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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에어컨 틀면

차 안에서 집안에서

by 머피



비 내리는 아침.


비가 내린다. 오래간만에 비다. 많이 내린다. 차 안에서 비 내리는 바깥을 본다. 에어컨을 틀었다. 찬 기운이 몸을 감싼다. 어느 순간 몸서리치며 추위를 느낀다. 에어컨을 끌까 하다가 끄면 금세 습기가 차 오를까 싶어 끄지 않는다. 찬 기운이 점점 더 차갑게 피부에 와닿는다. 찬 바람이 차면 찰수록 바깥을 보는 시선이 먹먹해진다. 차 안의 공간이 보호막처럼 사납고 거친 바깥의 환경에서 내 몸을 지켜준다. 차 안의 작은 공간은 아늑해진다. 아늑한 공간에서 나는 공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평소 거리가 먼 사이의 사람일지라도 여기 이 작은 공간에 함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바깥의 적에 맞서 둘만 존재한다. 둘만 있기에 둘은 서로 의지하여 이 공간의 보호 속에서 꿋꿋이 버텨낸다. 나는 아내의 팔에 내 팔을 가져다 부비부비 한다. 까끌스러운 피부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마음까지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좋은 거구나.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팔이 맞닿는 느낌이 어떤 건지 깨닫게 된다. 따뜻한 온기가 좋구나. 나는 운전하고, 아내는 바깥을 바라보고 각자의 자리가 있기에 와락 껴안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나마 손이라도 팔이라도 기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집 안, 소파에 앉아 거실창 바깥을 바라본다. 비가 산에 하천에 길에 내린다. 에어컨 바람이 차갑다. 아내는 소파아래 방석에 앉아 테이블 위 맥주를 마시며 티브이를 본다. 소파 위와 아래에서 우리는 바깥과 티브이를 보며 서로 간 의지한다. '여름비'가 몸소 공동의 거대한 적이 되어 자신의 거친 숨결을 쏴아아 하고 소리 낼 때 그제야 우리는 보호되고 있구나, 보호되고 있어서 아늑하구나, 혼자가 아닌 둘이라 의지가 되는구나, 당신의 피부결 온기가 좋구나, 를 깨닫게 된다. 여름이라서 차가운 비와 에어컨 바람이 좋고 시원하다 못해 추워서 따뜻한 살결이 좋다. 사람이 따뜻한 걸 느낄 때 소소한 행복이 온다. 평소 거리가 먼 사람. 종일 떨어져 있다 새벽녘 눈뜨면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 더울 때 버티고 비 오면 끄지 않는, 전기세 걱정을 덮은 바로 이 순간이 나만의 퇴폐로운 한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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