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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May 05. 2017

#14, 여기가 시코쿠야, 산토리니야

오헨로미치에서 이아마을을 만나다 (for #34~#36)

015년 10월 27일 화요일 흐리다가 비


- 6.5km - 34 種間寺(Tanemaji) - 9.5km - 35 清滝寺(Kiyotakiji) - 14.8km - 36 青龍寺(Shōryūji)



전통은 있어 보이지만 너무 오래되서 괴기스러워 보이는 에이코료칸에서도 기절한 듯 잘 자기는 했다.

사실 주인 할머니도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주름진 하얀 얼굴, 짙은 다크서클,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얼굴이어서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시코쿠라설까, 민슈쿠나 료칸에 묵다 보면 8~90세 이상은 되어 보이는 주인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루키헨로는 그래도 60대 분들이 많으니 젊은 축인데 단체버스의 오헨로상들 역시 못지않게 연세드신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의 고령화사회가 실감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 아니 지방엘 가면 이미 같은 수준에 도달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연세에도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오헨로미치가 부처님의 공덕일까.

젊었을 적엔 고운 피부에 한 미모하셨을 주인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아침밥을 감사히 먹고 또 다시 이른 출발이다. 




34번 다네마지(種間寺)까지는 6.5킬로니 한시간 반이면 넉넉하겠다. 길도 나쁘지 않다. 

고치시(高知市)니까 고치현을 대표할텐데 도쿠시마보다도 덜 번화해 보인다. 한적한 도시와 너른 들판을 지나고 신카와강을 건너 영락없이 한시간 반만에, 8시반에 다네마지에 닿는다.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다시 10킬로가 넘는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 통증을 유발하지만 어쨌거나 탈난 데 없이 하루 30킬로가 훨씬 넘는 거리를 탈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잘 걷고는 있으니 말이다.

구글어스로 본 33~34번 절 가는 길

다네마지의 본존은 한국인(백제인)에 의해 조각되었다고 하는데, 578년에 오사카의 시텐노우지(四天王寺) 건설을 도와주러 왔던 백제인들이 돌아가던 와중에 이곳에서 난파를 당해 머물면서 작업을 하고, 무사항해를 기원한 후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코보대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당에서 가지고 온 5개의 종자(쌀, 보리, 좁쌀, 수수, 콩)를 이 절에 심은 것에서 절 이름을 種間寺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선지 다네마지는 임산부들이 순산을 기원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35번 기요타키지(清滝寺)까지는 9.5킬로, 고치시내를 서북쪽으로 관통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한적한 들판과 마을을 지루하지 않게 지난다. 56번 국도를 만나 가뭄으로 수량이 적어진 니요도강을 건너서도 한참을 도심지를 따라 걷는데 마을 수로가 어찌나 맑은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슬기가 깨알같이 무수하게 서식하고 있다. 

많이 가파르지는 않아도 막다른 곳에서 30분은 오르막을 걸어야 기요타키지를 만날 수 있다.

구글어스로 본 34~36번 절 가는 길

헤이제이 천황(재위 806 ~ 809)의 황태자 타카오카(高岳)가 구스코(薬子)의 난에 연루되어 궁전에서 추방당해 출가해서는 기요타키지에 逆修탑을 세운 후 인도로 여행을 떠났지만 도중에 소식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 산의 일각을 「入らずの山:들어가지 않는 산」이라 부르는 연유라고도 하는데 타카오카는 라오스의 호랑이에게 먹혔지만 그의 영혼은 역수탑에 남아 절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해준단다.

기요타키지에서 내려다 본 토사시의 조망


36번 쇼류지(青龍寺)까지는 장장 15킬로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 길이 매력이 넘치고 무엇보다 며칠을 희생(?)해서 묵게 된 국민숙소토사(国民宿舎土佐)가 기다리고 있는 데다 그 토사의 위치 또한 절묘하니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다. 악어가 태평양을 향해 기어나간 형상을 한 리아스식 해안의 요코나미반도(横浪半島)의 끝자락에 오롯이 높이 올라앉았으니 전망은 말할 것도 없고 시코쿠에선 처음 체험해보는 로텐부로(露天ぶろ)가 기다리고 있다. 

구글어스로 본 35~36번 절 가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15킬로가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11시반에 기요타키지를 출발했는데도 근 4시간을 꼬박 걷는다.

