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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Oct 18. 2021

노아의 영국 적응 일등 공신은...

고마운 반 친구들과 함께한 영국에서의 첫 생일파티

     “여보! 나 됐어! 됐다고! 우리 이제 영국으로 가는 거야!!”

 

     우리의 영국행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의 임용 소식과 함께.  공부를 좋아하고 연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남편. 스위스에서 박사, 미국에서 포닥, 독일에서 연구 교수로 이어지는 그의 가방끈만큼이나 우리 가족의 떠돌이 생활도 길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우리도 중년을 향해 가면서 이제는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정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려면 대학에서 정년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영년 교수직, 즉 테뉴어 교수직을 따내야 했는데 이런 자리를 꿰차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당시 머물고 있는 독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있는 수많은 대학의 공고를 샅샅이 뒤졌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한국, 영국. 우리 가족이 그래도 적응하고 살만하다 싶은 곳이면 주저 않고 지원했다.  서류 접수와 탈락, 서류 통과 후 인터뷰, 또 탈락. 결승선 없는 쳇바퀴를 돌 듯 지원과 탈락이 반복되는 취업 마라톤이 2년간 이어졌다. 바쁜 남편 대신 지원 서류를 등기로 접수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직원이 생길 정도로 우체국 단골이 되어 있었다.

 

     독일 연구소 계약기간을 반년 정도 앞두고 있던 어느 가을날.  가족의 처지가 마치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느껴졌다. 임용이 되긴 할까? 계약 마지막 날까지도 임용 소식이 없으면 어쩌지? 최악의 경우, 월급이 끊어지면 가진 돈으로 몇 달 정도 버틸 수 있으려나...  부모님은 걱정하실까 봐, 아이들은 불안해할까 봐 우리 둘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안에서 타오르는 불안감에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말라가던 날, 이메일을 받았다. '유감스럽게도'가 아니라 '축하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아, 됐다 됐어. 우리 살았다!

 

     기쁨과 흥분의 한 달을 보냈다. 자축하며 터뜨렸던 샴페인 거품과 함께 흥분이 가라앉자 눈앞에 닥친 현실이 보였다. 어머, 우리 넉 달 후에 이사 가네. 그것도 산 넘고 바다 건너 새로운 나라로! 처리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니 슬슬 걱정이 피어올랐다. 집, 차, 이삿짐 정리 같은 큰 과제와 핸드폰, 인터넷, 은행계좌 등의 자잘한 숙제를 한꺼번에 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무래도 아이들이었다. 아기 때야 남극을 가든, 아프리카를 가든 내가 집에서 잘 먹이고 입히고 돌보며 케어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만 열 살 안팎. 나름 자기들의 세계가 견고해진 아이들은 더 이상 내가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새로운 학교에 가서, 낯선 언어를 익히고, 새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오로지 아이가 감당해내야 하는 몫. 많아진 나이만큼 자기가 짊어져야 할 몫이 크고 무겁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칫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 마음이 다치는 건 아닌지, 언어 때문에 자기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첫째 조슈아는 사춘기에 가까워져서 걱정, 둘째 노아는 영어를 하나도 못해서 걱정.

 

     노아의 영어실력(실력이라기보다는 무실력 혹은 무능력이 더 적당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헬로나 땡큐 말고는 아는 영단어도 없는 데다, 독일어와 다른 영어 어순과 문법이 아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영어를 독일어 어순 그대로 말하는 노아는 "Do you speak English?"가 아니라 "Speak you English?"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고, 왜 "Can you English speak?"가 아니라 "Can you speak English?"라고 해야 하냐고 물었다. 문법적으로 설명해주니 알아듣지 못했고, 영어는 원래 그런 거라 외워야 한다니 싫다고 했다. 너를 어쩌면 좋니... 매일 영어로 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금요일 오후에는 삼십 분씩 끼고 앉아 가르쳐 보았지만...... 눈부신 발전 같은 것은 없었다.

 

     알쏭달쏭한 영어 몇 마디를 겨우 할 줄 아는 상태로 영국에 도착한 노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둘째 날 저녁,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이불속을 파고들던 아이는 내 품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노아는 눈물을 흘리다 잠에 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울었어. 갑자기 쉬는 시간에 애들이 나한테 몰려와서 뭐라고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어.  무서웠어. 엄마 보고 싶었어어어어... 흑흑”

 

     “학교에 친구가 없어서 심심해. 쉬는 시간에 형아는 나랑 안 놀아줘. 우리 영국 왜 온 거야. 다시 독일 가자. 가서 구스티랑 에디랑 놀고싶어어어.... 으앙”

 

   집에서 '상건달'로 통할 정도로 거침이 없고 개구진 아이인데... 부족한 영어 때문에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내 영어지식을 아이에게 빌려줄 수도 없고, 학교에서 대신 친구를 사귀어 줄 수도 없고. 안쓰러운 마음에 울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방 친구도 사귀고 잘 적응하겠지... 라며 기도하고 기대했지만... 등교 시작한 지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진 영국은 전국 봉쇄령을 내렸고, 아이는 그 학기가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될 때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후, 영국은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선언했고 노아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생일파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가 없다며 베갯잇을 적시던 아이는 이제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 이름을 줄줄이 읊어댔다. 올리비아, 베타니, 키란, 체이스, 루이, 이브라힘, 저니, 코코. 초대했던 친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파티에 와서 기분이 좋은 노아는 점프 스트리트라는 방방장에서 말 그대로 방방 날아다녔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양팔 가득 안고 있는 선물과 카드를 보니 흐뭇했다. '역시 우리 아들, 적응 잘했네' 하고 뿌듯하기도 했고. 신나게 포장을 풀어헤치니 노아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선물들이 늠름한 자태를 드러냈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보고 흥분한 아이 옆에서 아이들이 써 준 카드를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어떤 친구는 삐뚤빼뚤 알아보기 힘든 악필로, 또 어떤 친구는 타자기로 타입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갈하고 깔끔한 필기체로 자신들의 마음을 옮겨 적었다.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해.

행운이 가득한 10살이 되길 바라.

좋은 친구가 돼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

 

     부모가 비집고 들어갈  없는 학교라는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모든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혼자 감당했어야  짐이 무거웠을 노아.  몫을  친구들이 함께 나눠줬을 거라 생각하니 눈물  정도로 고마웠다.  머릿속에 동동 떠오르는 동그란 아이들 얼굴.  처음 전학 왔을 , 선생님이 짝꿍으로 정해준 저니는 등굣길  멀리에서도 노아만 보면 손을 흔들며 뛰어와 반겨줬다.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연습하는 구구단 게임 '구구단 록스타' 도와준 이브라힘 덕분에 노아는  머물런 록스타 레벨을 정복하고 얼마전 그토록 원하던  레전드 레벨로 올라갔다. 7  검은색 퍼그와 9살짜리 거북이를 키우는 올리비아는 노아를 집으로 초대해   번째 친구였고, 상냥한 키란은 노아의 체육 활동 최애 파트너.



     노아가  이상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 않고 영국에  적응한 것은, 결국  아들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내가  보필한 덕뿐만도 아니고. 적시 적소에 있다가 짜잔 혹은 은근슬쩍 하고 나타나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손을 잡아주었을 아이들이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엄마인 나보더 어쩌면  아이들의 공이  컸을수도...아니, 아이들의 공이  컸음이 확실하다.

 

     얘들아, 노아의 성공적인 영국 적응 일등 공신은 바로 너희들이야!  고맙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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