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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2. 2016

New Orleans#2 낮과 밤

    어쩐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층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왠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제 호스텔이 불편한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예전에는 처음 보는 여행자들과 친구도 되고, 정보 교류도 할 수 있는 호스텔을 선호했었다. 그런데 왠지 뉴올리언스에서는 북적거리는 호스텔보다, 조용하고 고독한 호텔이 그리웠다.


    뒤척임을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전차를 탔다. 정신없이 반짝이던 어제의 번화함을 뒤로 하고 한적하게 산책을 하고 싶었다. French Quarter를 기준으로 12 St. Charles 전차를 타고 St. Charles Ave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Audubon Park가 있다. 공원 바로 건너편에는 Tulane University와 Loyola University가 있다.

    처음 전차에 올라탈 때에는 오로지 운전수와 나뿐이었다. 창 밖으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어제와 비교하면 너무도 달라진 뉴올리언스의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넋을 놓고 있노라니 어느새 공원에 도착했다.(tip-전차는 1 day pass로 끊으면 3불이면 살 수 있다. 그런데 잔 돈을 거슬러주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3불짜리를 준비해서 타야 한다. 나는 20불짜리를 냈다가 17불짜리가 남아있는 카드 채로 돌려받아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환불받지도 못해서 17불을 그냥 버릴 수밖에 없었다.)

2016. 4. 3. 고요한 아침의 전차역.
12 St. Charles 전차의 모습
Loyola University


   공원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공원 입구부터 시작해서 남쪽으로 공원 둘레를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조깅하는 사람들이 휙휙 나를 스쳐 지나갈 뿐, 고요하고 한적한 산책길이었다. 아침 공기는 싱그러웠고,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따스한 햇살에 초록빛 잔디가 반짝였고, 이따금씩 새소리가 났다. 참으로 이상적인 산책로였다.

    Audubon 공원은 Central Park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컸다. 공원을 둘러싸고 가정집인 듯한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어떤 집 건너편 나무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만든 듯한 그네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나무그네를 본 적이 있던가- 기억을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멍하니 그네를 보며 금발의 파란 눈 꼬마가 가족들 앞에서 나무 그네를 타는 상상을 했다. 아빠는 그네를 탄 아이의 등을 밀어주고 있고, 신이 난 아이가 엄마에게 이것 보라며 자랑을 한다. 엄마 옆에는 유모차에 탄 동생과 강아지가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보다 평온하고 따뜻한 광경이 또 있을까. 멍하니 공상을 하다가 그네 주인의 행복한 추억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을 떼었다.

Audubon 공원 옆의 가정집과 나무에 매달린 그네. 그네를 보며 이런저런 공상을 했다.

    공원 안쪽으로는 호수가 있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호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마침 백조 무리가 호수로 입수 중이었다. 살그머니 다가가 벤치에 앉자 백조들은 빠르게 내가 있던 곳으로부터 달아났다. 호숫가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파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원에서 나와 다시 시내 쪽으로 향했다.

호숫가에서 노니는 백조들. 내가 다가가자 멀찍이 사라져 버렸다.

    관광객들 사이에는 뉴올리언스에 왔다면 반드시 먹어보아야 한다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줄이 길게 늘어서고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ACME라는 레스토랑의 굴 요리이다. 얼마 전 뉴올리언스에 다녀온 친구가 ACME 앞에 사람들이 줄을 너무 길게 섰기에 결국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을 했었다. 긴 줄이 걱정되었던 나는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시간인 10시 30분에 맞춰서 입장을 했다. 오픈 시간에 가니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넉넉한 자리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이곳에는 생 굴, 구운 굴 두 가지 종류의 굴을 판다. 1/2 platter를 시킬 수 있어서 다행히 두 가지 다 맛볼 수 있었다. 생 굴은 신선했지만 초 고추장을 간절히 생각나게 해서, 내 입맛에는 구운 굴이 더 맛있었다.

항상 붐비는 인기 레스토랑 ACME.
통통하고 신선한 생 굴.
익힌 굴 위에 치즈가 얹혀 있다.

    굴 외에도 Gumbo라는 요리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카레와 느낌이 비슷하다. 대표적인 레스토랑은 Gumbo Shop이라는 곳인데, 이 곳도 항상 줄을 설 정도로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많다. 해산물 검보나 육류가 들어간 검보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고른 치킨 검보는 평범하고 무난한 맛이었다. 이 외에도 Creole이라고 불리는 샌드위치, 빠에야와 비슷한 잠발라야 등등 뉴올리언스는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의 천국이다.