남쪽으로 토사시를 관통해서는 요코세야마의 츠카지자카터널(塚地坂トンネル)을 지난다. 산을 거쳐서 가는 우회도로도 있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터널로 들어섰는데 이게 또 거리가 장장 1킬로에 육박한다. 비상전화를 사용해보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게 하는 터널이다.


터널을 나오면 태평양에 면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시코쿠의 정남쪽 해안도로 되시겠는데 이 길도 고치현의 동쪽해안도로만큼이나 맘에 드는 길이다. 그래도 바다색깔은 동쪽 해안에 못미친다. 딱 우리나라의 동해안 남해안과 닮아있는 걸 보면 또 신기하다.

36번 쇼류지로 가기 위해서는 요코나미반도로 이어주는 우사오하시(宇佐尾橋)를 건너야 하는데 이 대교가 또 어마어마하다. 그 아찔한 우라토대교도 건넜으니 단련이 되었을 터, 우사오하시의 진입로에서 몇 컷 사진을 담으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이번에는 높이보다 그 길이가 까마득해서 질리고 만다. 다행인 건 인도의 폭이 꽤 넓어서 다리는 자동차의 위협이 그만큼 덜해서 건너는 게 무리는 아니다.


또한 다리를 건너면 야자수 가로수가 즐비한 남국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도 있다.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이동거리도 31킬로정도로 양호한데다 길이 더 정취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오랜만에 날이 꾸물꾸물 비가 내릴 것처럼 우중충하지만, 그래서인지 바다색도 더 검푸르게 보이지만 모처럼 여유롭게 걷는 해안도로가 참 좋다.

황금대사의 거대한 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산요소(三陽荘)를 지나서 우회전하면 쇼류지가 지척인데 난데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일본내 통화 무제한인 소프트뱅크 유심칩을 꽂긴 했지만 전화를 거는 용도로밖에는 사용한 적이 없는데, 국제전화요금이 무서우니 한국으로는 보이스톡밖에 한 적이 없는데 일본 전화번호가 찍히는 수신전화가 참 뜬금없다.

받아보니 오호라! 코우신노야도의 그 할아버지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몸은 괜찮은지 꼬치꼬치 챙긴다. 또 울컥해지려는 걸 참아내고 金剛상의 안부도 여쭙는 데 이분께서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있으니 꼭 너의 눈으로 잘 보고, 너의 마음으로 잘 판단해서 나쁜 사람한테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를 보태신다.


어쨌거나 일본 사람한테서 이렇게 따뜻한 배려를 받는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정성어린 편지로 감사를 표했으니 난 돌아가기전에 전화라도 다시 드려야겠다고 번호를 저장한다.




쇼류지(青龍寺)는 코보대사가 당나라 장안(長安)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수행 후에 진언 밀교(眞言密敎)의 비법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절을 세우고, 이름을 쇼류지(靑龍寺)라고 칭했다고 전해진다. 

쇼류지는 태평양의 토사만(土佐灣) 연안,  요코나미반도(横浪半島)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인왕문(仁王門)을 지나면 바로 가파른 170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올라 경내에 이르면 정면에 본당, 왼쪽에 대사당(大師堂), 오른쪽에 약사당(藥師堂)이 위치한다. 본존인 부동명왕(不動明王)은 뱃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지금도 선원들이 출항에 앞서 이 절에서 참배하며 항해의 안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오늘의 일정은 쇼류지를 마치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국민숙소토사까지 가야 하는데 토사는 쇼류지 뒷쪽의 등산로를 따라 30분을 올라야 하는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꾀만 많아진 나, 일단 전화를 걸어보는데 다행히도 토사의 직원이 쇼류지의 정류장까지 픽업을 와주겠단다. 

픽업차량을 기다리면서 보니 납경책을 넣은 지퍼파일집이 보이질 않는다. 허둥지둥 납경소엘 다시 가보니 전화를 하면서 챙기지를 못한거다. 절반 가까이 담은 납경책을 분실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다.



여기가 바로 산토리니!!


픽업 봉고버스를 내리면서부터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새하얀 벽에 파란 지붕을 얹은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마을에서나 볼법한 건물로 꾸며놓았다.

조금 생뚱맞긴 해도 무거운 순례길에서 만난 발랄한 동화 속 나라같아서 신난다. 

