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랑 어제 꽤 오래 통화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도 출근해 간만에 허락된 수다 타이밍이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친구의 신혼 적응기와 근황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청소 이야기로 넘어갔다. 신혼집으로 막 입주한 친구가 살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얘길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주말에 세 가족이 모두 모여 있으면 남편은 다 같이 놀러 가길 원한다. 물론 다녀오면 아이도 좋아하고 나도 한껏 들떠 좋은 것들을 눈에 담고 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감에 푹 퍼지기도 하고. 내게 행복이란 부드럽고 나른한, 그런 맛이다. 근데 문제는 모두 다 나간 월요일, 화요일이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반찬만 몇 개 준비해도 시간이 훅훅 가고,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금씩 밀리거나 정체된다. 특히 이번 주는 가을맞이 이불을 꺼내느라 이틀간 세탁기만 몇 번을 돌렸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외면하고 싶다. 화장실에 막 피기 시작한 붉은곰팡이, 흐트러진 이불과 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머리카락, 아직 다 개키지 않은 옷이나 양말 따위. 그래서 통화로 하소연하다가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난, 우리 애 다 크면 남편한테 나란히 원룸 얻어 이사 가자고 하고 싶어."
친구가 정색한다. 행여 남편한테 농담으로라도 그 말은 하지 말라고. 이 친구와 내가 만난 건 거의 10년 전쯤이다. 지지리 복도 없는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고는 '커플 다 죽어라'라는 마음으로 일만 하던 회사에서 만났다. 오후 8~9시에만 끝나도 일찍 퇴근했다며 술집을 전전하던 그때의 우리, 날을 꼬박 새우며 일한 뒤 퇴근할 때면 취해서 휘청거리는 청년들 보며 "지금 열심히 놀아라. 나중에 열라 야근한다."라고 조용히 빈정거리며 웃었다.
일 외에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 아마도 연애사일 것이다. 10년간 알고 지내며 물리적인 거리가 생겨 자주 못 만난 적도 있지만, 밀린 근황을 업데이트하며 착실하게 서로의 역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우리 남편과 이 친구는 성향이 비슷하다. 그리고 친구가 결혼한 남자와 나도 접점이 있다. 그래서 내 친구는 내가 남편 흉을 열 번 보면 그중 여덟아홉은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 입장을 내게 대변한다.
알겠다고, 알겠다고, 절대 입 다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오늘 빨래를 정리하며 또 그 일이 생각났다. 집안일 자체가 하기 싫어 원룸을 얻고 싶다기보다 나는 그냥 내 취향껏 널브러뜨리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서 둘의 원룸을 상상해 봤다. 남편의 방은 아늑하고 갖출 걸 다 구비한 편안한 동선의 집을 것이다. 내 방은 좋아하는 것만 있고 나머지는 거의 없는 자극 없는 공간이 될 테다. 자주 놀러 오는 옆집 양반에게 식사 한 끼와 커피를 대접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살림, 여가를 장식해줄 책과 음악, 그 양반이 자고 간다고 하면 같이 덮을 만한 크기의 이불과 베개만 있어도 좋지 뭐. 이런 생각 나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