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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Aug 10. 2022

기묘한 음악의 기묘한 역주행

Kate Bush : Running Up That Hill

<기묘한 이야기> 시즌 4가 얼마 전 공개되었습니다. 초기 넷플릭스를 먹여 살렸다고도 평가받는 유명한 시리즈인데 사실 저는 보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케이트 부시 때문입니다. 1985년에 발표된 그의 곡 <Running Up That Hill>이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36년 만에 차트 정상에 다시 올랐거든요.


‘케이트 부시’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조금 기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대학교 때, 정확히는 휴학을 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하던 때, 만난 클라이언트 중에 좀 독특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귀국한 아저씨였어요. 한국에서도 브랜드와의 협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팸플릿 같은 소소한 편집물을 만들어야 했기에 디자인과 학생인 저를 고용한 거였죠. 많은 클라이언트가 그렇듯 그도 작업자 옆에 붙어서 자신의 의견을 바로 반영하기를 원했어요. 학생이었던 저도 혼자 작업하는 게 영 불안했던 터라 그러기로 했죠.


오피스텔에 차린 그의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책에서나 봤던 디자인 가구와 소품이 잔뜩 있었거든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공간이었어요. 의자가 불필요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편집숍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던 시기에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곳이 얼마나 신세계였을지 짐작이 되나요? 그곳에 드나드는 동안 모든 의자에 다 앉아봤다니까요. 그러면서도 너무 티 내거나 감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술, 디자인 운운하며 이래라저래라하는 게 왠지 얄미웠던 이 아저씨가 더 잘난 척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곳에서는 항상 애플 해파리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렀는데요. 어느 날인가 생전 처음 듣는 기묘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훅 들어오는 낯섦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죠. “이게 뭐냐? 이 사람 누구냐?” 물었고, 그는 CD 케이스를 건네주었습니다. KATE BUSH. 그날 그 음반을 빌려 퇴근했고, 집에 와서 CD를 구웠고, 매일같이 들고 다니면서 CD 플레이어가 뜨거워질 때까지 들었습니다.


돈도 없고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잘못했습니다···


제가 들은 건 무려 1978년에 발표된 데뷔 음반이더군요. 당시의 기준으로도 수십 년 전 음악이었던 거죠.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케이트 부시가 아티스트 사이에서만 유명한 인디 뮤지션인 줄 알았어요. 이건 어디서 구할 수도 없는 앨범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믿고 있었죠. 어쩌면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그의 감각을 은근히 신뢰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는 사람만 아는 인디 뮤지션인 줄로만 알았던 케이트 부시는 11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여성의 자작곡'을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린 인물이었어요. 게다가 직접 구성한 현대무용을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무선 마이크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해요. 모든 댄스 가수가, 모든 아이돌이 사용하는 그 무선 마이크를 무대에서 처음 착용한 가수가 케이트 부시라니.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 아닌가요? 이제와서야 케이트 부시의 정체를 알게 되다니요.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케이트 부시를 알게 된 분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케이트 부시의 첫 데뷔 싱글 <Wuthering Heights>도 실은 못지않게 역사적인 곡이니 꼭 들어봐야 한다고요.

무려 36년을 거슬러 돌아온 대세라니. 올드하다는 말을 듣는 취향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자랑스러워해도 되겠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 음악 칼럼에 딱 맞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좋은 음악은 죽지 않는다. 보석처럼 조용히 묻혀 기약 없는 발굴을 기다릴 뿐.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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