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에 갇힌 일본 영상 콘텐츠의 한계
한참 영상 시장 내에서 제작비 논쟁이 불거졌을 때다. 여러 언론들과 분석가들이 한국 콘텐츠의 제작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 넷플릭스의 콘텐츠 수급 대상국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비싸진 한국을 버리고 값싼 일본으로 가고 있고, 앞으로 이런 경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런 참에 흥미로운 기획물이 하나 등장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모인 방송협회란 단체가 있다. 이 단체에선 분기별로 <방송문화>란 학술지를 발간한다. 이 계간지 24년 겨울호에 실린 "일본 TV 드라마 제작비 현황"이 그것이다. 지난 1~20년 만에 일본 콘텐츠 시장이 한국의 레퍼런스로 등장한 신기한 기고문이었다. KDDI 특별연구원 조장은은 이 기고문에서 일본 시장이 제작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한국을 반면교사 삼아 급격하게 제작비와 출연료를 올리기보다는 TV 드라마만의 매력을 살리며 경쟁력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하고 분석했다. 기고문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의 제작비가 너무 비싸다는 주장을 철 지난 아무도 참고하지 않는 일본 시장을 빌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내 시장 분석가들의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작비가 치솟아서 일본 생산을 늘린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처럼 보인다. 확실히 Netflix Japan이 일본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편 수를 늘린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제작사도 넷플릭스가 일본 오리지널 공급 편수를 늘리면서 한국 콘텐츠 공급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기도 했다. (인과 관계는 무시하고)
이런 실수는 종종 있다. 현상은 읽고 해석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 본질은 사라진다. 드러난 현상의 발생 원인과 의미를 읽어내야 시장의 움직임과 방향성이 보인다. 일어난 일은 점으로만 존재할 뿐 앞 뒤를 연결하지 못하는 순간 갈 길을 헤맨다.
넷플릭스가 가격 때문에 한국 콘텐츠의 수급을 줄이고, 일본 콘텐츠를 구매한다고 주장하려면, 이 주장의 목적함수 즉 넷플릭스가 왜 한국 콘텐츠를 구매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누구나 인정하는 답을 말한다.
"한국 콘텐츠는 한국 가입자를 늘리는 수단이자 아시아 가입자를 확보하는 수단이다" 달리 표현하면 아시아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 한국 콘텐츠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럼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구매를 줄이고, 일본 콘텐츠를 구매한다고 주장하려면, 일본 콘텐츠로 아시아 시장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주장에 대해서 난 <애프터 넷플릭스>에서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조금 더 분명하게 살펴보자.
2024년 Netflix Japan이 제작한 오리지널은 TV Show와 영화를 포함해서 총 10편이다.
Love Deadline, House of Ninjas, The Parades (Movie), City Hunter(Movie), Tokyo Swindlers, The Queen of Villains, Beyond Goodbye, Love Village (Season 2), Last One Standing (Season 3), 그리고 Drawing Closer(Movie)다.
이 중에서 영화의 성과를 먼저 살펴보자.
1983년에 City Hunter XYZ로 시작해서 총 35권까지 출간된 City Hunter의 실시판은 일본에서 강한 성과를 보였고, 이어서 아시아 시장에서는 중간 정도, 그 외 지역에서는 작은 관심을 보였다. 이를 제외한 The Parades와 Drawing Closer는 일본 시장에서만 강한 인기를 보였을 뿐이다. 적어도 Netflix Japan 2024 movie lineup은 아시아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다.
이번에는 TV Show를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House of Ninja 정도가 아시아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였을 뿐 대부분의 일본 TV 쇼도 자국에서만 인기를 끌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24년 야심 차게 준비했던 넷플릭스 재팬의 오리지널 라인업은 House of Ninja와 City Hunter를 제외하고는 일본 자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City Hunter는 팬덤을 가진 망가 IP 기반이라는 것과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Ninja 정도가 유럽권에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애프터 넷플릭스>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 콘텐츠가 설사 국내에서 망작이더라도 동남아 시장 등에서는 일단 TOP10에 들고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를 왜 구매하는가? 에 대한 답이 한국 가입자와 아시아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한국 콘텐츠 대신에 일본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위의 성과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일본 콘텐츠 수급을 늘리는 것이 일본 내 가입자를 늘리는 목적이라면 해답이 될 수 있지만, 아시아 가입자를 겨냥한 것이라면 필패다. 절대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일본 콘텐츠 수급을 늘리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다른 이야기다)
그럼 일본 콘텐츠 수급을 늘려서 넷플릭스가 일본 내 가입자를 늘렸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대답은 이미 시장에서 나왔다. 2024년 넷플릭스의 가입자 규모는 1천만을 넘어섰다. 20년보다 2배가 늘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아마존 프라임을 넘어서 일본 내 1위 OTT 서비스라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조장은이 설명한 것처럼 방송사 카르텔에 지배하는 시장에서 방송사의 콘텐츠 수급이 자유롭지 못한 넷플릭스가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편수를 늘리는 방법뿐이고, 이 때문에 일본 콘텐츠 수급을 늘렸다고 봐야 한다.
설사 제작비가 너무 높아져서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버리고 일본 콘텐츠로 갔다고 하더라도 (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아시아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다시 한국 콘텐츠 수급을 늘릴 수밖에 없다. 현재 아시아에서 한국 콘텐츠의 품질과 역량 수준을 가진 나라는 없다. 심지어 10편 중에 한편 정도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히는 작품이 나오는 한국 콘텐츠 아닌가?
제발 우리 스스로 우리 콘텐츠를 일본 콘텐츠와 비교하는 우는 범하지 말자.
한국 콘텐츠는 북미 시장을 쳐다보아야 할 수준이다. 어느 순간에도 한국 콘텐츠의 대체 상품은 아시아 내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일본도 우리의 경쟁자는 아니다.
이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시장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조영신의 <그라운드 제로>를 열었습니다. 현장의 계신 분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로 미디어 시장의 방향성과 향후 전략을 논의해 보았으면 좋겠네요. 신청은 https://naver.me/xtgflFxq으로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