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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Apr 04. 2020

타인의 취향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신조어나 유행어에 둔한 나는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다른 의미를 뒤늦게 전해 듣고는 약간 맥이 빠졌다. 개인적으로 라면만큼이나 지독히 취향을 타는 음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터라, 구태여 라면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둘의 취향, 혹은 취향의 공유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자는 추파는 얼마든지 귀엽게 받아줄 의사가 있다. 하지만 "라면 먹고 가는 일"은 서로의 라면 취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것은 "넷플릭스 보며 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경우가 많은 만큼 라면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음식이다. 어떤 종류의 라면을 좋아하는가부터 스프의 양은 얼마나 되고, 면을 넣는 시점은 언제이며, 어떤 부재료를 넣는지까지 라면은 극단적으로 개인의 취향과 창의성을 드러내게 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끓여먹는 라면이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이유도 끓이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취향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팀에서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구내식당을 뒤로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부식으로 점심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꽤 다양한 취향들을 확인할 수 있다. 라면의 종류는 매번 같은지 다른지-같다면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무엇인지, 라면에 넣어 먹는 것이 있는지-그 계란이 훈제란인지 반숙란인지, 김치를 곁들이는지, 햇반을 곁들이는지, 음료수는 무얼 마시는지까지. 나에게는 아직 낯선 팀원들이지만 이 편의점 점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재미있는 소재거리를 안겨준다. 나는 새우탕면으로 K과장이 얼마 전 딸을 위해 구매한 침대에 대해 들었고 비비고 만두로 Y대리의 옛 연인에 대해 들었다. 나는 계란찜으로 스페인 유학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개인적인 조직에서 편의점 점심 없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아마 조금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새로 팀에 합류한 나의 적응을 위해 이들은 소박한 편의점 오찬을 제공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든 환영 회식이 불가능해졌을지언정, 옆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금지되고 모든 귀가 열려 있는 구내식당이 아니라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으로. 설령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여도, 적어도 점심 식사만큼은 취향껏 제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자는 뜻으로.




진부한 클리셰처럼 느껴질지라도 나에게 라면을 먹는다는 것은 취향을 나누는 일이다. 

냉동실의 만두를 꺼내고 다진 마늘을 넣는, 그 모든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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