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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간

만남의 시간에서 이별의 시간으로...

by 돌바람

가끔씩 나이 듦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를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예측도 해보고 인생 선배들의,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며 그렇구나~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일 때도 있다. 허나 대부분은 내가 직접 겪고 나서 깨닫는 것들이 많다.


만남의 시간이 서서히 이별의 시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매일매일 새로운 만남이 이어졌고 그래서 설렜고 삶이 점차 풍부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그 수많았던 만남들이 소리도 없이 끊어졌고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싫어 끊어내던 자발적인 이별의 시간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싶었는데, 이제는 원치 않는 이별이 느닷없이 사고처럼 다가오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선우정아는 그의 노래에서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라고 했나 보다.


한 직장에서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채워가고 있다. 나에게도 20대 후반의 파릇파릇한 신입 시절이 있었고 당연히 어리바리 좌충우돌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시간이 갈수록 직장 내에서 롤모델 같은 선배가 생겼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잘 챙겨주던 선배들 중에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 본색을 드러내며 되려 추한 모습으로 변해간 사람도 있었지만 이 선배만큼은 롤모델이 될 만한 충분한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주었다. 숱한 위기와 시련 속에서도 늘 애정 어린 행동으로(말이 많지 않은 분이다) 약자와 후배들을 살폈고, 부당한 힘에는 큰소리를 내며 저항했으며,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예리하게 잡아내어 지적하는 스마트함도 갖췄다. 무엇보다 함께 즐기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추진하는 데에는 탁월한 리더십도 보여주었다.


이제 곧 떠나는 그분에게 그 어떤 말도 차마 건네지 못하고 있다. 퇴직을 결심한 그분은 처음으로 그 단단해 보이던 마음을 열고 속내를 담은 글을 남겼다. 최근에 닥친 직장 내의 위기 속에서 제 몸 부서져라 맞서 싸우다가 권력 앞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함에 못내 괴로웠을 터였다. 이미 몇 해 전부터 놓아버리고 싶은 인지적 의지와 끝끝내 놓지 못하는 정서적 의지 사이에 내적 갈등이 무척 깊어지고 있으리라 걱정했었다. 그러리라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그분의 글을 읽고 생각보다 더 마음적으로 많이 힘들었……,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찢어져 나갈 듯한 고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옳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 다듬어지지 않는 모난 돌이 되고자 했던 사람이었기에 그 예리함이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남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그분에게 그 어떤 위로도, 격려도, 응원도 차마 할 수가 없다.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힘겹다.


아마도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다. 적당한 선에서 자꾸 체념하고 포기하면서 스스로를 지켜온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인가 싶다. 감히 롤모델이라고 하면서 결정적 순간에서는 그를 따르지 못하고 나를 지키기에 안주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그렇기에 그분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또 하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책임감 탓에 괜한 다짐을 함부로 내뱉을지는 않을까 하는 못난 우려가 있기도 하다. 그분이 떠나고 나면 남겨진 이들은 또 누구를 바라보며 이 생활을 이어가야 하나 걱정이 많이 되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고민하고 있었다. 떠나는 분이 남겨진 이들 걱정하지 마시라고 맘 편히 다 잊고 지내시라고 말씀은 드리고 싶으면서도 그분이 뻔히 남겨진 이들에 대한 걱정을 모두 거두지 못할 것을 알기에 차마 누군가가 그분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현재는 또 과거가 되고, 과거는 현재에게 혹은 미래에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섭리이므로 누구도 그걸 거스를 수는 없다. 사고처럼 닥쳐온 이별이지만 그 이별이 영원한 것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위안도 가져보지만, 그래도 매일을 마주 보며 생활하던 이를 같은 공간에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은 못내 아쉽고 아픈 일이다. 더구나 그 이별이 때 이른 갑작스런 일로 닥쳐오니 더더욱 아프고 쓰리다. 나의 이런 마음이야 어디 그분의 마음에 비견할 수 있을까. 낙엽이 아직 채 붉어지기도 전에 가지가 꺾인 아픔은 누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부디 그분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다음 인생의 앞길만 보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뚜벅뚜벅 묵직하게 걸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보면 미련이 남고 그러면 그리워지고 아파지는 것이 지금쯤의 우리 마음이기에 그분은 그냥 그렇게 걸어가셨으면 좋겠다. 그리움과 아쉬움은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기꺼이 떠안을 테니 그분은 정말 아무런 남김없이 새 삶을 위해 힘차게 걸어가셨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이 글을 보게 되실 그분...

정말 고마웠습니다. 많이 그리울 겁니다.

끝내 한 마디도 못하고 떠나보내드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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