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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Apr 08. 2021

19일 차, 그림 보고 상상하기(퇴고)

신나는 글쓰기

여자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모자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상당히 진지해 보인다. 어떤 책을 읽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너무도 몰두한 표정이라 물어보기가 꺼려진다. 그녀 옆에 놓인 책은 표지가 보이는 채로 뒤집혀 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좌석과는 꽤 거리감이 있어서 표지의 글자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는 객실 출입구 근처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발걸음 소리가 거슬리지도 않는지, 한 번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사람들의 발소리에 눈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그만큼 읽고 있는 책이 재미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저렇게 무언가에 집중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저런 광경이 신기하고도 왠지 부러웠다. 


요즘 나는 어딘가에 빠져 살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은 풍경을 보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는데, 막상 내 꿈을 따라 화가가 된 지금은 딱히 내키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는 일이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생존을 위한 붓놀림을 행하고 있다.         


나는 시계를 본다. 다섯 시 삼십 분, 이제 해가 지겠군. 하는 순간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멀리 보이는 풀숲과 아치형 다리 사이로 반사되는 그을린 빛이 제법 아름답다. 모두가 한 마음인지 다들 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이 기차의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 탔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책을 접어두고 창밖을 내다보는 얼굴에 따스한 빛이 서린다. 문득 그녀를 그려보고 싶어 진다. 노을빛과 섞인 여자의 검은색 모자와 옷은 새까맣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 평화로운 분위기를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다. 지금 그녀를 그리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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