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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Sep 03. 2024

새벽녘 벌초 가는 도로에서

하루는 처가, 하루는 본가


운전하는 나, 조수석에 아내, 뒷자리 가운데 딸아이, 양쪽으로 장모님 장인어른





알람이 울리기 4분 전 깼다.



눈을 떠 시계를 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 먼젓번 봤을 때는 12시 반이었으니 2시쯤 되었으려나 했는데 5시 36분이다. 설마 했는데 이게 뭔가 싶어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하면서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었다. 어차피 산에 가 처음부터 모자 쓸 예정이기에 머리감을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자동으로 세안에 이어 머리에 샤워기를 틀고 있었다. 습관이 이리 무섭다. 화들짝 놀라 머리 한쪽에 묻은 물기를 닦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시각. 지하 2층에 내려가 시동 버튼을 눌렀다. 지상으로 몰아 곧장 고속도로를 탔다. 몸이 무겁다. 어젯밤 일찍 잤는데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지 의문이다. 보름 전부터 예고된 힘든 하루를 대비하여 체력을 모아 모아도 모자랄 판에 평소보다 더 체력이 흔들리는 아침. 큰일이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 아버지께 뭐라 해야 하나.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인데... 슬쩍 내부를 돌아보니 음료수 병 쓰레기가 여기저기 보인다. 


어제 토요일


장모님, 장인어른을 모시고 다 같이 삼천포에 다녀왔다. 다녀오는 길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진주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길. 도로가 밀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사천 곤양 ic로 나갔다. 서포면을 지나 사천대교를 탔다. 대교를 건너 얼마가지 않아 전어집이 나왔다. 전어를 유난히 좋아하시는 장모님. 며칠 전 생신인데도 뭐 하나 드린 게 없는 거 같아 송구한 마음이 있었다. 때마침 전어가 떠올라 제안하니 기꺼이 좋다며 동행해 주셨다. 전어집은 일대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다. 大자를 시켜 먹는데 십 분도 되지 않아 절반이 사라졌다. 中자를 추가로 시키려니 장모님은 됐다며 시키지 말라 하셨다. 아내가 에이, 그래도 모자라잖아 기왕 온 거 넉넉히 먹어요 하며 주문하니 장모님은 우헤헤 내가 이리 많이 먹어도 될까 하면서 즐거워하셨다. 


전어를 먹고 빵집에 들러 빵과 음료를 마시며 아내와 딸아이 장모님 장인어른 다 같이 와하하 이야기꽃을 피웠다. 장인어른이 폰을 꺼내 "여기 봐라, 달봉이 어릴 때 이 얼굴표정 어떠냐? 웃기지?"하고 말하니 딸아이가 아악 지워요 그런 사진을 아직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요 라고 말했다. 아내가 우리 달봉이 그때는 어리숙하니 귀여웠었지 하고 웃었다. 장인어른은 또 "여기가 달봉이 어릴 때 살던 곳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차가 사천시청을 막 지날때였다. 장모님은 "왜 아픈 시절 얘기를 꺼내고 그래요? 기억하기 싫은 때구만"이라고 답했다. 그때 당신이 차를 태워주지 않아서 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 개양에 가 사천읍에 와서 다시 버스 타고 아 보러 왔잖소 라고 했다. 아내는 그래? 그때 아빠가 태워주지 않았어? 라고 물으니 장모님은 쳇, 별 시답지도 않은 핑계로 태워주지 않아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다녔지 라고 했다. 아내는 그래? 아빠도 바빴나 보지, 그땐 나 우울증 걸렸을 땐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라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나는 "난 좋았던 시절이었는데"까지만 말하고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가 "달봉이 여기 살 때 생각나?"하고 물었다. 딸아이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여기서 이사 나갈 때 어린이집 샘이 했던 말, 제가 이 아이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몰라요, 이제 떠나면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게 가장 슬퍼요 라고 했는데 아직도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딸아이는 거듭 기억이 안 나요라고 했다. 


밀리는 도로 덕에 한참을 얘기하다가 장모님을 내려드리고 장인어른을 내려드렸다. 집에 오는 길 차 안이 조용해졌다. 어딘가 허전한 이 느낌. 그러다 집에 딸아이를 내려주고 마트를 다녀와 아내까지 내려주었다. 갑자기 나 혼자가 되어버렸다. 다 함께 있다가 혼자가 되니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원래부터 혼자일 때는 모르다가 오후 내내 같이 있다가 혼자가 되니 무한히 내려앉는 이 느낌. 이것은 뭘까? 결국 혼자가 되었다는 자각.  


