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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9. 2021

그림책인문학1- 우리가 함께한 매일을 기억할게

그림책 <열일곱 살 자동차>

오랫동안 사용했던 식탁을 폐기처분한 기억이 있다. 모서리가 둥근 나무 식탁이었다. 십사 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던,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식탁이었다. 삐그덕, 삐그덕, 식탁다리의 관절 부서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커져서, 할 수 없이 이별을 하던 날,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 식탁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림책 <열일곱 살 자동차>를 읽으며 오래전 그 식탁이 생각났다. 처음 우리 집에 식탁이 왔을 때처럼, 공장에서 갓 나와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기가 태어날 거란 말에 두근두근 가슴 설레어한다. 17년 간 한 가족과 삶의 구석구석을 함께 달리며, 자신을 ‘빠방’이라고 부르는 아가에게 동요를 들려주고 아가가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에도 따라간다. 그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험한 돌길부터 햇살 눈부신 바닷가까지, 가족들과 동행하는 자동차의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은, 이야기가 자동차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일 터. 맑고 따스한 그림 역시 가족들의 오밀조밀한 일상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세월에 떠밀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는 고물차가 되어가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 눈치 챈다. 결국 자동차는 폐기 처분되어 떠나지만, 가족들은 안다. 자동차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마음속에 기억이 되어 영원히 살아있을 거라는 걸. ‘다 기억할게 우리가 함께 달린 거리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떠나기 전 아이에게 전하는 자동차의 말이 한없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자동차가 떠나면서 나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호미나 꽃삽이 되어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한 것처럼, 이별은 그러나, 끝이 아니다. 아니, 새로운 만남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안다. 함께한 시간 동안 마음이 마음을 접촉했다면 말이다. 함께 한 시간 동안 그 마음들이 모아져 강물처럼 흘렀다면 말이다.


코로나팬데믹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말미암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더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어쩌면 엄밀히 말해, 만남과 이별이 부재한지도 모를 요즘 우리들에게 그림책 <열일곱 살 자동차>는 만남의 소중함을, 우물처럼 깊어지는 관계의 지형도를 웅숭깊은 울림으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오히려 무생물인 자동차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눈물은 아주 따스했다. 오래전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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