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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콩 Feb 05. 2021

7. 잡지를 구독해본 적 있나요?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견디는 법

K는 한눈에 보아도 세련된 사람이었다. 층 없는 단발에 높은 굽 부츠까지, K의 정량적인 환경들을 설명하는 수식어들로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 요소들을 이질감 없이 매치하는 사람이었다. K는 자신이 가진 물건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었고, 타인이 애정을 갖는 것들을 재빠르게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소지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내가 자신의 수첩에 흥미를 보이자 K는 얼마 전 잡지를 사자 부록으로 딸려 온 것이라며 웃었다. 잡지를 '샀다'는 것은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일 터. 나는 어쩐지 그녀가 잡지를 구독해본 적이 있을 것만 같아 물었다.


잡지를 구독해본 적 있나요?

시간을 내어 알고자 하는 영역이 궁금해요

당신의 취향을 알고 싶어요

여가를 지내는 방식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일본에 머무르던 때, 인테리어 잡지를 구독했던 적 있어요. 주로 원룸 인테리어를 다루는 잡지였지만 중간중간 원룸에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 상품 정보, 자취 생활 팁 등이 들어있었어요. 오프라인 버전의 '오늘의 집'과 같은 느낌이랄까? 한 달에 한 번 오는 그 잡지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해서, 눈 감고도 사진 속 인테리어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읽고 또 읽었어요.


제가 일본에 머물 던 20여 년 전에는 SNS도,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등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 도시에서 완벽한 이방인이었어요. 그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게 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묘약 같은 것이었어요.


혼자 살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고, 낯선 곳에 살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에요. 외로움이란 그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에요. 다만, 한국에서는 외로움을 타파할 많은 지략이 있었고, 외로움을 나눌 전우들이 있었는 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 나는 타인과 연결되는 대신,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데에서 위안을 얻었어요. 잡지는 그 유일한 창구였고요."


덤덤하게 말을 잇던 K는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다시는 잡지를 구독하지 않았고, 사실 자신은 인테리어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한다고, 나도 일본에서는 곧잘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었지만, 어째서인지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집이 아닌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는 것도,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 무수한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찾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요." 내가 말했고 K는 "그렇다면 요즘은 스타벅스에 가지 못해서 우리가 더욱 외로워진 것이겠군요."라고 덧붙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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