일요일 새벽


혼자 남해고속도로를 달린다. 믹스커피를 마시며 가는데 이상하게 힘이 없다. 상체가 고꾸라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전형적인 몸살의 초기 증상. 대구를 지나니 도로에 차가 늘어난다. 동명휴게소에 들렀다. 사람들이 커피 판매점 앞에 모여있다. 아아를 시켜 몇 모금 마시니 그제야 기운이 난다. 이상하다, 난 호두과자를 먹어야 기운 나는 몸인데 싱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에 기운이 나다니, 체질이 변했나. 아무튼 다행이었다. 고속도로에 수많은 행렬은 군위휴게소까지 이어졌다. 이 많은 차들이 다 벌초 가는구나. 그나마 나만 벌초 가는 게 아니라서 위안이 된다 라는 마음. 남안동 ic를 통과해 아버지께 갔다. 아버지의 첫마디 "제시간에 잘 왔구나"였다. 예초기 두 대를 트럭에 실어 트럭을 몰고 아버지 차를 따랐다. 내 뒤에 작은 아버지 한 분도 따라왔다. 산소가 있는 곳에 이르니 대구에 계신 작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 입구에서부터 예초기를 돌렸다. 아뿔싸, 아버지가 실으라던 기름통을 빼먹었다. 어쩔 수 없이 예초기에 있던 기름만으로 벌초 하기로 했다. 좀 더 밑동으로 내려서 베어야지 라고 아버지가 말하는데도 나는 바닥에 닿을까 싶어 풀 중간즈음에 예초기 날을 갖다 대었다. 그러다 차츰 익숙해져 조금 더 아랫부분 벌초가 가능하게 되었다. 올라가 산소가 모여있는 곳. 산소에 잔디와 잡초 밑부분에 바짝 가져가 예쁘게 이발을 했다. 여러 개의 산소 벌초를 끝내고 주위까지 80% 정도 했을 즈음 예초기의 시동이 꺼졌다. 


산을 내려와 근처 보리식당으로 갔다. 

변두리 한적한 국도변에 홀로 있는 식당. 손님이 많았다. 어젯밤 야간근무를 서는 바람에 뒤늦게 도착한 작은아버지가 식당으로 합류하였다. 밥 먹고 옆에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켜 야외 테이블에서 마셨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여서 그늘이 짙었고 바람이 시원했다. 건강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리 집안은 당뇨가 있잖아, 다들 조심해야 돼, 아직 당뇨가 오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잖아. 난 얼마 전부터 고지혈증 약을 먹고 있어. 그래 혈전이 쌓이잖아. 믹스 커피를 끊어야 돼. 요즘 믹스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옛날 믹스는 참 안 좋았어. 프림이 혈관을 막는다고. 그래서 내가 수술했잖아. 함부로 커피를 마시면 안 돼. 커피를 마시면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혈관에 대해 논했다. 혈관이 막히면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믹스 커피를 마신다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아버지는 내게 몸무게 3킬로 정도 줄여라 라고 말했다. 난 한 달 뒤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접수했다는 말로 답했다. 하프로 신청했다고 하니 10킬로로 바꿔라 라고 하셨다. 부산에서 온 작은 아버지가 마라톤은 노화의 지름길이라 말했다. 대구에서 온 작은아버지가 그게 아니다, 마라톤은 관절 근육을 만들어 오히려 늙지 않게 한다 라고 말했다. 


벌초를 다녀오고 하루가 지난 어제


나는 마라톤 대회 사이트에 접속해, 하프에서 10킬로로 바꿔주세요 라고 글을 올렸다. 곧바로 전화가 와 바꿔주었다고 했다. 무더웠던 여름은 지금도 계속된다. 다만 아침 출근길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해졌다. 시원해져서 드디어 만나는 사람들. 최서방 한여름 보낸다고 고생 많았지? 아들아 여름 잘 보냈냐? 


네~ 그럼요, 더운 여름 잘 보내셨습니까? 


       

고속도로 운전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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