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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키 찾기

소소한 일상

by 향기나


요즘 키크기 체조를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젊은 날 162센티를 찍었던 나의 키가 점점 줄더니 어느새 160 아래로 슬쩍 내려갔다.

직장 다닐 때 컴퓨터로 일하느라, 섬으로 발령 났을 때는 오래 운전하느라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 허리 협착이 왔었다. 협착은 키를 줄인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브런치 글도 쓰고, 모닝페이지 글을 쓰다 보니 목도 어깨도 굽었다. 안 좋은 자세가 키를 줄였다.


세월이 주는 받기 싫은 선물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는데 성장판이 닫힌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듣게 된 키가 클 수 있다는 말은 솔깃한 유혹이었다. 아들이 보내온 키크기 영상에는 실제 어떤 사람이 꾸준히 체조를 한 결과 키가 커졌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 믿고 싶어졌다.

체조도 간단한 한 동작이라 따라 하기 쉽다. 발 뒤꿈치를 들면서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어 올린다. 이때 목도 같이 제쳐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거북목을 펴고, 굽어진 허리와 어깨가 펴지면 점차 숨은 키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찌뿌둥한 몸으로 키크기 체조를 100번 정도하고 나면 몸에 열이 나고 나쁜 자세를 할 때마다 구겨지고 힘들어했던 모든 장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이 나이 오면서 숨어버린 것이 어찌 키뿐이겠는가? 어렸을 적 추억들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끔은 과거를 소환해 다시 만나고 싶은 숨어버린 장면들이 있다.


6~7살 적 동네 살던 언니 K. 어느 눈 온 날 아침 밖으로 나가니 언니가 나를 부른다.

"○○야! 떡 먹어."

콘크리트가 많지 않던 시절 눈을 다져 시루떡을 만들어 내게 주며 말했다. 슬렁슬렁한 작은 돌들이 함께 있는 흙은 떡이 된 흰 눈 위아래를 덮고 있는 영락없는 팥고물이었다.

"우와! 언니. 난 진짜 떡인 줄 알았어. 언니 떡 만드는 솜씨 정말 좋다."

딱 그 눈 온 날의 한 장면만 기억 속에 있다. 다른 날은 어떤 기발함으로 언니가 날 놀라게 했는지, 무얼 하며 놀았는지, 언니의 얼굴은 어떠했는지, 숨어버린 K언니와 함께했던 추억을 되찾고 싶다.


37년 전,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그때. 그와 나의 숨겨진 마음을 다시 꺼내 열어보고 싶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은 연민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집착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우리들의 풋풋했던 시절. 그의 속마음으로 들어가 수줍어 말 못 하고 가슴으로 삼켜둔 빛바랜 말들을 꺼내보고 싶다.


딸아이가 2학년, 아들은 여섯 살.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기 싫어하며 같은 학교를 다녔던 딸과 함께 출근하던 나를 애먹이던 시절. 어린 아들의 숨겨진 마음을 열어보고 싶다.

출근길이 바빠 말로 안 될 때는 실랑이 끝에 윽박지르듯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떠나버린 엄마와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숨은 키를 키우는 체조처럼 어릴 적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도 다릴 수 있는 보약은 없을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바쁜 엄마의 과거를 치유하는 처방은 없을까?

숨은 키를 찾듯, 숨겨진 상처도 찾아 마음 빚을 갚고 싶다.

"아들! 그때 정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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