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를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에 잠시 MIT에 들렀다. 정식 명칭은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1865년에 세계 최초의 공과대학으로 개교하였으며, 현재의 캠퍼스는 1916년 생겼다고 한다. 리처드 파인만이 졸업한 학교. 어렸을 때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있었으며, 내가 '양자역학'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해주었던 책이었다. 과학에는 젬병이었지만 과학사는 좋아해서 잡다한 교양서를 읽었었다. 철학을 좋아하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세상의 원리에 대해, 진리에 대해 탐구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중력,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나 같은 범인의 사고를 넘어서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확장하고 분석해나가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얼마 전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던 EBS의 "빛의 물리학"이라는 다큐를 보았는데, 그 역시 그런 희열을 느끼게 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머릿속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해냈을 때의 기분, "유레카"를 외칠 때의 그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다큐였다.
이야기가 너무 딴 데로 새 버렸다. 다시 MIT로 돌아오자면, 문과생인 내 편견일지는 몰라도 캠퍼스의 분위기가 방금 본 하버드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보다 실용적이고,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느낌. 공대와 문과대의 차이점은 세계 공통인 걸까.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대학교 역시 그랬다. 그 둘은 같은 학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공대에서 하던 교양 과목을 들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아예 공대 쪽에 발걸음 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화사한 꽃이 피는 문과대와는 달리 공대는 약간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었다. 공대에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농담 삼아 공대 앞의 잔디가 자라지 않는 것은 먹고 남은 고량주를 그곳에 버렸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전공의 특성에 따라 캠퍼스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같은 문과 내에서도 법대와 경영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던 기억이 난다. 건물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도, 건물의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가는 것 같다고 할까.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몸서리쳤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전공이 풍기는, 딱딱하고 재미없고 고루한 느낌의,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싫은데 점점 전형적인 법대생이 되어가는 것 같다며. 만일 내가 철학과에 갔더라면, 공대에 갔더라면, 다른 과에 갔더라면 지금의 나와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까.
MIT는 건축으로 유명한 건물들도 많다고 한다. 전부 보고 가고 싶었지만 날씨가 흐려지고 배가 고파오기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쓱 둘러본 뒤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산물로 유명한 보스턴에서의 다음 메뉴는 굴이었다. Yelp(맛집을 알려주는 앱이다)의 도움을 받아 가장 인기 있는 Neptune Oyster로 향했으나 무려 2시간 45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포기했다. 가게가 무척 작았는데, 예약도 받지 않아 방문하려면 사람이 없는 평일 오후 시간 등을 노리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아무 오이스터 바나 들어가서 굴을 시켰는데, 싱싱하고 맛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역시나 재즈였다. 뉴욕에 줄리어드가 있다면 보스턴에는 버클리 음대가 있다. 한국에도 이 곳을 졸업한 뮤지션들이 꽤 많아 친숙한 이름인 Berklee College of Music. MIT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1945년 설립했다고 한다. 또 다큐 얘기를 하자면, 예전에 "재즈 기행"같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뉴올리언스, 뉴욕, 보스턴이 차례로 나왔었다. 재즈에 왠 보스턴? 하면서 자세히 보니, 보스턴의 작은 재즈바에서 버클리 음대 교수들이 취미 삼아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무식한 나는 버클리가 Berklee가 아닌 Berkeley인 줄 알고 왜 캘리포니아가 아닌 보스턴에 따로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세계 최대의 음악 사립대학이 있는 곳에서 재즈바를 가지 않을 수 없어서, 검색해서 나온 가장 평이 좋은 곳을 찾았다.
재즈바 안은 발 디딜 틈 없었다. 테이블에 자리가 없어 보여서 두리번거리던 차에, 한 노부부가 여기 앉아도 된다며 짐을 치워주셔서 그곳에 앉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한자리라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 내내 영락없이 서 있어야 할 뻔했다. 연주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드럼 소리가 타다다닥 경쾌하게 움직였다. 콘트라베이스가 제 차례에 뚱땅뚱땅 현란하게 현을 튕겼다. 기분이 한없이 좋아졌다.
전형적인 로컬 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금요일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내 앞의 노부부는 여행객은 아니고 보스턴에 살고 있는데, 이 바에는 처음 와 봤다고 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성적으로 박수를 치셨다. 두 분이 소곤소곤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한없이 다정해 보였다. 문득,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자와 함께 재즈바에 와서 칵테일 한 잔 시켜놓고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황혼이란- 평온하고 행복할 것이다. 칵테일 기운, 박수소리, 웃음소리, 재즈 선율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흐드러졌다. 보스턴다운, 재즈의 밤이었다.
흥겨운 밤을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초록 라인에 있었다. 이 Green Line은 지상과 지하를 다 오갔는데, 특이하게도 지상에서는 전차로 다니는 듯했다.
미술관은 그 자체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었다. 통창을 통해 햇빛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미술관에는 자체에서 진행하는 많은 무료투어가 있다. 미술관이 정말 크기 때문에 역시나 투어를 통해 설명을 들으면서 효율적으로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또 내 멋대로 온 여행객 콘셉트에 맞추어 투어를 생략하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관람을 시작했다.
작품이 정말 다양했다. 이집트 관 같은 고대 미술부터 컨템퍼러리 설치미술까지 시대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아프리칸, 아시안까지 장소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들이 있었다. 이 곳에서 4시간 정도를 보냈지만, 하루 종일 보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모네, 윌리암 터너, 피카소, 몬드리안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았고, 작품을 당대의 살롱에서 하던 것처럼 전시해놓은 전시관도 있었다. 마치 내가 살롱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들이던 귀족이 된 것처럼 그림을 보니 더 재미있었다.
미술관에는 수많은 학생이 있었다. 미술작품 앞에서,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 말이다. 뉴욕의 미술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처럼 미술 교과서에 실린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서 직접 보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공부를 한다. 사진으로 볼 때와 직접 볼 때의 그림은 천지차이이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만으로는 그 강렬한 터치감, 풍부한 색감, 유화물감의 입체감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우리나라 미술관에서는 그림 앞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스케치하는 풍경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런 작품들을 어릴 때부터 매일 같이 보고, 느끼고, 직접 따라 그려볼 수 있는 이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미술관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뉴욕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보스턴은 하루 혹은 이틀이면 볼 수 있는 작은 도시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었으니. 하지만 만일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이 도시에 와서, 좀 더 여유롭게 이 도시의 공기를, 분위기를 즐겨보고 싶다. 보스턴은 하버드가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멋진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