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휴무일까지 이어져 황금연휴로 극장가의 성수기 가운데 하나인 어린이날 연휴에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영화 <범죄도시 4>의 스크린 싹쓸이로 인해 관객의 선택권이 없어졌다. 전체 스크린의 80%가량을 점유하며 관객들이 몰리는 황금 시간대는 물론, 대낮에도 1개의 스크린에 빈 좌석이 70%가 넘는 상황인데도 '닥치고 범죄도시 4 봐라'라고 하는 듯이 범죄도시 4' 외에는 걸린 영화가 거의 없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입장권전산망에 따르면 5일 기준, 관객수 69만 여 명을 모으며 <범죄도시 4>의 매출액 점유율도 85.4%를 기록해 박스오피스 독주 체제를 유지했다. 전국 2,800여 스크린에서 1만 5,465회가 상영됐다. 2위를 차지한 <쿵후판다 4>가 5%로 791곳 스크린에 1,534회 걸려 5만여 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14배 차이가 벌어지며 나머지 대다수 영화는 스크린 확보 경쟁에서 밀려 관객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물론 '마블리'로 국민 액션배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마동석의 프랜차이즈형 영화 <범죄도시 4>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낳으면서 엔데믹 이후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수 백 편의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는 배급사들이 <범죄도시 4>와 정면 대결을 하지 않으려던 탓도 있을 것이다. 연휴 직후인 8일에 개봉 예정인 '혹성탈출' 네 번째 이야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 앞서 개봉 일주일 만에 전체 80% 이상의 스크린을 싹쓸이하면서 전국 관객 800만 명을 넘겼다.
영화 <범죄도시 4>는 핵주먹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필리핀으로 무대를 옮겨 디지털 범죄자들의 소탕과정을 통쾌하게 그려낸 간다. 더욱이 이 영화의 소재로 온라인 불법도박의 '독과점'에서 힌트를 얻어 경쟁사 도박사이트로 위장한 마석도 일행이 벌이는 빌런 백창기(김무열 분)와 땀 냄새 진동하는 육탄 타격 액션은 연휴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하지만 과거 해외의 사례에서 보듯 문화적 다양성을 얻지 못하면 영화 생태계는 무너진다는 교훈을 익히 경험해 온 것처럼 이러한 스크린 독과점이 지속된다면 영화계가 공멸할 것은 자명해진다. 더욱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영관을 찾던 관객들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OTT 채널로 발길을 돌리면서 영화계가 위기를 맞이했는데 최근 OTT 구독료 인상 등에 반발하는 이용자들로 인해 맞이한 좋은 기회가 다시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이슈로 다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관객들이 체감하는 이러한 우려는 영화계에서도 현실화됐다. 최근 개막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인 지난 2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 단체 5곳이 공동 개최한 포럼에서 <범죄도시 4>의 스크린 독식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졌다. 마침, 이번 포럼은 ‘생존을 넘어 번영으로’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의 위기와 극복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제작사 하하필름스의 이하영 대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황금 시간대는 볼 수 있는 영화가 범죄도시 4뿐인데 이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가”라며 "극장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한 결과, 영화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영화 <파묘>의 예를 들면서 "1만 2000원의 적정가와 지금의 객단가를 비교하면 티켓 1장당 약 900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객단가 하락에 따른 ‘파묘’의 제작사 손실 규모가 105억 원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범죄도시4' 잔여 상영회차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논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라며 “영화계 문제들을 논의하는데 (상업성만 내세우는) 극장은 배제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객석에서 한 영화인은 “이런 상황에서 영화 제작하면 뭐 하나. 한두 편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는 판이 되고 있다”며 스크린 상한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20여 년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최민식을 비롯한 국내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지지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현지의 사무국으로부터 지지를 얻은 사실을 다 잊었는가?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146일로부터 76일로 대폭 축소돼 다국적 배급사들의 대작 외화들의 공습에 한국 영화를 의무 상영하도록 한 것이 스크린 쿼터 제도이다.
이제 우리나라 안에서 스스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반성을 통해 독점 영화의 스크린 상한제에 대한 논의가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대로 가다가는 관객들의 외면과 OTT의 공세까지 더해 한국 영화 생태계를 대표하는 충무로가 공멸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