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 중에서 가장 글로벌화되어 있는 콘텐츠가 음악(music)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국내라는 좁은 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콘텐츠는 영화다. 음악은 불법 유통 등 국내 시장에 닥친 수익성 위기를 Youtube란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며 글로벌 시장을 뚫어 극복했다. 여전히 북미 시장 등에서의 점유율은 5% 내외이긴 하지만, 공연 등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국내 시장의 성과를 넘어섰다. 덕분에 국내시장만을 염두에 두었다면 상상하지 못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 시장에 비해서 한참 뒤처져있긴 하지만 TV 영상 시장도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에 올라타면서 글로벌 인지도를 조금씩 확보해 가고 있다. 일본과 중국 등 극동 아시아 중심의 시장에서 적어도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북미 콘텐츠보다도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확률 게임으로 보자면 남미 시장도 조금씩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는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간간히 바람에 들려오는 소리에 따르면 제법 한국 영상물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갈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글로벌 시장 내에서 듣보잡 신세는 면했다.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국내에 갇혀 있다. 기생충을 비롯한 국내 영화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의 감격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산업적으로는 글로벌 지형에서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봉준호와 박찬욱 등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감독을 배출했지만, 그 자체가 국내 영화의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간히 최민식, 이병헌 등 국내 배우가 해외 영화에 출연한 경우는 있지만, 이 역시 다분히 개인의 진출일 뿐 산업의 확장은 아니다.
수치로 보면 2020년부터 국내 매출액과 해외 수출액의 격차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내 영화 시장이 축소된 상황에서 글로볼 OTT 판매액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착시일 뿐이다. 정상적인 시장이 지속되었다면 16:1 내외의 비율은 여전했을 것이다.
아래는 넷플릭스가 매년 공개하는 <Most Watched Movie>를 국가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431편이 넷플릭스에 공급되었고, 총시간량으로 보면 7위권이다. 일본과 프랑스와는 격차가 상당한 반면에 8위권인 폴란드와는 격차가 거의 없다.
이를 다시 넷플릭스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제공하는 국가를 기준으로 영화 편당 시청시간으로 재구성해 보면 한국 영화는 14위권으로 떨어진다. 이탈리아와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반면 15위권인 태국과는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위권 국가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편수가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편당 시청시간이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국내 영화의 자막을 살펴보기 바란다. 오리지널과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국어 자막뿐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영화를 국제용이 아니라 국내용으로 보고 있음을 반증한다.
마동석 주연의 <황야>(Badland Hunters) 정도가 겨우 100대 Most Watched Movie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141위에 <로기완>이 올라와있고, 영어자막 없는 2016년도 작품인 <스플릿>이 257위를 기록하고 있다. 24년 기준 한국 드라마가 100대 Most Watched TV Show에 15편이 올라와 있는 것과는 분명하게 대비되는 구조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뻔하다. 한국 영화 시장은 팬데믹을 겪으면서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중간급 영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만 고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지속적으로 한두 편 나오지만 200만 이상의 중간급 영화는 극장에서 사라졌다. 가격 인상 등 여러 이슈를 이야기하지만 OTT로 인해 극장 영화에 대한 고객의 눈높이가 올라간 탓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한국 영화는 철저히 국내 고객의 눈높이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콘텐츠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음악과 영상이 한국이란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했던 것처럼 영화 역시 물리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극장이란 플랫폼의 한계를 벗어나, 온라인 시장으로의 확장을 꿈꾸어야 하고, 그들의 선택을 받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진검 승부가 벌어지는 그 현장을 외면한 채 극장이란 오래된 플랫폼만 쳐다보아서는 국내용이란 꼬리표를 벗어내기는 힘들다.
이 맥락에서 음악 산업이 Youtube를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 확장에 베팅한 음악 산업
지금에서야 음악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노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과거로 돌아가보면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H.O.T., 잭스 키스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이 음반 판매를 통해서 매출을 높이던 구조가 2000년대 들어서서 무너졌다. 4,000억 원에 달하던 음반 시장의 규모는 2005년 2,000억 원 규모로 축소되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혼동기에 벌어진 일이다. 2000년 P2P 서비스인 소리바다가 등장했고, 디지털 음원의 불법 유통이 일반화되었던 시기다. 좀 더 편한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2002년 소리바다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음반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5년 소리바다가 합법화를 선언하며 유료 음악서비스로 전환되었고, 이 즈음 멜론과 벅스 등 다양한 디지털 음원 기반의 서비스로 시장이 변모했다. 물리적 음반이 물러나고, 디지털 음원이 힘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
이때까지 음악 시장은 국내용이었다. 국내에서 해외 음악은 소비가 되었지만, 국내 음악을 해외에 전달할 수단은 없었다. 우리 음악은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여전히 변방이었고, 한국어로 된 우리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Youtube의 국내 진출이다. 2005년 등장한 Youtube는 2008년 1월 co.kr 도메인을 등록하면서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동영상 플랫폼으로 네이버 TV가 압도적인 위세를 떨치던 시대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법 사람들을 모으며 주목받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용이 되지 못한 서비스였다. 2008년 고작 1백만 MAU를 기록했고, 2013년이 되어서야 1,000만 MAU를 기록했다. 네이버 전체의 MAU를 능가한 시점은 2018년 팬데믹 기간이었다. 2008년 국내 진출 당시 Youtube는 소위 '애들의 놀이터'에 불과했다.
