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목적은 회귀와 분류이다. 회귀란 특정한 값을 찾는 것이고 분류란 사물이나 이미지나 특정 현상을 구별하는 걸 말한다. 분류가 목적인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우리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이나 무형의 개념까지 구별할 수 있다. 주어진 데이터셋을 이용하여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은 잘 훈련시키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분류를 할 수 있다. 사람이 분류하는 능력을 훨씬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너무 정확하게 분류를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다.
어려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라고 7가지 색으로 되어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프리즘을 통해 투사된 빛을 보면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주황색과 노란색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물론 나머지 색도 그렇다. 실제 우리가 4K라고 하는 TV의 화면에 투사되는 색만 보더라도 인간의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색을 구별해서 디스플레이에 투영한다. 프리즘을 통해 비친 색은 매우 연속적으로 스무스하게 색이 변화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색은 연속적이며 색과 색을 정확히 구별하는 경계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무지개 색을 분류해서 7가지 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답이 아니다. 그래서 무지개색 분류는 이산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다.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나누어 보수와 진보로 분류한다. 과연 정치적 성향도 두 가지 이분법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개념인가? 좀 더 세밀하게 분류를 해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도를 두고, 그 외에 좀 더 세밀화하여 중도 보수, 중도 진보 등으로 분류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사람들 생각은 보수와 진보를 잇는 선 상의 다양한 위치에 존재한다. 따라서 정치적 성향은 몇 가지로 딱 끊어서 분류하는 이산적 개념이 아니고 연속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이분법적인 결정을 하도록 강요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험이 그 대표적이다. 맞고 틀리고 가 분명해야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보장된다. 찬성과 반대표를 던져야 하는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산적이 결정을 해야 한다. 도로에서 빨간 불에 멈추고 파란 불에 진행하는 규칙도 이분법적 사고이다. 결혼도 마찬가지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일단 결혼했으면 매리드와 싱글의 경계가 분명해진다. 판사들은 매일 2분 법적 결정을 내리는 게 일이다. 유죄와 무죄를 판정의 결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이라는 개념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또는 이산적인 분류는 사회의 규범이나 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다 보면 아군 적군으로 사람을 나누는 습관이 생긴다. 나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폐해 중 하나인 떼거리 문화는 편가르기 같은 이분법적 분류 기준 때문에 생겨난다. 학연, 혈연, 지연 등이 분류의 기준이기 때문에 불공정하고 부당한 결정이 내려지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
분류 기준이 잘못되면 분류 결과가 눈군가에게는 피해로 돌아온다. 막상 상대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한 두 가지 일로 쉽게 상대를 판단하는 성향이 생긴다. 하지만 그 분류 결과가 항상 옳지만은 않아서 실수할 때가 있곤 한다. 그래서 어떤 특정 사건이나 의견 충돌 등이 생기고 나면 사람들을 재분류하게 된다. 아군에서 적군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적군에서 아군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분류 습관으로 인해 난감한 경우에 부딪힐 때도 많다. 적군으로 분류된 사람이라고 판단되어 그에게 공정하지 못한 행동을 했는데, 막상 그 사람의 행동이 내게 도움이 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고 우리의 뇌는 다급하게 재분류를 시행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성숙하지 못해 아직도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아군과 우군으로 분류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그런지 대화를 할 때 까칠하게 굴거나 질문이나 대화에 시큰둥하게 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습관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구습을 타파해야겠다고 생각만 해오고 있었는데 시험삼아 주위 사람 분류 기준을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분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류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좀 엉뚱해보이는 다른 기준으로 분류를 해보면 어떨까?
주말 새벽마다 배드민턴을 오랫동안 쳐왔는데, 회원 수가 많다 보니 별로 말 한마디 섞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고, 땀을 같이 흘리며 치다가도 잔소리를 하거나 실수가 너무 잦거나 하면 괜히 보기 싫어진다. 그래서 말도 부드럽지 않게 하다 보면 사이가 별로인 사람들도 많다. 만나도 머리가 허연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야 응답을 할까 말까 하고, 절대 먼저 인사 한 마디 하지 않는 젊은 친구들도 있는데, 그냥 싹수없는 xx라고 치부하고 대화 한 번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동호회 회원들도 상당수이다.
일단 이들은 만나면 불편하다. 그러면 이들을 만나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분류 기준을 한 번 바꿔보자!
우선 당일 배드민턴을 칠 때 입는 유니폼 색을 가지고 2분법으로 분류해 보기로 했다. 간단히 짙은 색과 옅은 색 그룹으로 나누고 짙은 색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을 아군이라고 설정하고 그들과 운동이 끝나는 시간까지 살갑게 지내보자는 전략이다. 옅은 색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 중 설사 이전 기준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 있어도 그날만큼은 되면 되면 지내보는 게 분류 기준이다.
이번 주부터 이 농담분류 전략을 한 달 동안 고수해 보기로 한다. 정신병자 취급받을까 걱정 반 근심 반~
나도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