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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될뻔 Oct 17. 2021

바르질라 WSCC에서의 소중한 경험

 운이 좋게도 교환학생에 가서 9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높은 환율과 비싼 물가 덕에 가져간 돈은 3~4개월 정도 지나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도 부모님께 추가로 용돈을 계속 받고 있었다. 교환학생을 끝내고 나면 해외에 나가서 1년 정도 인턴십을 해 보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던 터라,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너무도 행운이었다.


 처음 Wartsila Shared Service Center에 직원 등록을 하러 가니 오후 3시쯤이었는데 사무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앞서 말한 바아사의 몇 안 되는 한국인 중 한 명이 바로 여기 바르질라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바로 나의 사수가 될 윤지영 팀장님이다. 회사 적응에도 도움을 많이 주셨고 커리어 우먼스러운 전문성과 리더십이 매우 멋진 분이셨는데 이 글을 계기로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 오늘 무슨 날이냐고 묻자 원래 자율 출퇴근제라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새벽 일찍 나와 일을 처리하고 3시쯤이면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엔 긴 낮때문에 하루 일과가 매우 긴데, 이 때는 10월쯤이어서 오후 3시쯤이면 해가 지는지라 새벽 일찍 출근해서 빨리 업무 처리를 하고 가족들과 오후를 보낸다는 거였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자율 출근제나 주 52시간 제도 같은 것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기 때문에 정말 신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증 등록과 출입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세금도 내야 하기 때문에 택스 오피스에 가서 외국인 등록 등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핀란드에서 받은 게 없는데 내 월급의 30% 이상을 떼어간다고 했다. 아직 한국에도 세금을 내 본 적이 없는데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알아보고 있던 워킹홀리데이 같은 경우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 세금 환급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알아보았지만 핀란드에는 그런 제도가 없단다. (혹시 이제라도 생겼다면 알려주세요) 어쨌거나 세금 코드 등록도 마치고 나니 정말 핀란드라는 나라의 한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껴졌다. 세금을 떼고 나서 내가 받게 된 시급은 13유로 정도였는데, 이때 한국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급 등을 생각하면 거의 3~4배를 받은 셈이다.


 핀란드는 학생이 일을 하는 경우 주당 20시간까지로 제한하여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어서 나도 주 20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바르질라는 육상/해상 에너지 관련 제품과 루션을 파는 회사인데, 말 그대로 상선, 크루즈선 같은 큰 배에 들어가는 엔진이나 파워 공급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이다. 내가 일하게 된 바르질라 셰어드 서비스 센터 (Wartsila Shared Service Center)는 바르질라에서 파트너 회사나 벤더들과 거래하는 모든 송장 (인보이스)를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파트너사 같은 개념인데, 한국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 조선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큰 마켓셰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국과의 거래도 많았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인보이스들도 매우 많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는 나 말고도 남아공, 미국, 호주, 인도, UAE, 스웨덴, 덴마크 국적 등의 동료들이 많았는데, 거의 15개국 이상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 교환학생으로 와서 느낀 것보다 훨씬 더 글로벌한 환경을 사무실에서 접하게 되었다. SAP이라는 시스템을 배워 그 안에서 인보이스를 등록하고, 그 비용이 제 때 지급될 수 있게 컨트롤러에게 상신하는 업무가 나의 일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 1시쯤 회사에 가면 그 전날 SAP 시스템에 들어온 인보이스 쭉 쌓여있고 하나하나 처리하고 나면 나의 업무가 끝났다. 어떤 날은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오전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주당 20시간이 넘는 경우에는 그다음 주에서 업무 시간이 차감되고, 초과 시간만큼 휴가도 주어졌다. 22시간을 일하면 2시간의 휴가가 누적되고, 다음 주에는 18시간만 일하면 동일한 급여를 받게 되니 이런 꿀 같은 제도가 있나 싶었다. 일이 많은 동료들은 휴가가 하도 쌓여서 겨울에는 한 달 넘게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휴가를 즐기고 오거나 별장에 가서 쉬고 오거나 한다고 했다. 정말 이런 게 선진국이구나 싶게 부러운 제도였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시간을 넘기지 않고 빨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초과시간을 일하면 다음 주에 근무시간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한국 인보이스가 제 때 처리되지 못하고 쌓일까 봐 그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들 사정이 비슷하다 보니 되도록이면 업무 시간 내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다들 짧게 일하지만 매우 집중해서 일을 하는 모습들이었고,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소위 ‘농땡이’ 치는 사람들은 핀란드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점심시간도 쓰지 않고 자리에서 샌드위치 등으로 때우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출근해서 직원 캔틴 (Canteen)에서 커피 내릴 때 말고는 동료들이랑 많이 대화를 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한국처럼 회식이 잦은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정말 축하할 일이 있거나 전체 직원 워크숍을 하거나 하는 경우에 회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 근처의 식당에 가서 각자 원하는 메뉴를 시키고 식사와 곁들여 간단히 맥주 한 잔 정도 하는 모임이었다. 당연히 2차나 그런 건 없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정말 중요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간단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각자 집으로 간다. 그리고 가장 충격이었던 점은 회사 회식인데 더치페이를 하는 점이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상인데.. 당연히 회사 돈으로 저녁 먹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회식은 싫지만 맛있는 메뉴를 내 돈 안 내고 먹을 수 있어서 간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계산하는 웨이트리스가 와서 각자 먹은 메뉴를 확인한 후 각각 돈이나 카드를 받아 영수증을 건네주는 모습에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20명이 가서 식사를 하면 계산도 20번을 받는 것이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이제는 연락이 끊겼지만 가끔 있던 미팅 시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핀란드스러운 점은,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위계질서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거다. 부사장이었던 타냐의 경우도 정말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했었는데, 미팅 시간에도 각자의 의견을 경청해주고 나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팀 매니저였던 마이클은 독일 국적이었는데, 무뚝뚝한 느낌이었지만 물어보는 것은 적극적으로 답해주었다. 제일 친하게 지냈던 스웨덴 사람 마리카와 폴란드 사람 카롤리나 (카롤리나는 폴란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LG에서 일하게 되어 한국으로 출장도 왔었다!)는 정말 살갑게 말을 걸어주고 회사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소중한 친구들과 교환학생 기간에 넉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었던 월급을 받은 것 외에, 바르질라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남겨 준 건 토익점수였다. 영어를 잊어버리기 전에 시험 점수를 만들어두자 싶어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토익 시험에 응시했는데, (3학년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입사 준비도 염두에 두었다.) 교환학생에 다녀와서 처음 본 토익 점수가 970점이 나왔다. 토익 학원을 다니거나 토익 문제집을 본 적도 없는데 토익 시험을 보는 게 정말 말 그대로 회사에서 일할 때 이메일 주고받고 했던 내용처럼 느껴졌다. 매일 벤더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사내에서 미팅할 때 썼던 용어들이 아무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일상 대화와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토익에 특화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던 거다. 그 이후로도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호텔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2년마다 영어 성적을 제출해야 하는데 (예전엔 심지어 1년마다 냈다) 꾸준히 900점 후반대의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건 다 그때 경험 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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