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였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결혼하고 아도 있는데 오빠가 뭐고? 남매도 아니고. 남사시럽구로. 남들이 뭐라하겠노? 오빠라 카지 말고 여보, 당신해라. 알았나?”
지금이라면 난 어머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말했을 거다.
“오빠가 뭐 어때서요? 전 이게 좋은데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그땐 신혼이었다.
시어머니가 “야야!” 하고 부르면 그냥 이유없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던 신혼 말이다.
어머님 말씀에 “네.” 하고 대답을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남편을 부르는데 왜 남들 눈치를 봐야하지? 내가 남편을 오빠라 하던 여보라 하던 남들이 무슨 상관이야?’ 하는 생각에 머리 위로 뿔이 들락날락 거렸다. 그렇게 며칠 씩씩거리며 코와 잎으로 스팀을 다 빼내고 가만 생각해보니 언젠가 호칭을 고쳐긴 고쳐야 할 거 같았다. 아이가 계속 커 가는데 계속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써 오던 말을 갑자기 안 쓰려고 하니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남편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게 되었다.
“오… , 옵…”
그럴 때마다 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찰싹 때려가며 “빠.”를 다시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남편을 오빠라 부르지 않는 거에 익숙해 질 무렵,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이제 남편을 뭐라고 부르지?
여보, 당신은 듣기만 해도 닭살스러운데. OO아빠? 으.... 이건 진짜 아니다.
혼자 있을 때 “여보옹, 자기야, 내 펴어언.” 하며 어떻게 부를까 연습을 하던 끝에 나는 자기야로 정했다.
며칠의 오글거림을 참고 나니 자기야라는 호칭이 익숙해졌다. 그 후 15년 동안 쭈욱 내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내 자기야다.
오늘 아침, 눈이 일찍 떠졌다. 시계를 보니 6시. 조금 더 자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책 들 중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열었는데 “당신.”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꽂힌다.
“당신. 당신. 당신.”
예전엔 남이 하는 말만 들어도 몸이 오그라들던 단어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라는 단어가 무게있게 다가온다.
당신. 당. 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믿는 신. 내 생에 절대 바뀌지 않은 제 1여당이 바로 남편이지 않을까. 힘들고 지칠 때마다 믿고 의지하게 되는 신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닌 내 옆에 있는 남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당신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는데 남편이 일어났다. 눈 뜨자마자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니 온갖 감정이 다 올라왔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고…
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책꽂이 책을 괜히 뺐다 꽂았다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우며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고 준비하느라 바빴다. 씻고 옷 입고 빵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마친 남편이 그제야 날 바라봤다.
“회사 다녀올게요.”
신발장 앞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남편을 지긋이 바라봤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남편에게 나도 인사했다.
“잘 다녀와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