음악사업자들은 이 '애들의 놀이터'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디지털 음원 수익은 2007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과거의 음반 수익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2005년 기준 음반 수익 2000억 원과 디지털 음원 수익이 500억 원 정도였다. 다행히 '보아'와 '동방신기'가 일본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능성이 조금은 엿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Youtube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SM, JYP, YG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Youtube는 글로벌 시장 진출의 도구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나마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음원 수익의 경쟁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전략 방향은 확연히 달라진다. 사람들이 음원 소비를 대체 수단으로 Youtube를 사용한다면 이제 겨우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음원 수익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동안 진출하지 못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신규 수익 창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흑과 백의 경계선 그 어딘가에 답이 있듯이, 음원 수익 감소와 신규 수익 창출이라 경계선 그 어딘가에 분명히 답이 있겠지만,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싣느냐에 따라 전략의 강도는 달라진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일부만 사용하는 서비스였고, 이제 겨우 스마트폰이 도입된 상황이라 대부분의 음악 청취는 download&play 방식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음원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수익 감소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 SM, JYP, YG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업로딩 하기 시작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등 당시 대표적인 K-POP 그룹은 YouTube를 활용해 글로벌 팬들에게 퍼포먼스 중심의 매력을 전달했다.
Youtube에 올인한 소녀시대와 현지 진출 전략을 세운 원더걸스
2009년, 소녀시대의 'Gee'는 K-POP 뮤직비디오가 글로벌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사례다. 귀여운 퍼포먼스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앞세운 'Gee'는 YouTube를 통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국내 최초로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 팬들의 관심에 그치지 않고, 다른 언어권 팬들이 자발적으로 번역 자막을 추가하며 글로벌로 확산되었다.
소녀시대의 성공은 YouTube를 활용해 음원 판매와 광고 수익뿐 아니라, 해외 공연과 글로벌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Gee'는 단순히 음악적 성공에 그치지 않고 K-POP의 글로벌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팬들이 조회수 경쟁 캠페인을 조직하며 팬덤 내 결속력을 강화한 점은 이후 K-POP의 팬덤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원더걸스는 미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영어 버전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YouTube에 공개했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K-POP 그룹 최초로 진입하며 역사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또한, 조나스 브라더스 투어의 오프닝 공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이름을 알리며 K-POP의 글로벌 잠재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원더걸스는 Youtube는 보조수단이었다. 북미 시장에서의 방송 출연과 오프라인 프로모션에 더 의존했다. 이는 YouTube가 중심이 되었던 소녀시대와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었다.
SM은 보다 적극적으로 Youtube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는 물론이고 라이브 방송, 비하인드 영상 등을 제작해서 팬들과 연결하고자 했다. 2015년 Youtube가 선보인 커뮤니티 서비스 이전에도 SM의 아티스트들은 댓글을 통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팬들은 서로 번역을 나누면서 서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팬덤이 바로 Youtube란 공간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소녀시대의 Gee는 글로벌을 목표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었다. 일단 Youtube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에 본격적으로 글로벌을 겨냥한 기획이 시작되었다. 2010년 8월 일본 데뷔 싱글로 일본어 버전의 Genie를 발표했고, 2011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SM 타운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미국 유명 프로듀서인 데티 라일리(Teddy Riley)와 같이 The Boys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2012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우연찮게 터지면서 Youtube는 국내 음악이 해외 고객과 만나는 수단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 뒤에 펼쳐진 K-POP의 성장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다. 영화는 가 보지 못했던 저 너머의 세상이다.
그래서
음악과 영상은 BM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음악은 음원 수익보다 공연 수익이 훨씬 크다. Youtube 등을 마케팅 용도로 활용해서 굿즈나, 공연을 통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이다. 반면에 영상 시장은 예고편 정도를 활용할 수 있을 뿐 전체 영상을 공개하는 순간 더 이상의 소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Youtube 등을 활용하는 데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음악 시장이 처음 Youtube를 활용할 당시에 공연 시장은 그다지 큰 시장이 아니었다. 음반 위주의 시장이었고, 그 시장마저도 성장 여부를 장담하지 못할 시장이었다. 역설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단위의 규모가 만들어졌고, 공연수익과 음원 수익의 성장도 이어졌다. 투입되는 비용이 높아지면서 음악의 수준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없던 다양한 방식과 시도가 국내의 특수성과 결합되면서 전 세계에 없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글로벌'이란 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2008년 SM의 시가 총액은 150억 원에 불과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가진 2023년 3월에는 3조 7천억 원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JYP와 YG도 조 단위 회사가 되었고, HIVE는 13조까지 기록했다가 24년 12월 현재 8~9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 영상시장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영상시장은 글로벌로 어떻게 갈 것인가? 현재 주어진 수단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뿐이다. 방송시장이 넷플릭스를 상수로 놓고 콘텐츠 판매 전략을 세우듯이, 영화도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상수로 두고 상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내 시장의 접근 통로로서 극장에서 해외 시장의 접근 통로로서 OTT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IP 등등의 이야기는 아직은 사치다. 국내 영화산업이 IP로 추가적인 수익을 확보한 예가 거의 없었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규모는 경미했다.
넷플릭스가 기꺼이 구매할 만한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영화 제작을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글은 KOCAF의 공식 매체인 KIWI에 게재된 글입니다. KOCAF는 한류 담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2024년 2월 서울에서 설립한 단체로 키위를 포함, 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 한류를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는 민간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