판했다. 별 생각이 없던 부분이라 더 와닿았다. 근현대에 지어진 건물에 현존하는 삶들을 지우고, 조선왕조의 그것을 복원하여 텅 빈채로 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음은 기억에 남는 구절들.
-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에 앞서 존재했던 건물과 도시 구획의 마지막 흔적인 길까지도 사라져 버립니다. 6.25 전쟁 때의 사례를 보면,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져도 길은 남았고, 그 길 옆으로 또 다시 건물과 도시 구획이 들어섭니다. 이렇게 보면, 대규모 재개발은 전쟁보다도 더 강한 위력으로 도시의 모습을 바꾼다고 하겠습니다.
- 그래서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한반도에 옛 문헌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탄할 시간에, 뭐라도 좋으니까 무언가 끄적이고 찍어서 남기자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남기는 문서와 사진이 백 년 뒤에는 21세기 초 한반도를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문헌이 될 것일 터이니.
[사실 지금 뭐라고 코멘트로 남기자고 결심하게 된 구절이기도 하다. 사실 기록과 흔적이 넘치는 시대에 내가 몇마디 보태는게 뭐 그리 귀중한 문헌이 되겠냐마는, 적어도 몇 십년 후의 나에게는 귀중한 문헌이 되겠지. 20대의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구나.]
2. 류이치사카모토 : LIFE 전, 류이치사카모토 : CODA
지난 5월에 문을 연 이후 아주 핫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중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 이토록 핫한 곳인 줄도 모르고 겁도 없이 현충일 오후에 전시를 보러 찾아갔더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에 치이느라 전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평일 낮에 반차쓰고 갈 것 아니라면.. 가서 이사람 저사람 치이고 카메라 셔터소리만 실컷 듣다가 돌아오게 될 것이다.ㅠㅠ 그치만 좀처럼 방문할 일 없는 의외의 위치인데다가, 리모델링한 건물이 아주 예쁘기 때문에, 이 공간을 방문한다는 것 만으로도 꽤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가격은 15,000원. 10월 14일까지.
라이프전을 본 이후, 곧 개봉한다는 류이치사카모토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마침 주말 날이 좋았고, 시간이 잘 맞아 명필름아트센터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초반엔 좀 졸았다. 아침부터 시험을 보고 가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워낙 잔잔한 극 분위기에 그만.
"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 paul bowles
피크닉 전시관에서 보고 인상깊어서 아이폰 메모장에 써뒀던 시. 난 이 시가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에 나온 대사라는 걸 몰랐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 장면을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말했고, 영화에선 이 장면이 영화 그대로 한 번,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과 함께 한 번 총 두 번이 나왔다. 곱씹을 수록 좋다.
3. 죽은자로 하여금, 편혜영
편혜영 소설은 처음이다. 표지와 페이지구성만 보고 샀는데, 단숨에 다읽었다. 내 취향의 소설이었다. 요 며칠 회사에 일찍 출근했다. 계속 비가 와서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그 덕분에 하루에 두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을 갖게 된 셈이다. 길지 않은 소설책 한 권을 읽고도 남을 시간. 그 시간을 이용해서 이 책을 읽었다. 요즘 회사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이다.
인상 깊은 구절을 업무수첩에 급한대로 써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옮겨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