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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Nov 08. 2021

본능을 거스르는 횡단보도 건너기

영국 횡단보도 건너기에 적응 중입니다.

     딱딱한 영국식 영어도 아니고, 처음 해보는 좌측통행 운전도 아니었다. 영국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횡단보도 건너기'. 이 사소한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해 (뻥을 살짝 보태) 죽을 고비를 두어 번이나 넘겼다.


     영국에 오고 나서 며칠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단지 안 작은 건널목을 지나려고 두세 발짝 떼었는데 갑자기 오른쪽에서 빵! 갑작스러운 경적 소리에 셋 다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고, 한 녀석은 앞으로 내질러 달렸고 다른 한 녀석은 뒤돌아 원위치로 뛰어갔다. 흩어졌던 셋이 다시 모여 길을 건너자 천둥 같은 클랙션 소리를 냈던 미니 쿠퍼는 쌩하고 지나갔다. '뭐야 횡단보도에서 잘 건너고 있는데. 애들이랑 건너는 거 안 보여? 매너가 꽝이구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으로 성질 나쁜 운전자를 욕했다. 집에 도착해서 그 상황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우리 셋, 모두 왼편만 살피면서 횡단보도에 진입했던 것이다. 차는 오른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되뇌었다. '오른쪽 먼저 보기, 오른쪽 먼저 보기, 오른쪽 먼저 보기...' 친구를 만나러 처음으로 혼자 런던에 간 날. 사거리 한 귀퉁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조심조심 오른쪽을 살피며 첫 발을 차도로 내디디는 순간 " 빵! 빠앙!!"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굵은 클랙션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니 시뻘건 이층 버스가 50cm 코 앞까지 와 있는 게 아닌가? 두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떼고 나를 향해 쭉 팔을 뻗으면서 운전기사는 뭐라고 뭐라고 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눈은 뒀다가 어디다 쓸 거냐. 좀 보고 다녀라!'라는 소리를 하는 듯했다. 이상했다. 분명 오른쪽을 잘 보고 건넜는데. 밥 먹는 손이 오른쪽이지? 그럼 제대로 잘 보고 건넌 건데... 뭐야, 버스가 왼쪽에서 나온 거잖아. 왜? 뭐 때문에? 알고 보니 그 길은 일방통행이었다. 하필이면 우측통행 방향으로. 런던에 처음 왔는데 어디가 어느 방향으로 일방통행인지 내가 알 턱이 있나. 억울하다 억울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다 큰 어른이 횡단보도 하나를 제대로 못 건넌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창피해서 어디 말도 못 했다.


     사실 어릴 , 나는 횡단보도 건너기를 무서워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신호등이 수문장처럼  끝을 지키고 있는 곳은 괜찮았다. 보행자를 위한 초록불이 켜지면 양쪽에서 오던 차들이 정지선에 맞춰 멈추기 때문에 안심하고 건너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함께 건너는 보행자들을 나를 지켜주는 보디가드라고 상상하면 든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호등 없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개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횡단보도는 이야기가 달랐다. 여기서는 도무지 언제 건너가야 할지  타이밍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차가  대도  보이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양방향에서 띄엄띄엄 제각각의 속도로 차들이 오가면 나는 하염없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건너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이 오면, 그가 바로 구세주. 구세주가 발을 내딛을 , 나도 박자를 맞춰 같이  길을 건넜다. 가끔 내가 박자를 맞출 틈도 없이 성큼성큼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음 구세주를 기다리거나, 차가 뜸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까딱 타이밍을   잡았다 차에 치어 죽으면  되니까.


     아마도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일 것이다. 횡단보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게. 성인이 되어서는 아무 생각 없이도 풀쩍풀쩍 횡단보도를 잘 건넜다. 가끔 필요하다 싶으면 무단횡단도 거뜬히 할  정도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동안 수백 번, 수천번 어쩌면 수만 번. 무수히 많은 길고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나름 경험치라는 게 쌓였을 것이다. 일단 좌우를 잘 살핀 후, 내 두 다리가 낼 수 있는 속도와 다가오는 차의 속도 및 거리를 가늠해 적당한 타이밍을 잡을 수 있는. 그 적당한 순간을 골라 주저하지 않고 발을 떼는 원동력은 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맹수의 공격을 피해 목숨을 지키고자 했던 멀고 먼 원시 조상님들의 DNA가 몸속 깊숙이 박혀있는 덕에 현대인인 나는 맹수보다도 빠르고 몸집이 큰 자가용, 버스, 덤프트럭으로부터 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감각을 획득했으리라. 남들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영국에 와서는 오랜 연습을 통해 자동화된 '횡단보도 건너기 감각'이 오히려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본능을 거슬러 '좌-우'가 아니라 '우-좌'의 순서대로 도로 위 차를 살펴야 한다. 두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는데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아직도 저절로 왼쪽으로 먼저 돌아가는 고개. 그랬다가 아니지 싶어 오른쪽을 살피고, 또 그 사이에 차가 오나 싶어 왼쪽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도 뭔가 안심이 되어 오른쪽을 다시 살피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몇 번이나 양 옆을 살피는지... 횡단보도 건너기 일 단계부터 우왕좌왕하다 보면 이후 자동적으로 따라와야 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돼버린다. 한참을 갈팡질팡 하다가 다른 보행자가 오면 그가 바로 구세주.  그의 발걸음에 박자를 맞춰 같이 건넌다. 이렇게 나는 영국에 와서 다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돌아간 것이다. 횡단보도 건너기가 자신이 없는 어린이로...


     횡단보도 건너기에 적응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본능을 거슬러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몸에 새겨야 한다. 횡단보도 건너기 하나 뿐이 아니겠지.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걸까. 본능, 관성, 익숙함, 편안함에 숱하게 도전을 하면 이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영국 생활에 잘 적응해 이곳이 익숙하고, 편안해져서 제2의 관성과 본능을 획득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다면 일단 횡단보도를 잘 건너자. 죽지 말고 살아있어야 그날이 오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미지출처:

https://unsplash.com/photos/JoXslKjba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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