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미디어 판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한 번씩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을 분석했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파악하는 것이 거의 필수다시피 했었다.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 디즈니(Disney), 뉴스 코레페이션(News Corporation), 컴캐스트(Comcast) 등등 이들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사업자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미디어판의 사람들에게 이들 기업들은 구글이었고, 애플이었고, 아마존이었다.
그러나 슬금슬금 이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국 시장이 커진 탓도 있을 것이고, 넷플릭스 등이 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시장과 북미 시장이 태생적으로 다른 시장이라서, 북미의 성공 담론이 한국에서는 재현되기 힘들다는 소위 디커플링이 심한 탓도 있었다. 북미시장에서는 가능한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서는 대부분 불가능한 것들이어서 약방의 감초처럼 언급했던 글로벌 시장 동향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긴 힘들게 되었다. 북미에서는 코드커팅이 대세가 되었지만 아직 한국은 조짐이 약하다 등등. 이런 저런 이유가 더해져 점차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AT&T의 Warner Media가 Discovery와 합병을 해서 Warner Bros. Discovery가 되든 말든, CBS와 Viacom이 합병하는가 싶더니, 소리소문 없이 Paramount Global이란 이름의 회사가 되든 말든 다들 관심이 없다. 저쪽 바다 건너 시장의 이야기일 뿐 우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투다.
그러나 그렇게 관심밖의 문제로 놔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단기적으로는 서로 모방할 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 등은 여전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들 기업들의 역사를 보면, 전 세계 미디어 산업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것들이 분명히 있다. 미디어 산업 그 자체가 기술 발전의 원동력은 아니지만, 미디어 산업 그 자체는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최전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의 변화는 그 자체로 트렌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 없어하더라도, 정리하고 분석해 두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성장사를 가볍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미디어 시장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가장 많이 인수합병을 단행하면서 카멜레온처럼 존재해 왔던 워너 브라더스(이하 워너)에 관한 이야기다. 워너는 다른 미디어 기업들과 달리, 강력한 CEO가 없었다. 뉴스코퍼레이션의 루버트 머독(Rupert Murdock), Viacom의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 디즈니의 밥 아이거(Bob Iger), 컴캐스트의 브라이언 로버츠(Brian Roberts) 등은 그 자체로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워너의 CEO에 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시대의 풍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기업이다. 역사상 가장 큰 실패의 사례로 기억된 기업이기도 하고, 역사상 가장 주목을 받은 기업이기도 했다. 따라서 글로벌 트렌드의 일환으로써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 글의 첫 주자로 워너는 손색이 없다. 동일한 시대 환경 속에서 개별 미디어 기업은 그 나름대로 대응해 왔으나 가장 극적인 것은 워너의 대응이었다. 그러기에 난 시장의 풍향계가 워너라고 생각한다.
워너의 시작부터 천천히 살펴보자.
워너 브라더스의 등장: 유성 영화 시대를 열다
Clockwise from top: Sam, Albert, Harry and Jack Warner. (credit: Moving Picture World)
워너 브라더스는 1923년, 해리, 앨버트, 샘, 잭 워너 형제가 설립했다. 23년을 기억하자. 이 시기는 무성영화 최전성기다. 1903년 에드원 S. 포터(Edwin S. Porter)의 12분짜리 대열차강도(the great train robbery)가 1억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이후로 영화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100여 개에 불과했던 영화관 (니켈로디언, Nickel + Odeon = 5센트 극장)이 20년대 중반에는 2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300여 편에 불과했던 영화 편수도 700편 이상으로 늘었다. 매주 2천만 명 정도가 영화관을 찾았다면 20년대에는 매주 8천만 명이 찾을 정도였다. 당시 영화는 미국 5대 산업 중의 하나였고, 연간 매출액은 10억 달러에 달했다.
이때 워너 형제들은 1903년 오하이오의 인구 6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 영스타운(Youngstown)에 니켈로디언인 케스케이드 극장(Cascade Theatre)을 열었다. 사업수단이 좋았던 잭은 여러 지역의 극장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그리고 23년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첫 영화인 Where the North Begins가 성공을 거두면서 제작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독일 세펴드였던 린틴틴(Rin Tin Tin)은 이 영화로 유명세를 얻어 향후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그럴수록 워너의 금고는 풍성해 졌다. 우스개 소리로 린틴틴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여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고, 이런 저런 풍문에 따르면 워너의 직원들은 린틴틴을 파산 구제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나온 사람들이 20세기 픽처스(20th Century Pictures)를 설립한다.
이어서 만든 영화 2편도 비교적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역사에 워너 브러더스의 이름을 선명하게 남긴 작품은 1927년 등장한다. 바로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The Jazz Singer)다. 초기 워너의 성공에는 잭 워너의 독선적이고 집요한 성격이 크게 작용을 했었다. 그러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의 성공에는 다른 형제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Vitaphone system from Museum of the Moving Image
사실 워너 형제들은 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거의 없었다. 다만, 샘 워너(Sam Warner)는 유난히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이 샘은 유성 영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비타폰(Vitaphone)이 등장하자 환호했다.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음향을 영화 필름과 동기화하는 것이었다. 샘은 이 기술이 영화 산업의 혁명이 될 거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작은 기업이었던 그들로서는 자기 자본만으로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여러 금융기관을 찾아갔지만 다들 거부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찾아간 곳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골드만 삭스였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JP 모건, 쿤 로엡(Kuhn, Loeb&Co.), 리먼 브라더스 대비 작은 금융사였다. 골드만삭스는 미디어 산업을 비롯한 신흥 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들에게 유성영화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워너는 반가운 선택이었다. 물론 이리재고 저리재는 기간이 필요했지만, 결론적으로 골드만삭스는 당시 금액으로 2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워너도 전 재산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최초의 유성영화로 일컬어지는 '재즈 싱어'였다.
재즈 싱어의 주인공이었던 알 졸슨(Al Jolson)의 "You ain't heard nothin' yet(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라는 대사는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화면 속의 인물이 직접 말을 하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워너 브라더스는 유성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기술 혁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외부 자본 유치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후 워너는 단순히 영화 제작사를 넘어, 영화 산업을 재편하고 이끌어 가는 핵심 플레이어가 되었다. 수직적 통합을 통해 영화 제작, 배급, 상영까지 모두 아우르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러나 워너 브라더스의 성공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대공황 시기를 극복하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남았는지, 또 이후에는 어떤 도전과 변화의 물결을 타고 성장했는지는 2부와 3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