    모든 유명한 레스토랑들은 거의가 French Quarter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행자라면 반드시 한 레스토랑을 정하기보다는 레스토랑들을 둘러보고 줄을 선 곳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French Quarter에 위치한 Gumbo Shop.
종업원이 추천한 치킨 검보 요리.

    배를 채운 후 다시 길을 나섰다. French Quarter의 가장 동쪽, 미시시피 강 바로 옆에는 French Market이 있다. 약간은 한국의 동네 시장 같기도 한 이곳에선 각종 식료품, 기념품, 식당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구경거리는 없지만 북적이는 사람들 가운데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바로 옆에는 아마도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명할 것으로 생각되는 Cafe Du Monde가 있다. 이 곳에서는 Beignet라는 도넛을 파는데,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처음엔 줄을 보고 엄두가 안 나서 그냥 지나쳤다가, Market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야 비로소 take-out 줄에 섰다. (tip-seating을 위한 줄과 take-out를 위한 줄이 서로 다르다. 보통 seating 줄이 훨씬 길고 웨이팅이 심하므로, 줄이 빨리 짧아지는 take-out을 추천한다.)

    기름에 튀긴 도넛에 sugar powder를 잔뜩 묻힌 Beignet는 프랑스풍 도넛이라고 한다. 3개 단위로 판매하는데, 3개에 3달러라는 매우 싼 가격이다. 맛도 모양도 이탈리아의 Zeppoles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의 도넛은 한국의 찹쌀 도넛과는 달리 찰기가 없고 약간은 퍽퍽한 맛이다. 미국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떡 같은 찰기가 많은 식감을 외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는 뉴욕 little italy에서 먹었던 갓 튀긴 Zeppoles가 더 맛있었고, 그보다는 엄마가 집에서 직접 튀겨주신 찹쌀 도넛이 가장 맛있었다.

    Take-out을 했으므로 먹을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최적의 장소인 미시시피 강이 바로 가게 옆에 있었다.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커피와 도넛을 즐겼다. 바람이 불어 자꾸만 머리를 흩날리게 했다. 바람 때문에 sugar powder가 온 얼굴에 묻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늘과 강이 모두 새파랬다. 나처럼 Du Monde의 Beignet 봉지를 든 관광객들이 무수히 지나갔다. 내 옆자리 벤치에 앉은 노신사가 좋은 날씨라며 인사를 했다. 왠지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냥 재즈를 들으러 온 것뿐인데. 용기 내서 비행기 표를 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French Market 입구.
이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나는 사람들 뒤로 길게 줄이 늘어선 Cafe Du Monde.
Beignet.
도넛가게 바로 옆에 있는 미시시피 강가의 모습.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재즈를 들으러 출발했다. 오늘 하루는 모두 이 곳을 위한 것이었다. 뉴올리언스에 왔다면 반드시 가 보아야 할 재즈클럽, Preservation Hall. 1시간 정도 기본으로 줄을 선다고 들었기에 8시 공연에 맞춰 7시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Presercation Hall은 다른 재즈바들과는 달리 술을 팔지 않는다. 화장실도 없다. 오로지 공연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며, 외부에서 음료를 반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앉을 수 있는 예약 지정석도 있지만 한 달 전쯤에 미리 예매해놓지 않으면 표를 살 수 없다. 나처럼 즉흥적인 여행자는 꼼짝없이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한 시간을 밖에 서서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앞 뒤로 줄 서 있는 관광객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어느새 공연 시간이 되었다.

    공연장 내부는 아담했다. 역시나 서서 공연을 봐야 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막 귀로 비교해 볼 때 이곳의 연주는 뉴욕의 Blue Note 연주자들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화려한 연주라고는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약간은 투박하고,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났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자유로웠다. 말 그대로 '재즈'랄까. 관객들과 장난치는 것을 그대로 jam으로 연주하고,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고, 중간중간 위트 있는 말도 곁들이면서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었다. 형식에 대한 얽매임 따위는 없이, 흘러가는 대로 연주했다. 특히 드럼을 치던 아저씨는 마치 접신하신 것처럼(?) 엄청난 연주를 들려주셨다. 링컨센터나 카네기 홀에서 재즈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서 마음껏 환호하지 못했는데, 이 곳에서는 원하는 때 마음 내키는 대로 환호성을 질러도 추임새를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지만, 기다리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Presercation Hall 내부.
꽉꽉 들어찬 관객들.

    공연과 모든 환호성이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둘째 날은 호텔로 숙소를 잡은 내가 정말 고마웠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라 푹신한 침대가 무엇보다 소중했다. 재즈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나는 이곳에서 또 무엇을 얻었을까.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내 잠들어 버렸다. 피곤할 만큼 꽉 찬 하루를 보냈구나.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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