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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나 Apr 26. 2023

나의 첫 번째 직업

나의 믿을구석

초등학교 교사, 회계사, 그리고 전업주부


내가 첫 번째로 가진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교대 3년을 지금까지 못 쉰 것 다 쉰다고 생각하듯이 놀아놓고, 마지막 1년은 고3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10시간씩 공부해서 서울특별시 초등임용고시를 합격했다. 동생이 지금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의 성격은 교대 이전과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열등감이 가득하고 늘 화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내 주위의 다른 친구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가진 열등감.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출하는 예민함.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 자신만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중에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지는 것은 공부였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나는 공부를 했고, 대학입시에서는 교대를 선택했다. 교대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들이 좋고, 교육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어서라는 그런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 직업이 그동안 누구도 나에게 되어주지 못한 나의 믿을 수 있는 구석이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나를 자를 수 없는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나 혼자서라도 가난하지 않게 살아갈 월급이 필요했다.


그 당시에 교대 입학이 이 모든 걸 보장해 주는 것이라 믿었던 나는, 교대 입학 후 처음으로 마음 편히 쉬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할 피곤해서 과제를 조금 늦게 내는 것이라든지, 수업을 땡땡이친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탈이었지만, 늘 살기 위해 자지 않는 물고기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 마음을 편하게 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보통 교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크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던가, 크게 사업을 하고 싶은 타입의 사람들이 아니다. 나처럼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크게 욕심 내지는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비슷비슷하게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는 내 인생의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교대 생활 4년 동안 힘이 들어갔던 내 눈에 힘이 빠지고, 늘 곤두서있던 내 인상은 좀 더 편안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인생에 믿을 구석이 생겼으니까.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내가 만든 믿을 구석이.


그 뒤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살았고, 모든 것을 나누고 주위를 밝게 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난 덕에 다른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것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고, 나의 평생 직업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한 번씩은 내 어릴 때를 기억하며, 나도 기억이 안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니 이 아이들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며 자기 합리화도 했었고, 한 번씩은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아이들 돕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노력했었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연구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믿었던 이 평생직업은 나의 남편을 만나면서부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남편과의 만남은 내가 직업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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