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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06. 2021

8. 유독 눈이 가는 아이들이 있나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위하여

M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하철은 복잡한 환승역에 정차했고 사람들에 떠밀려 비틀거리던 나의 무선 이어폰 한쪽이 거짓말처럼 M의 쇼핑백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하철을 내리던 그를 쫓아나가 불러 세웠다. 실례지만 당신의 쇼핑백 안에 나의 이어폰이 들어간 것 같다, 한 번만 확인해 줄 수 있나. M은 근처 의자에 앉아 쇼핑백 속 내용물을 꺼냈다. 드라마 대본, 복잡한 서류들과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이어폰이 나왔다. 괜한 호기심에 방송 일을 하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M은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전에 유사한 일을 했던 인연으로 일을 돕는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M은 주요 연예기획사의 프로듀싱 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한국어 외에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에 능한 그는 글로벌 팀을 이끌며 오디션을 기획하고, 해외 연습생들의 트레이닝을 총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손을 거쳐간 이들 중 누구나가 아는 유명 걸그룹 멤버들도 여럿 있었다.


반짝이는 보석들을 다듬어 별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그가 지켜봐 온 화려한 세계가 궁금해서, 나는 그 보석들 중 유난히 더 반짝이는 이가 있는지 물었다.


유독 눈이 가는 아이들이 있나요?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요

스타 지망생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요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요


M은 한 명의 눈에 들었다고 해서 그의 트레이닝 과정이나 데뷔에 영향은 크게 없다며 운을 뗐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트레이닝은 생각보다 굉장히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진다며, 엔터테인먼트사도 어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디자인과 출시를 할 뿐이라고. 일반 회사에서도 누군가의 일방적인 선호가 실제 제품 출시까지 이어지는 일은 매우 드물잖아요, 하는 부연설명과 함께.


“하지만 이제는 업계를 떠난 사람 입장에서 조금 더 편하게 말을 하자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눈이 가요. 나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꿈을 좇는 아이들은 아주 어른스러워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을 줄 알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내색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아니라 옆 사람의 감정까지도 생각할 줄 알아요.


저는 그렇게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10대 아이들은 조금은 아이답게, 슬플 땐 울고 지칠 땐 투정을 부렸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은 아이들을 보면 나는 지금도 불현듯 가슴이 철컹, 내려앉을 때가 있어요. 과연 어떤 일들이 저 아이를 저렇게 어른스럽게 만들었나 하고요.”


“그래도 연예인 지망생들은 자신의 의지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정한 것이잖아요. 말씀하신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꿈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내가 말했다.


M은 덤덤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혹은 그 꿈을 좇는 일이 좌절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죠. 다만 어른이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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