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유치는 가치 교환의 과정
(주로 숫자가 오가는) 투자 유치와 글쓰기가 무슨 상관이지?라고 묻는다면, 결국 투자 유치라는 것도 한정된 자원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선 상기시킨다. 나의 자산을 당신의 자산과 교환하자는 논리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설득의 기본이 되는 것은 (텍스트로 적어 내려가지 않더라도) 결국 글이다.
최근 IR 컨설팅 의뢰를 받으며 한동안 떨어져 있던 초-중기 스타트업들의 자료를 많이 보게 된다. 어느 정도 정량적인 지표들로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안정기에 접어든 업체들과는 달리 변수가 다양한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서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초기 스타트업들의 IR 문서에서 자주 눈에 띄는 실수 몇 가지를 공유 차원에서 적어나가고자 한다.
이하 적는 내용은 개인적인 소견을 적은 문서로, 심사역별로, 하우스별로 선호가 있을 수 있다. 보안 이슈로 예시 스크린샷을 첨부할 수는 없으나, 최대한 예시를 상상할 수 있도록 적고자 하였다.
1.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 도식
'그래서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건데?' 심사역들이 IR 발표 자리에서 알고 싶어 하는 핵심 질문이다. BM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하고, 그것이 한 장의 슬라이드 상에서 직관적으로 보여야 한다. 얼마나 많은 성장 기회가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을 수 있는지 모두 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창업자의 마음이겠지만, 복잡한 설명은 BM마저도 명확하지 않은 회사라는 인상을 준다. 정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면, 차라리 핵심 BM을 한 장에 강조하고 나머지는 다음 슬라이드로 나누자.
2. 설명 없는 서비스 스크린샷
간략한 헤드메세지와 함께 화면 전체를 채우는 스크린샷은 항상 당황스럽다. 내 서비스에 익숙한 창업자의 눈에는 각각의 그래프들이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보아야 하는지 안다. 하지만 심사역들 눈에는 "ㅇㅇㅇ,ㅇㅇㅇ,ㅇㅇㅇ 등의 데이터를 전달합니다"라는 헤드메세지가 있다고 해도 '처음 보는 제품 스크린샷'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 스크린샷에서 어디를 보아야 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최소한의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
3. 요약정리 없는 근거 자료 제시
창업자들은 정량적인 근거 자료 제시에는 익숙한 편이다. 다만 한 슬라이드 안에서 제시한 다양한 근거 자료들이 헤드 메세지 혹은 선셋 메세지 한두 줄로 뭉뚱그려진다면 심사역 입장에서는 해당 그래프가 무엇인지 읽기 위해 추가적인 정신력이 소모된다. 다시 한번, IR 자료는 직관적이어야 한다. 그래프 등을 제시할 때는 이 그래프가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정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은 아직 내가 논할 단계가 아니기에 생략한다. 다만 '투자 유치'에 한정한다면, 특히 초기 단계의 사업일수록 이는 프레이밍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관여할 수 있는 변수들은 무한하다. 그렇기에 '왜 이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도 높은지'를 각자의 프레임에 기반하여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투자 유치는 논리에 근거하여 납득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고, 디테일에 기반하여 이를 남에게 설득하는 '글쓰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