본관은 파란 지붕이 아닌데 1층 로비에 들어서다 깜짝 놀란다. 반백의 장발머리를 묶고 콧수염을 기른 순례복장의 이외수씨가 앉아있지 않은가. 근데 자세히 보니 이외수씨는 아니다. 정말 닮아도 너무 닮아서 놀라는데 빤히 쳐다보는게 느껴졌는지 그 오헨로상도 나를 쳐다보기에 시선을 돌리고 체크인을 한다.


방의 전망도 환상이라, 도쿠시마현을 떠나올 때 묵었던 유유나사 후레아이도나도의 전망이랑 비슷하다.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로텐부로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기에 유카타를 챙겨서 온천으로 향한다. 두개층 쯤 내려가니 지면에서 보면 지하겠으나 산중이라 태평양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따뜻한 온천욕이 기다리고 있다. 온천물에 잠기고나니 때마침 비가 내려주는 것도 특별하다.


"국민숙소토사 너를 위해 어제 내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어야 했는지. 말도 안되게 먼 5개의 절을 다니느라 왼쪽 엄지발가락은 곪을 지경였구 33번 셋케이지 앞에 있는 방만 많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에이코료칸은 미치도록 싫었어. 일본사람같지 않게 예의없이 떠들어대며 식사하던 남자들 속에서 외롭고도 슬펐어. 애꿎은 한국시리즈 1차전 틀어놓고 두산 삼성 둘 다 지라고 심통부리고 있었지.

그런데 오늘, 네가 다 보상해준 거 같아.

절보다도 높은 산 정상에서 이런 뷰를 보여주다니, 비내리는 로텐부로는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어제 이후로 우울했는데 카메라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랑, 일주일 후면 친구가 와 준다는 소식이랑, 코우신 할아버지의 안부전화도 따뜻했구, 쇼류지까지 픽업와 준 토사의 야마모토양도 이뻐 보이고, 온천 내려오면서 세탁기를 돌려야 했는데 100엔을 잊은 내게 빌려준 것도 고마웠어.

계속 돌아가고 싶었는데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온천물에 잠겨서 이런 유치한 상념에 잠긴다.

마냥 잠겨 있고만 싶었지만 7시부터는 저녁시간이라 온천욕을 끝내고 식당으로 간다. 민슈쿠나 료칸과는 달리 식당의 규모가 크고 좌식테이블이 아닌 것도 편하다. 식사도 정갈하니 좋아서 오랜만에 편의점이 아닌 식당에서 파는 생맥주를 주문한다.

그런데 이 숙소의 매니저가 야마모토상한테 들었는지 내게로 오더니 우리나라의 절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표한다. 어디선가 우리나라 지도를 가지고 오더니 그 중에서 본인이 다녀온 절을 쭉 얘기하는 데 유명한 절은 거의 다 가본 듯 하다. 심지어는 나도 못가본 절도 많다. 정말 독실한 불교 신자인 듯, 불교학교에서 불교경전도 공부하면서 아시아 여러나라의 절 순례도 제법 다녀왔다고 한다. 

이 분과 얘기하느라 식사시간이 제법 길어져서 급기야는 아사히 병맥주를 한 병 더 시키고 만다. 로비의 자판기에서 캔맥주를 뽑아와도 되냐니 식당에서는 마실 수가 없대서 부득이 200엔은 더 비싼 병맥주를 시켰으니 오늘은 맥주값만 천엔이다.


시코쿠의 숙소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500엔에 판매하는 곳이 많다. 

생맥주는 민슈쿠나 료칸에서는 거의 없고, 이제까지 중에선 유유나사와 토사 두 군데, 대부분은 아사히병맥주다. 그다음 니혼슈는 보통 사케라고 부르는 14~17도 사이를 오가는 일본 전통술로 오리지널 맥주잔에 따라서 한잔에 500엔씩 판다. 니혼슈는 차게도 마시지만 보통은 따뜻하게 마시는 술이라서 나는 주로 시원한 맥주를 찾게 된다.

아루키헨로 2주만에 내린 비가 숙소에 들어온 후에 와줬고, 숙소며 온천이며 요코나미반도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뷰도 환상인데다가 맛있는 저녁과 적당한 알콜기운으로 행복해진 나, 오늘은 잠도 꿀맛일 듯 하다.




국민숙소토사 (2식포함) 7300엔

음료외 1250엔

필기도구 108엔

세탁 200엔

납경 (34~36번) 900엔


합 9758엔

이동거리 약 3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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