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남구에서 달서구까지
강변길에서 보면 큼직한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 도시의 오염된 흑색. 그런 하수구 냄새.
그때 내가 달리던 하천길. 하천 특유의 냄새. 자연의 속살에서 흐르는, 이제 시작하는 가공의 냄새. 변하지 않은 냄새. 구수하면서 가슴 밑바닥 아니 그보다 더 밑바닥에서 나는 구린내. 어딘가 좋은 부분만 남아 내 코에 와닿는 신비. 냄새는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하천길 옆 공사하다가 만 2층집. 버려져 한동안 아스팔트 색 그대로 남아 구수한 냄새를 입고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집. 비틀비틀 난간도 없는 2층을 오르다 귀신이다~하는 소리에 후다닥 돌아선 기억. 이른바 귀신집. 무서워하면서도 간간이 들어가 놀았던 곳.
계절이 바뀌어 마른 잎들이 초록으로 변해갈 때의 경이로움. 하천길을 따라 학교 가다 배 아파 어떡할까 고민하던 꼬마. 꼬마는 아무 데나 철퍼덕 주저앉아 배를 잡고 통증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기다리다 살며시 눈뜨니 무릎옆을 지나던 개미들. 개미가 먹이를 향해 올곧은 선으로 움직이는 것에 물끄러미 빠지다 보면 어느새 나았던 배. 툭툭 털고선 일어나 다시 하천길을 걸어 학교로 향하던 꼬마. 주변은 정비되지 않은 옛 동네의 뼈와 상처를 피부 그대로 드러낸 채 꼬마에게 덮쳐왔다.
나는 요즘 강변길을 지날 때 커다란 하수구에서 나오는 구수한 냄새를 맡노라면 그때 그 시절 하천길을 떠올린다. 그곳은 대구시 달서구, 남구 일대였다. 정돈되지 않은 설익은 지대는 어지러워서 더 정다운 풍경으로 기억에 남았다. 주변에 고물상도 많았고 고물거리도 많았다. 아스팔트보다 흙길이 더 많은 곳. 논두렁 길을 걷다 보면 갖가지 벌레와 개구리도 보았다. 길바닥에서 불 피우는 경우도 많아서 하얀 연기가 자욱했다. 연기냄새를 맡다가 논 냄새, 흙냄새, 하천 냄새도 맡았다.
나는 대구 남구 성명초에 입학해 1학년을 다니다 달서구 남부초로 전학 갔다. 성명초는 두류공원 남쪽에 있고 남부초는 두류공원 왼쪽 성당동에 있다. 나는 아직 성당동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리고 두류공원이라는 지명만 떠올려도 가슴이 저민다. 어린 시절 닿았던 이름, 바람, 냄새, 풍경 그 어느 하나가 기억과 만나면 나는 아리고 저미는 감정에 취한다. 취해서 마냥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만 기억은 내게 순간의 행복만 전해줄뿐 쭉 이어 주지를 못한다. 그래서 안타까워하다 이내 잊어버리곤 퍼져버린 몸뚱이로 폰만 뒤적거린다. 언제고 두류공원 주변으로 가 서문시장과 대명동, 성당동, 화원 일대를 걸어 다니고픈 로망이 있다. 걸어 다니다 어린 시절 달리던 꼬마를 만날까 하는 기대도 있다. 그때 그 꼬마를 만나는 순간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기억에 남은 냄새.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냄새. 좋은 냄새만 쭉쭉 올라와 내 코를 간지럽힌다. 벌름벌름 기억 속 풍경을 떠올린다. 언제고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 지금은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만 한다. 대구시 남구, 달서구 성당동, 본리동, 두류공원. 저녁이 되면 연기가 오르고 갖가지 고물로 무지개 빛처럼 다양한 색상의 거리. 정비되지 않고 치덕치덕 헝겊으로 뒤덮은 길. 검은색 오물로 까매진 하천. 그 옆에 버려진 집 2층 계단을 오르다 어쩌면 그 꼬마를 만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