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yne from NY, U.S.
내가 사는 집의 섭리스 공고를 냈던 블레인. 나랑 바통 터치를 하고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발리에 가서 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치앙마이에서 사진 전시회도 연 멋진 친구다. 내가 여기 오자마자 거의 블레인이 떠나는 일정이라서, 사실 우리는 같이 뭔가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쏘 나이스하게도 "점심 같이 먹자. 끝내주는 베지테리언 식당이 있어" 라며 초대해주어서 만나게 되었다.
블레인은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가 <섹스앤더시티>를 비롯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무수히 봤던 그 뉴욕! 그런데 뉴욕이 환상적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사는 것도 환상적일까? 라는 의심을 가지고 블레인에서 "뉴욕에서 자라는 건 어땠어?"라고 물어봤는데 바로 "어메이징!"이라고 대답해서 너무 놀랐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어메이징. 약간이라도 불평을 기대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서울(한국)에서 자라는 건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 나는 좋은 점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과도한 경쟁, 억압되는 개성 등 학창시절의 어두운 요소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것도 실제로 별로 체감도 못했으면서. 그러고보면 나는 교복이 없는 고등학교를 나왔고, 한국 입시 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위에서 자율적인 교육을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신문이나 어디선가 본 듯한 부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나는 서울에 대해 무조건 반사에 가깝게 부정적으로 대답해왔다.
그렇지만 헬조선이긴 해도 서울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있는 나. 좋은 음악, 좋은 공간, 맛있는 곳들이 많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서울에 많다. 그리고 한강! 한강과 한강 수변 공원들은 사실 다른 어떤 대도시에 가도 잘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전해준다. 그 외에 합정-상수-망원동, 사직-계동, 이수, 서울대입구-낙성대 등 아끼는 동네들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서울에서 사는 건 어땠어?하고 물어보면 당연하게 욕부터 할 꺼 같다. 그런 맥락에서 블레인의 대답은 상큼했다. 아주 상큼했고, 그냥 한 단어 만으로 나를 충격에 빠뜨리고 어쩐지 내 마음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무튼 블레인은 뉴욕에서 자랐고, 그녀가 미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라고 주장하는 찰스턴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문화 행정"을 전공했다고 한다. 치앙마이에 와서는 포토그래피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일을 했고, 온라인 디자이너숍 사이트를 큐레이팅하는 등 사이드 잡을 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치앙마이에 조금 질렸다며, 발리로 가서 살아본 다음에, 결국에는 호주를 마지막 정착지로 삼을 것 같다고. 일단 발리에서 일자리와 집을 구해야할텐데 걱정이라는 이 인생은 정말 멋지지만, 놀랍게도 사소하다.
막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막 위축되지 않나. 왜 우리는 저렇게 못살지? 찌질인가? 그런데 그 사람들을 조금 들여다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약간의 용기로,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것이다. 특별한 전문적인 능력? 물론 있으면 무척 도움이 되겠지. 그런데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건 결국 나의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사회와 가족들의 기대와 주변 사람들의 SNS(?)가 아무리 압박을 준다고 해도, 압박에 따라 살아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나의 선택.
당연히 엄청나게 불안하고 감수해야 될 부분이 생긴다. 블레인만 봐도 당장 발리에 가야되는데 집이 없고, 일자리가 없다잖아ㅋㅋ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는 건 생각보다 끔찍하다. 인디레이블에서 일하는 내내 엄마는 사람들에게 내가 취직을 아직 하지 않았다고 얘기했고, 그러면 나는 몇몇 어른들에게 가서 아직 학생인 것처럼 얘기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의 기대에도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이 나중에 자리에 누워서 인생을 돌아봤을 때 잘했다고 셀프 쓰다듬어 주고싶을꺼라는 믿음이 있다.
나는 그만 또 궁금해져서 묻지않아도 됬을 말을 괜히 물어봤다. 그럼 너네 부모님들은 이런 방식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하고 입 밖으로 질문을 꺼내는 순간 My parents are just like "You're crazy but we love you!"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존중은 해준다는 것. 부러워서 울 뻔 했다. 도대체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존중해준다는 문화를 내가 한 번이라도 겪어 봤던가. 아니 나 조차도 그런 걸 해본적이 있을까?
모든 것이 어메이징하고, 제일 아름답고, 잘 될꺼라는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건 이런 문화를 토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많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나부터 하루하루 조금씩 더 좋은 언어와 행동들을 선택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만약에 만약에 엄마가 된다면 아무리 내 사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인생에서 미친 것 같은 선택을 해나간다고 해도 위와 같은 대답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넌 아무래도 미친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응원한다고. 아니 그냥,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얘기해줘야겠다.
우리는 대화를 하고 나서, 치앙마이의 힙스터 동네인 님만해민을 쏘다니며 몇몇 독창적인 악세사리 샵을 구경하고(블레인이 큐레이팅하는 사이트 http://artmarkit.com에 올라갈 예정), 올개닉 열대과일주스를 파는 가게에 앉아서 날이 너무 덥다는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렇게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우리가 다시 못 만난다 하더라도 충분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