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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Nov 09. 2019

주식회사 남편, 직원은 나 하나

이거 진짜 엄청난 직장인데?

지난 주말, 커피 조금 흘렸다가 남편에게 또 한 소리 들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우리는 각자 마시고 싶은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해 들고 있었다. 신호가 꺼질까 봐 커피를 유모차 홀더에 끼운 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는데, 흔들림을 이기지 못한 라테 거품이 그대로 넘쳐흘러 내 바지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그걸 보지 못했다.


“잠깐, 잠깐! 이거 다 흐르잖아! 하아, 너는 진짜…”

“왜 말을 하다 말아? 너는 진짜 뭐? 뭔데?”

“아, 진짜!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냐? 같은 잔소리 7년째 지겹지도 않냐?”

“그 잔소리, 오빠만 안 하면 돼, 오빠만! 7년째 입도 안 아프냐?”




나는 주식회사 ‘남편’이란 까칠한 회사에 취직한 단 하나뿐인 불운한 직원이다. 눈칫밥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밥이다. 구겨진 미간과 화가 난 눈썹, 씩씩 쌩쌩 부는 콧바람, 툭 튀어나온 입술. 이런 것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은 정말로 쉽지가 않다. 어느 포인트에서 남편 마음이 상했을지 몇 시간 전의 일을 되짚어보는 것은 언제나 속이 탄다.

하지만 남편은 반대로 ‘아내’라는 허름한 회사에 홀로 취업해 살신성인 다 하는 본인을 매일같이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칠칠치 못하게 흘리는 거 닦아줘야지, 아침에 못 일어나는 마누라 깨워줘야지, 쓰레기 모으는 게 취미인 아내 가방 열어서 영수증이랑 휴지 뭉치 버려줘야지,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핸드폰이나 기타 필수품 챙겼는지 확인해야지, 손목 약한 아내 짐 다 들어줘야지…


밖에서 아이를 안거나 업는 건 거의 남편 역할. 내 종이체력을 너무도 걱정해준다. 고마워!


빈틈이 많고 어딘가 약한 날 만나 고생하는 남편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할 말이 많다. 오늘만 해도 진짜 웃기는 일이 있었다. 7호선 고속터미널 역에서 1시에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나는 분주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 딴에는 남편 생각한다고 아기를 데리고 나갈 요량으로 아이 물건도 같이 챙겼다. 기저귀, 물티슈, 손수건, 갈아입힐 옷 같은 것들. 내 생각에 시간은 넉넉했고, 집에서 1시간 전에만 출발해도 충분했다. 10분 먼저 도착해 기다리진 않더라도 정각에 도착할 수는 있었다.

아, 왜 이런 배려를 했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은 다음 주부터 주양육자와 부양육자가 바뀐다. 나는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고, 남편은 아이를 돌보며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되었다. 아기와 둘이 될 연습을 해야 한다며 요즘 아침마다 식사를 준비하고, 웬만한 살림을 자신이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남편이다. 안쓰러워서 단 며칠이라도 마음 편히 해주고 싶었는데, 남편이 자기 복을 발로 찬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너 이래서 안 늦고 가겠어? 재채기도 자꾸 하는 게 감기도 안 나은 모양인데, 그냥 내가 태워다 줄게.”

“아냐, 1시간이면 충분하대.”

“뭐, 어플이? 그것보다 여유 있게 나가야지, 그렇게 늑장 부려서 어떻게 제시간에 간다고. 됐어, 나 금방 씻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교통 체증을 염려하며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반포동으로 향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남편의 호의는 늘 이런 식으로 내 걸음보다 빠르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신나게 출발! 하하호호 웃으며, 라디오도 들으며 달렸지만 뭔가 싸했다. ‘음? 왜 올림픽대로로 안 가고 성산대교를 건너지?’

우리는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성산대교를 건너서 다시 강변북로로 진입했다. 마포를 지나고 용산, 이촌을 지나도 남편을 방향을 틀지 않고 직진했다. ‘이제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기는 카시트에서 곤히 잠이 들었고, 한남대교를 지나칠 때쯤 몹시 불안해졌다. 응봉산을 지나고 정면으로 어렴풋이 올림픽대교와 잠실타워가 보였다.


“오빠,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설마 나를 강변 역으로 데려가는 건 아니지?”

“(내비게이션을 슬쩍 보더니) 아니야, 제대로 가고 있어. 여기 고속버스터미널!”

“그것 참 희한하네.”


“안내를 종료합니다.” 도착하고 보니 동서울터미널이었다. 나는 면허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데다, 지방 출신이지만 신기하게 서울 길을 잘 안다. 남편은 차를 잘 몰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보다도 서울 지리에 어둡다. 결국 동서울터미널에서 다시 서울고속터미널로 방향을 틀어 달리느라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늦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에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니고, 오늘 만난 지인들도 정시에 다 모인 적이 없는 멤버라서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다 놀고 나올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남편과 집으로! 또 차선 틀려서 성산대교를 한 바퀴 돌고서야 집에 왔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남편은 말은 안 하고 씩씩거리며 혼자서 화를 삭였을 것이다. 보통 남편은 ‘내가 이렇게나 너를 배려하는데’ ‘이런 궂은일도 말없이 혼자 다 하는데’ ‘이만큼이나 너의 안위를 걱정하고 챙기는데’ 하는 마음에서 나에게 서운함을 드러낸다. 연애 시절, 신혼 초만 해도 나는 그 배려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나를 원망했었다. 땅으로 꺼질 수 있다면 꺼지고 싶을 만큼 둔감한 성격의 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편의 잔소리가 한결같은 것을 지켜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남편은 말하고 나는 한 귀로 흘리는 일이 많아졌다. 나에게는 그게 남편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잔소리를 다 마음에 담아두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갈라섰을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내 방식으로 남편의 필요를 채워준다. 사실 이 방식도 ‘귀차니즘’이 심한 나에게는 큰 결단이었다.


집안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무적인 부분(주로 관공서 업무)은 내가 일괄 처리한다. 남편이 식재료를 사서 냉장고를 채워두면(주로 같이 장을 보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메뉴가 있을 때에는 꼭 재료를 사서 넣어두더라) 먹고 싶다는 요리는 내가 만든다. 남편이 먼저 설거지를 하면 굳이 말리진 않지만, 다 먹고 빈둥거리면 그냥 내가 한다(원래 엉덩이가 가벼워 재깍 움직이는 쪽은 남편인데, 빈둥거린다는 것은 그만큼 피곤하다는 뜻이기에). 여행을 가도 나들이를 가도 길은 내가 찾는다. 운전하는 남편이 내비게이션을 잘 못 읽는 순간을 대비해 이정표를 열심히 본다 등등.


내가 주양육자일 때는 빨래와 청소, 아침, 저녁 준비하기, 아이 돌보기도 나의 몫이어서 ‘나만 너무 할 일이 많은 거 아닌가? 이거 진짜 엄청난 직장인데?’ 싶었는데, 역할이 바뀔 시점이 다가오니 모든 것에 관대해졌다. 남편은 집사람으로 지내며 ‘혼자만의 시간’ 노래를 불렀던 내 마음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반대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입장의 고충을 깨닫게 되겠지? 이번 역할 바꾸기로 우리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부족함을 덮어줄 수 있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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