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교회의 든든한 서포트 위에서 거침없이 일해볼 수 있었던 한 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안 그래도 밖에서 오는 자극으로 안을 들여다볼 틈을 안 주는 게 한국사회일진대, 올해는 유독 심한 것 같다. 분주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커피 한잔과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2024년 한 해를 돌아보고자 한다.
가족 (Family)
한국 온 지 2년이 된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안정을 찾고 지내온 한 해가 아니었던가 한다. 분명 만만치 않았던 순간도 꽤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감사한 게 참 많다. 연말에 미국여행도 하고 있고 중간에 휴가로 베트남 푸꾸옥도 한번 다녀왔다. 아래에 쓰겠지만 전 가족이 선교도 다녀왔고, 미약하나마 금요일 저녁은 가족시간/모임으로 정해서 실천해보고 있다.
아내: 아내는 올 한 해도 세 아이와 다양한 가족/친구를 성심성의껏 돌보며 학교에서 어와나 디렉터로 멋지게 섬겨왔다. 점점 더 Christianity의 색이 빠져가는 학교에서 복음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걸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해보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찬양팀을 만들어 리딩하면서 본인의 타고난 취미/재능이 십분 발휘되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걸 경험하면서 아주 신나는 경험도 했다. 개인적으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집에서 타는 스탠드 바이킹, 종종 하는 러닝, 월요일에 가는 댄스스쿨), 건강관리도 열심히 했던 나름 알찬 한 해가 아니었다 한다.
하루: 하루는 친구관계에서 은근한 드라마가 계속 있었지만 3학년에 제법 잘 적응해가고 있다. 피아노와 미술을 좋아하고 스토리를 워낙 좋아해서 최근엔 책 내는 프로젝트도 했다. 교회에서 했던 댄스학교 (두드림)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여전히 민감하고 본인 중심적인 하루의 마음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진 찍으며 이쁜 표정 지으려 하고 배가 너무 나온 것 아니냐며 외모에 신경 쓰는 것 같아 맘이 쓰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빠한테 앵겨붙으며 같이 자자는 애교 많은 딸이라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하율: 하율이는 올 한 해 은근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2학년으로 가면서 영어도 안되고 축구실력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로 친구들 사이에서 치여서 하율이도 우리도 마음고생했던 시절이 꽤 있었다. 하지만 교회선생님의 든든한 사랑과 가족의 서포트, 본인이 가진 따뜻한 성품을 바탕으로 잘 이겨냈다. 태권도 품띠도 따고, 축구도 열심히 하고, 영어 읽기도 조금씩이지만 늘면서 잘 살고 있다. 닌텐도 게임과 축구카드에 푹 빠져있고 산수 암산을 곧잘 한다. 펄쩍대고 서툴지만 내 눈에 내 맘에 늘 제일 많이 들어오는 건 요놈이다. 나를 닮은 둘째 - 하율이.
하임: 하임 이는 올해도 씩씩하게 잘 지냈다. 생애 첫 선교도 가보고, 형아 누나 따라다니면서 할 말 다하고 할 것 다했다. 이제는 레고도 곧잘 하고, 보드게임도 할 수 있는 게 몇 개 생겨서 같이 놀만하다. 무엇보다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병원신세를 거의 지지 않았고 학교에서 영어도 배우면서 언제나 씩씩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 가끔씩 너무나 재치 있는 말로 우리를 뒤집어놓는 재간둥이. 종종 드러누워 큰소리로 짜증 내는 것만 빼면 너무 완벽한 우리 막내. 셋 중에서 제일 신경 안 쓰이는 게 우리 막내이다.
기타: 처남 네가 둘째를 낳아서 연말에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형네 식구도 형수님과 조카가 우리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주 보고 있고 부모님과도 몇 번 여행도 가고 꽤 종종 얼굴 보고 살아왔다. 친척들도 가끔씩 보고 있고.
내가 참 좋아하는 우리 청소년부의 문현철 목사님이 하신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교회는 재밌는 곳이에요. 교회는 행복한 곳이에요."
난 자라면서 교회라는 곳을 몰랐기에, 과연 교회가 재밌는 곳인지, 행복한 곳인지 그런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건강한 교회는 정말 재밌고 행복한 곳이다. 부담 없는 곳. 세상 어디를 가도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고 뭔가 나를 증명해야 될 것 같지만, 교회에 오면 그냥 마냥 받아들이고 서로 지지해 주는 곳. 가족과 같은 공동체. 그런 곳이 아닌가.
아래 올해 즐겁고 행복했던 교회 공동체 경험들을 몇 개 나눠보겠다.
한주를 살아갈 든든한 힘을 주는 셀 가족: 올해 본격적으로 새로운 셀을 만나고 셀 생활을 시작했다. 늘 기도로 사랑으로 우리를 섬기시는 셀장님 부부와, 캐릭터 살아있는 설원 한 분 한 분 덕에 일요일 오후에 두어 시간 삶과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은 늘 웃음과 울음으로 넘쳐났다. 한 주간 나의 무거운 짐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시간, 스스로에게도 아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내 마음이 안정을 찾고 다시 한번 응원과 위로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시간. 내게 셀모임은 그런 시간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절대 별거 아닌 게 아닌, 한주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주는 든든한 버팀목. 어느새 셀이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내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고 있었다.
가족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 캄보디아 선교: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 중 하나이다. 우리 가족은 캄보디아 선교를 다 같이 다녀왔다. 아래 좀 더 긴 소감을 남겼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가족이 확장됨을 느낀 선교였다. 다녀와서 우리 아이들은 삼촌 이모 형 누나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나도 같이 축구하는 축구팀 식구들이, 아내도 같이 춤추는 공연팀 친구들이 생겼다. 전교인 수련회도 마찬가지다.
