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이정도
“우리는 일하려고 사는 걸까요?” 난데없는 동료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당연히 아니죠!”라고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아니, 열심히 산다고 하기에는 좀 찔리네요.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정말 하려고 했던 건 자꾸자꾸 미루고 있거든요. 어쩌면 진짜 중요할지도 모르는 것들 말이에요.
최근에 양양의 <이정도>를 들었습니다. 잊고 있던 음악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거예요. 그럴 때면 그 음악을 많이 들었던 때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저도 순식간에 그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그때 왜 이 곡을 좋아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타를 처음 장만했는지.
솔직히, 이 정도는 나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코드가 쉬웠거든요. 오랜만에 이 노래를 돌려 듣다가 다시 한번 쳐볼까 싶어 기타를 꺼내 들었는데 손가락이 잊지 않고 코드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요. 다만 매끄러운 소리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타를 잡지 않았는지 고스란히 말해줬어요. 반질반질한 손끝을 괜히 손톱으로 꾹꾹 눌러보며 매일 한 번씩 방구석에서 기타를 치던 때를 잠시 떠올렸어요. ‘어라, 별로 손가락이 안 아프네’하고 처음 생각한 날, 굳은살이 배긴 손끝을 여기저기 자랑스럽게 내밀며 한번 만져보라고 권했던 날들.
어릴 때부터 저는 잘 다루는 악기가 하나쯤은 있는 사람, 어렵지 않게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나는 꾸준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했을까요. 왜 이제 와서 손가락에 굳은살이 잠시 존재했던 그때를 떠올리고야 마는 걸까요. 뭔가를 계속하거나, 하지 않게 되거나,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매년 못 지키고 또 새해 계획 세우는 저로서는 이런 제가 늘 아쉽습니다.
하지만 들어보세요. 이 곡의 가사처럼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아닐 테니. 빠르고 느린 것, 이기고 지는 것 없이, 서두르는 법 없이 가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말해줄까 합니다. 이 정도도 괜찮아, 이만큼도 충분해. 이 정도로 마무리할게요. 웃음이나 한 번 더 나눠요, 우리.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