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뉴욕에 봄이 찾아왔다. 바람 사이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벚꽃나무 가지를 보며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한창 봄을 타던 와중에, 카네기 홀에서 본 재즈 공연은 나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뉴올리언스로 가자.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예매했다. 잠시 후 제정신이 퍼뜩 돌아오자,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환불이 불가능한 비행기 약관 규정 때문에 취소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2박 3일간의 뉴올리언스 여행이 시작됐다.
비행기는 뉴욕에서 Atlanta를 경유해 뉴올리언스로 향했다. 직항보다 경유가 쌌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경유를 택했다. 2박 3일간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배낭 하나에 잠옷과 세면도구만 넣은 간단한 짐을 꾸렸다. 덕분에 짐을 부치고 받고 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tip - 미국 국내선의 경우, 기내용 캐리어 크기를 벗어나는 짐에 대해서는 대부분 추가 charge를 한다. 때문에 기내용으로 짐을 싸고, 액체류-샴푸, 린스, 치약 등등-는 도착한 도시에서 새로 사는 것이 더 절약이 될 것이다.)
뉴올리언스에는 저녁 6시경 도착했다. 항상 여행을 할 때마다 편한 것을 찾기보다는 현지인처럼 되자는(?) 모토가 있었기에, 구글 맵이 알려준 대로 시내까지 E2 버스를 타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2~3번의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차비가 싼 대신 약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공항 셔틀을 타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고 안내가 되어 있다.
호텔의 안내를 흘려들은 탓일까. 30분을 기다려도 E2 버스가 오지 않았다.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공항 셔틀을 탔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뉴올리언스의 예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공항 셔틀은 편도가 24불, 왕복이 44불이다. 행선지를 말해주면 그곳에 바로 내려주므로 택시와 다를 바 없이 편리하다. 다만, 택시와는 다르게 거대한 승합차에 여러 승객들이 함께 탄다. 각 승객들의 행선지에 내려주므로 택시에 비해 시간은 좀 더 걸릴 수 있으나 가격에서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다. (*tip - 우버를 사용할 경우 75불이 기본요금으로 측정되었다. 세금 정책 때문인 것 같았는데, 여기에 추가될 요금까지 생각한다면 차라리 공항 셔틀을 타는 것이 베스트 초이스일 듯하다.)
가방도 가볍고, 재즈 선율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숙소로 가지 않고 바로 French Quarter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French Quarter이다. 미국 땅에 왠 French냐고 묻는다면, 그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뉴올리언스는 17세기 말 프랑스인에 의해 발견되어 원래 프랑스 령이었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건물들은 대부분 프랑스, 스페인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특히 French Quarter에는 스페인 양식을 간직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French Quarter 내에는 유명 레스토랑, 재즈바, 호텔들이 전부 모여 있다. 어떤 이유로든, 뉴올리언스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장소 중 하나이다.
French Quarter 중에서도 재즈바로 유명한 거리로 Bourbon Street, Frechmen Street이 손꼽힌다. 고작 몇 분 차이 정도로 떨어져 있지만 두 거리의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Bourbon Street은 전통적인 재즈바라기보다는 락 공연, 스트립 공연 등 좀 더 관광객을 위한 상업지구의 느낌이라면, Frenchmen Street은 온 거리가 재즈이다.
공항 셔틀에서 내려서 우선 Frenchmet Street으로 향했다. 들어서자 마자,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빅밴드를 만났다. 거리를 지나던 관광객들이 멈춰서서 음악을 즐기며 환호성을 질렀다. 거리를 따라 계속되는 재즈바들과 음악 소리, 환호 소리... 기분이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다. 흥얼거리며 Market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해보고, 재즈바에도 들어가 보고, 호기심에 가득 차 밤거리를 걸었다.
Frenchmen의 분위기를 잠시 느낀 후 바로 Bourbon Street으로 옮겨서 남쪽으로 쭉 걸어 내려왔다. 이 곳은 마치 새벽 1시의 홍대나 강남역을 보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 호객행위를 하는 종업원들, 술냄새와 담배냄새, 예쁘게 차려입은 남녀들... 좀 과하게 말하자면 집단 환각상태 같았다고 할까. 토요일 밤이었으니 평소보다 더했을 것이다.
Bourbon Street의 분위기는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빠르게 걸어 내려오는데, 귀에 익은 Jazz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Bourbon Street 한가운데 위치한 Musical Legends Park에서 야외 재즈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칵테일 한 잔을 시켜놓고 잠시 테이블에 앉았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New York New York을 부르고 있었다. 이 분, 내가 뉴욕에서 온 줄 알았던 걸까. 그 외에도 익숙한 곡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선선한 밤공기,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 시원한 칵테일과 재즈음악.
더할 나위 없었다.
자유로운 재즈답게,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흥이 나면 나와서 왈츠를 추기도 하고, 보컬 할아버지에게 브라보! 라며 말을 걸기도 했다. 도무지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첫날인데다, 혼자였기에 너무 늦으면 위험할 것 같아 break time이 되었을 때 조용히 팁을 바구니에 넣고 일어섰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숙소까지 걸었다. 이래서 내가 뉴올리언스에 왔구나. 이래서 내가 비행기 표를 예매했구나. 낯익은 재즈 선율이, 시원한 밤공기가, 흥겨운 사람들이 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여행의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