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역지사지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아침 1교시에 대학원 수업이 있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먹고 수업에 갈 참이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가게로 들어가 키오스크 주문을 하려던 찰나에 나는 바닥에 있던 물기에 그대로 미끄러져 넘어졌고 일 자로 쓰러진 나는 광대뼈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때 얼굴 한쪽이 얼얼했는데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저린 느낌이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구강안면외과.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턱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일단 수업에 양해를 구하고 로컬 병원을 찾았다. 겨우 수소문해서 찾아갔는데... 대학 병원 규모의 병원에서 구강안면외과 치료 수술만 봤던 내 우물 안개구리 시야가 발견한 것은 양악 수술처럼 성형을 전문으로 하던 로컬 구강안면외과의 실체였다. 대차게 치료 거절을 당하고 그제야 신경외과에 가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연계된 영상의학과에서 촬영을 하고 광대뼈 골절, 안와골절, 그로 인한 안면 신경 눌림을 진단받게 되었다.
다음날 안면 재건술 권위자를 찾아 빠르게 수술을 잡을 수 있었다. 마취는 당연히 전신 마취이다. 오른쪽 시신경이 눌려 눈도 잘 안 보이고 하는 와중에 지난 4년간 마취간호사를 하며 수없이 많은 환자를 프로포폴로 재우고 깨우던 나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내가 대형병원에서 마취를 받는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다. 수술 bed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를 거는 과정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나는 눈을 먼저 감고 내 팔 혈관에 차디찬 프로포폴이 주입되며 느껴지는 뻐근한 통증과 함께 편안하게 잠들었고 정말 1초 뒤에 깨어난 것처럼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정말 충격이었던 건 수술부위보다 목구멍(?)이 더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마취 동의서 작성할 때 깨어난 직후 목이 아프고 이 통증이 최대 1주일간 지속될 수 있으며 견디기 어려운 경우 탄툼 같은 가글을 처방해 달라고 주치의에게 말하라고 설명한다. 지난날의 내가 너무 형식적으로 이를 설명하진 않았는지 반성했다.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인후통이었다. 오히려 수술부위는 안 아픈 지경이었다. 너무나 목이 아파서 혹시 마취과 의사가 삽관을 여러 차례 시도한 건 아닐지 살짝 의심도 들었다. 당시에 무통 주사도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시간 주변으로 정확한 기억은 안경에 김서린 것 마냥 뿌옇다. 아마 마취약물이 가져오는 기억상실(amnesia) 때문이었으리라.
얼굴에 티타늄 플레이트를 박고 나서야 끝난 나의 수술 및 이후 그 회복기는 묘하게 맞물린 나의 대학원 졸업 시험과 함께 기억 저편에 역지사지의 죄책감과 자기반성, 그리고 끔찍한 인후통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칼.
스위스칼에 손가락이 거의 절단(near amputation)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과거의 나는 도대체 왜 케이블타이를 칼로 자르려고 한 것이었을까? 순식간에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검지에 피가 철철 흘러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119에 전화했다. 거의 울다시피 하며 이것이 완전한 절단인지 아닌지도 정확히 말하지 못한 바보 같던 나... 감사하게도 119 구급대는 나를 수지접합병원으로 데려갔다. 응급실 의사 앞에 앉아 그가 리토케인으로 내 손가락을 마취하고 급한 대로 겉표면만 봉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취 간호사로서 매일 피가 수 리터씩 쏟아지는 수술실에서 매일 생활했던 사람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 자리에서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다음날 응급실 의사가 권고한 대로 수지접합 전문 의사에게 진료를 보았는데 알고 보니 내 손가락 둔함은 신경 절단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신경 봉합술이 필요하고 설령 봉합해도 신경은 원래 회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봉합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자가 내 가치관이기에 상완신경총마취(BRACHIAL PLEXUS BLOCK, BPB) 하에 신경봉합술을 받기로 했다.
원래 내가 일하던 병원은 아늑한(?) 회복실에서 팔 마취를 진행한다. 겨드랑이나 목에 대바늘(진짜 연필보다 약간 짧은 수준이다)을 쑤셔 넣고 초음파를 보면서 여러 군데 약물을 주입하는데 그래도 최대한 환자가 편안하게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물론 그전에 팔마취 동의서도 따로 작성하고 팔마취가 잘 안 되었을 경우 전신마취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이 설명하는 일은 내 업무 중 하나였기에 나는 내가 수술받을 병원에서 누군가로부터 역으로 그 설명을 듣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하지만 마취 동의서 따위는 작성하지 않았다. 나는 춥디 추운 수술실 복도 한복판에서 팔마취를 받았다. 의사는 나에게 그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내가 마취간호사임을 나타내는 그 어떠한 것이 내 얼굴에 쓰여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환자가 행여 추울까 온장고에 보관했던 수술실 시트를 여러 겹 덮어주며 환자의 안위를 걱정한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어느 수술실에 누워 의사와 간호사가 잡담하는걸 라이브로 들으며 시트 한 장 덮지 못해 오들오들 떨던 대조적인 이 상황은 과거의 내가 그리 잘못 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