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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Baek 백산 Oct 28. 2023

스타트업 vs 대기업 PM

스타트업 출신이 큰 기업에서 일하면서 훈련하는 근육들

이번글은 오랜만에 일하는 이야기이다. 쿠팡에서 일한 지도 일 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아래 최근 부쩍 연습하고 훈련하게 되는 근육들을 나눠본다.


조금 더 맥락을 설명하자면, 나의 경력은 공무원을 제외하곤 주로 스타트업 쪽에 있어왔다. 극초기스타트업에서 시리즈 B까지, 시리즈 B에서 Pre-IPO까지 등을 골고루 경험해 봤지만, 시가총액 수십조의 퍼블릭 회사에서 일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방식과 큰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은 확실한 차이가 있어서 새로운 배움이 필수적이었다.


또 하나는 쿠팡이란 조직이 일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확실히 타 기업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있다.


아래 크게 세 가지 일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2, 3번은 좀 더 큰 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필요한 능력에 가깝다면 1번은 쿠팡의 일하는 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문제 파악하고 정확히 전달하기

내년도 연간계획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참 나도 이제 쿠팡맨이 돼 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몰로코에서 만들었던 Deck과는 정말 다른 느낌의 Deck이었다.


몰로코에서 만든 Deck은 대략 이런 식이다. 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품이고 기술이다. 전체적으로 기술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이게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길이기에 우리의 제품 로드맵은 어떻게 되고 필요한 리소스는 어떻고 대략적인 Milestone은 이렇다류의 Product Roadmap과 그거에 바탕을 둔 OKR을 분기별, 때로는 연간계획을 만들곤 했다.


쿠팡이 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약 50% 이상의 에너지를 정확한 문제 진단에 쓴다. What과 Why을 고민하는데 50%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How는 그다음이야기이다. 내년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왜? 왜? 왜? 왜?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가? 가장 큰 시장 가치가 있는가? 가장 고객에게 중요한 건가? 그걸 엄청나게 파고들어 핵심을 한 줄로, 한방에 확실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의 끝에서 나온 액기스만을 한두 장으로 표현하고 뒷받침하는 모든 것들을 첨부로 부친다. 여기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야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매우 공격적인 목표치,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Aim high 목표치를 잡는 것이다. Top down, bottom up 방식을 둘다 활용할수 있지만 처음 방향을 설정할때는 Top down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한다.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쓰이는 총 디지털 광고비가 10조라면 그중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일부를 제외하고 접근가능한 파이의 X%를 우리가 차지하겠다. 그걸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고 그다음은 이거고 이걸 다 해결하면 X조의 비즈니스를 키울 수 있다. 여기서 align이 되면 어떻게 이걸 더 빨리 달성할 수 있는지의 논의로 넘어갈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How뿐 아니라 What의 영역에서도 fail fast, try & iterate의 Lean startup 방법론이 바이블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어차피 Product market fit 전단계라 어떤 것에 시장이 반응할지 계속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어느정도 커진 이후엔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게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야 더 큰 자원을 움직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대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이런식으로 접근하는건 아니다. 그랬다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speed를 잃을 수 있고 보고하고 준비하는데 모든 시간이 뺏길수 있다. 다만 중요한 방향이나 의사결정에 있어선 이 방법론이 매우 효과적이다. 핵심 의사결정애 있어서 깊은 고민이 담긴 간결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리더들과 타이트하게 얼라인하고 얼라인 이후 최대한의 자율성을 주는것이 결정의 질과 스피드 모두 극대화하는 쿠팡의 방법이다.


진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은 참 많이 훈련되고 있다.


정무적 감각

Stakeholder alignment (이해관계자와 맞추기) 란 말이 있다. 회사가 기존에 일하던 회사들보다 훨씬 크고 유관부서와 계획을 계속 맞추지 않고는 진행할 수 없는 일이 많기에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공격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여러 부서와 연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평소에 술 한잔하고 밥 한 번 먹고 인맥 쌓고 하는 게 아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방법들이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win-win을 만들기

win-win이 불가능할 때는 회사에 가장 도움 되는 방향이 뭔지 설득하기 (company wide perspective)

일의 맥락과 전체 스토리로 설득하기

상대방에게 influence 하는 다양한 경로로 설득하고 조율하기


1번,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win-win을 만드는 건 가장 쉬운 케이스이다. 이렇게만 되면 일이 얼마나 쉬울까.


상당수의 일은 상대방의 KPI에 위협을 직간접적으로 가하거나 상대방 입장에선 시간과 에너지 쓸 이유가 없다. 이 경우 2, 3, 4번과 같은 방법이 필요하다. 2번과 3번은 설득하는 것이고 결국 논리의 싸움에서 이기거나 상대방이 거절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으면 best지만 그건 구조적으로 참 어렵다). 4번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4번은 상대방의 상사나 그 상사의 상사를 설득하기, 또는 상대 팀이더라도 이 어젠다에 좀 더 동의하는 사람을 같이 미팅에 초대해서 설득하기 등이다. 때론 (종종) 내가 다 할 수 없기에 내 상사나 타 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같이 미팅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조율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굳이 많이 활용하지 않아도 됐던 이런 정무적 감각이 정말 많이 훈련되고 있음을 느낀다.


토론과 설득, 질문, 미팅의 적절한 활용

1, 2번과 연결된 이야기인데, 결국 How보단 What/why의 싸움이 많으니 그것에 따른 치열한 토의를 어떻게 잘 끌고 갈 수 있는가. 이게 핵심역량으로 계속 요구되고 또 길러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결국 핵심은 미팅 잘하기이다.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몇 분의 시간을 잡을 것인가

내가 이 미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이 미팅을 해야 하나

아군은 누구이고 중립은 누구이고 적군 (? -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고 들어가도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미팅이 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고 하는 건 늘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특히나 영어로 순간 대응을 하는 것. 간결하고 핵심을 짚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 발언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 신용도도 금세 떨어진다.


이제는 좀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미팅은 철저히 준비하려 한다. 임기응변은 내가 타고난 강점이 아닌지라 미리 핵심 포인트를 적어가고, 예상 시나리오를 생각해 가고 하지만 그래도 어려울 때가 많다. 말로 하는 치열한 싸움. 진짜 말 잘하고 토론 잘하는 리더들 사이에 있다보면 어떨때는 말로하는 한편의 아름다운 전투 예술품을 보는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의 기술은 적절히 질문하고 문제를 환기 (Call out) 시키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선 ABC가 필요한 상황에서 B를 맡은 팀이 다양한 이유로 생각보다 담당한 부분에 대한 delivery가 지연되거나, 정확한 예상완료시점을 설정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리더십 미팅을 적절히 활용하여 문제를 환기시키는 게 필요하다. 갑자기 이야기하면 B팀이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전체 프로젝트가 지연되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설득과 부탁/정중한 push 등을 활용하고 미팅의 자리에 앉혀서 객관적이고 예의 바른 질문으로 해당 이슈를 환기시키는 게 중요하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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