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그 질문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이 뭐에요?
내가 좋아하는 질문이다. 아주 무겁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것들을 드러내주는. 이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가장 듣기 좋다는 것은 결국 나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재확인 시켜준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안정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결국 이건 아이덴티티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해 봤는데, 나의 가장 솔직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매우 부끄럽지만)
산,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낸거지. You are crazy....
한마디로 이야기해 내가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내가 무언가 엄청 의미있는 일을 해냈거나 한다는것이고, 그걸 통해 반추해볼 수 있는 나의 아이덴티티는 멋진 일꾼 "Awesome Worker" 이다. 그건 자신의 성향을 얼려주는 이니어그램 테스트 (어떤 면에선 MBTI보다 낫다) 에서도 잘 들어난다. 내 성향의 1번은 성취하는 사람 (Achiever)였다.
지난 한두달간 참 힘들었다. 특히나 새 직장에 적응하면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꿈에도 일이 나오고 눈뜨면 바로 일 걱정부터 하며 허덕이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
무엇이 그렇게 스트레스 였을까. 먼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새로운 환경에서 하려다보니 일이 충분히 손에 잡히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내가 매니징 하는 사람들과 업무 스타일을 맞춰가고 서로 호흡을 맞춰가고 보이지 않는 신뢰와 일하는 리듬을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 내 새 매니저와 호흡을 맞춰가는건 여전히 적응중에 있다. 사람관계 외에도 일터에서 내가 달성할 수 있는 수준과 내게 기대되는 기대치 사이에 너무나 큰 간극이 보여 그 기대치를 조정하는 것도 큰 어려움으로 느껴졌다. 기대치를 초과달성은 못할망정 기대치 정도는 꼭 달성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서 힘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적인 것들 만으로는 내가 왜그렇게 힘들고 정신을 못차렸는지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한두달간의 어려움은 단순한 업무의 어려움이 아닌 "아이텐티티의 위기" 였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자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난 이런 사람인데, 내 아이덴티티는 이것인데, 내가 가장 본질적으로 나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고 자긍심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이 이것인데, 그것이 충족이 되지 않으니 -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고 주위에서 피드백도 그렇고 - 내 삶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한 어려움을 맞닥드린 것이었다.
아이덴티티의 위기에 대처하려면? 먼저 첫번째는 이게 아이덴티티의 위기라는걸 인지하는것. 그것 만으로도 오부능선은 넘을 수 있다. 처음엔 왜 이렇게 힘든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니 계속 스스로를 더 다그치게만 됐다. 스트레스 받는 자신이 맘에 안들고, 그러면서도 나의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니 스트레스 받고, 이런 악순환이 었다.
이게 나의 본질적인 부분이 흔들리는데서 온다는것을 인지하고 나자 비로소 왜이렇게 정신을 못차리는지 이해가 됐고 그제서야 조금더 안정을 찾을수 있었다. 아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거다. 지금 내가 힘든건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에게도 좀더 너그러워질 수 있고 주위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둘째는 참을성과 쉬어가기. 결국 어떤 부분은 상황이 해결해 줄수도 있고 나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맞춰가면서 적응하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더 노력해서 뚫고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도 그 과정중에 있지만 마음은 많이 편안해 졌다). 그 과정은 절대 쉽고 순탄치 않았다. 많은 참을성이 필요했고 쉬어가기도 필요했다. 친구의 이런 말들이 내게 위로가 되어줬다.
알다시피 너나 나나 십년 넘게 한국을 떠났다가 가족들과 같이 귀국했잖냐. 주위에선 다 가족들이 적응 잘했냐고 물어보고 나는 적응 잘하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봤는데, 정작 가족들은 적응 금방하고 내가 적응하는게 오래걸리더라. 일이 편안해 지기까지 일년넘게 걸렸어. 빡셌어. 니가 만만치 않다면 당연한거야.
용쓴다고 해결안될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니 한결 편안해 지고 오히려 일도 더 잘되는게 느껴졌다.
이글의 마무리는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는 칭찬받기 위해 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칭찬 받았기에 사는 삶을 살고 있는가. 다르게 이야기해보자면, 우리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럴필요 없다는걸 본질적으로 인지하거나 믿고, 그 바탕에서 살고 있는가. 자신의 아이텐티티를 증명하기 위해 사는 삶,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믿고 그 바탕에서 사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내가 나 스스로가 멋진 일꾼이란걸 증명하고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살때, 내 삶은 금세 요동치고 흔들리기 쉽다. 일이 잘풀리면 너무 기쁘고 주위에서 인정해주면 한껏 들뜨다가 일들이 내맘대로 안되면 바로 좌절하고 주위와 비교하거나 눈치보면서 작아진다. 무슨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도 다 주위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반면 이미 난 멋진 일꾼이라는걸 내가 믿는다면? 뭔가 더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고 살 수 있다면? 그럼 오히려 난 더 멋진 일꾼이 될수있을거다. 난 멋진 일꾼이기에, 더 당당하고 소신있게, 내가 몰입할수 있고 의미를 느낄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고 열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도 조급해 하지 않고, 또 나올때는 결과에 너무 자만하지 않고 계속 나의 아이덴티티를 살 수 있다. 내면의 안정에서 세상의 커브볼을 이겨낼 회복탄력성과 뚝심이 나온다. 아이텐티티가 쉽게 흔들리지 않기에 그 아이덴티티가 오히려 더 잘 발현되는 삶을 살게 된다.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복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뿐이다.
복, 악인, 하는일마다 잘된다 - 이런 구절들이 확 맘에 걸리는데 진짜 의미를 알면 훨씬 읽기 편해진다. 성경적으로 볼때 복있다/의롭다/죄인/악인 이런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는 많이 개념이 다르다. 결국 이건 아이텐티티의 문제로 볼수 있고 아래와 같이 다시 쓸수 있다.
사랑받은 자. 관계 가운데에서 받은 사랑으로 뿌리를 단단하게 내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은 것처럼 하는 일마다 열매를 볼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자, 사랑과 멀어진 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행하고 자신을 증명하려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뿐이다. 뿌리가 없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날라간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난 이미 사랑 받았는가. 난 나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가. 세상에선 끈임없이 좌절하고 실패하고 안좋은 피드백도 받고 하는데, 나의 영혼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계속 뿌리를 내릴수 있는가. 그게 공연한 구호나, 억지스럽게 마음에 위안을 주는 최면제가 아니라 진짜 삶이 될 수 있을까. 열매에 연연하지않았기에 더 참 열매를 맺고, 아니 열매로만 내 삶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체크하기 보다는 내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지를 바탕으로 내 삶을 체크해볼수 있을까. 이게 바로 믿음의 영역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나의 믿음은 여전히 너무 작지만, 그래도 난 시냇가에 심은 나무, 끊임없는 생수의 강물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고 있는 은총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보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