서울드림교회에서 43명이 캄보디아 시아누크빌로 축구 및 어린이 사역을 다녀왔다. 우리 가족도 함께했는데, 특히 가족 단위로 온 팀은 드물어서 의미가 있었다.
선교는 항상 나에게 강렬한 기억과 깨달음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왠지 집중하기 어려웠다. 인터넷 사용, 가족 돌봄, 영적 준비 부족 등이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을 보고 감사함을 배우길 바랐지만, 아이들의 솔직한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그러나 기도 중 "그러는 너는 무엇을 느꼈니?"라는 질문을 통해 나 자신도 깨달음이 없음을 인정하게 됐다.
하나 가슴에 남았던 것은 라이프대학이다. 캄보디아 라이프대학교 총장님을 만나, 그분이 20년 동안 헌신하며 만들어낸 학교의 비전을 들으면서 큰 영감을 받았다. 이는 100여 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세운 연세대학교의 역할을 떠올리게 했다. 앞으로 나도 이런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꿈꾼다.
돌아온 후 일상으로 복귀하며 바로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스스로의 부족함, 일상의 작은 것에도 불평하고 떼쓰는 아이들의 모습에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의 변화는 없어도 이런 선교의 경험의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가운데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을 믿는다. 마찬가지로 부족한 내 모습조차도 그분이 기다리고 계심을 믿고 소망한다.
이 땅의 천국을 맛본 전교인 수련회: 2박 3일간 천국을 경험한다는 띰으로 만들어진 전교인 수련회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천명이 넘는 사람이 하나 될 수 있구나. 서로 울고 웃으며 천국을 경험할 수 있구나. 레크리에이션, 체육대회, 재능기부, 공연, 예배, 나눔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이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천국에서 읽는 편지"였다. 말기암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도 있었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었고, 취업과 결혼의 문턱에서 힘들어하는 청년도 있었고, 중년에서 가정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사연도 있었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위로 (천국의 자신이 이 땅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듣는데 듣는 내내 울고 웃었다. 천국에 가면 우리 모두 이렇게 울고 웃지 않을까 그걸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래는 내가 스스로에게 쓴 천국에서 쓴 편지이다.
"산아, 열심히 살고 있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네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짠하네.
산아, 여긴 정말 좋아. 네가 좋아하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해. 아주 찐하고 진한 것들로 넘쳐나지. 울고 웃을 일들이 끊이지 않단다.
산아, 너에겐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더 잘하는 게 참 중요했지. 하지만 여기선 그런 것들이 필요 없어. 모든 게 하나의 놀이 같은 거라, 이겨도 좋고 져도 좋아. 그냥 모든 걸 즐기면 돼.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더 사랑하고, 사랑받고, 웃고 울며 살아가느냐야.
산아,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어. 네가 제일 불안해하던 거 말이야. 너의 남은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니? 너는 그저 그런 삶을 가장 두려워했잖아. 쉽지 않은 질문이지?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말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네가 어떻게 느끼든, 너의 삶은 이미 특별해. 아주 Spectacular 해. 여기 모든 게 다 있어. 지금 내가 다 설명해 줘도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안심해. 너는 곧 깜짝 놀랄 거야. 얼마나 반짝이는 것들이 많은지.
산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궁금하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그건 이야기하지 않을게. 너의 삶은 너의 몫이니까. 다만 한 가지는 말해줄게. 너는 잘 살아냈고, 잘 이겨냈어. 네 몫의 경주를 다한 거야. 물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언제나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괜찮아. 이미 그분이 승리한 싸움이니, 넌 그저 네 몫을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넌 잘 해냈어.
산아, 백산. 기억해. 세상이 뭐라고 하든, 네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넌 최고로 멋진 왕 같은 제사장이자 거룩한 전사야. 예수님의 사랑이고 자랑이야.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받으렴. 그러면 너의 남은 삶도, 천국에서의 삶도 더 풍성해질 거야.
산아, 사랑한다. 축복한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지금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모두 설명되고, 희미했던 것들이 명확해지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네가 온전히 너 자신이 되는 날이 곧 올 거야. 그 까불거리던 소년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기대해. 정말 재미있을 거야."
부르신 곳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틴즈수련회: 올해 두 번의 틴즈 (서울드림교회 청소년부) 수련회에 다녀왔다. 두 번 다 아주 큰 감동과 전율 느꼈다. 나 스스로도 영적으로 회복됐고, 아이들이 짧은 수련회 기간 중 변화하고 피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을 향한 중보기도가 터져 나올 때의 그 놀라움이란. 내가 있을 곳에 있는 느낌. 자세한 건 이글에 썼다 - https://brunch.co.kr/@sanbaek/61. 아래 그 일부분을 발췌해서 남긴다.
슬램덩크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백호가 덩크를 꽂아 넣고 스스로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그가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자신의 능력에 깜짝 놀란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시면 나도 그런 경험을 한다. 내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올 줄 몰랐는데, 이런 선포가 나올 줄 몰랐는데 하는 놀라움과 감격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의 감격에는 경외심이 있다.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나와 내 밖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둘 간의 공명을 느낄 때, 진정한 person-world fit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영적 체험이다.
작년 여름캠프 때도 이 경험을 했고, 이번에도 아이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그 감격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 내가 받은 역할 하나를 다시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중보자로 부르심을 받았지. 너무 오랜만에 터져 나오는 기도가 내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일터에선 정말 여러 일들이 있었다. 여기에 쓸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지만 참 올해도 다이내믹했다. 하나 감사하고 뿌듯한 것은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던 나름의 결과를 냈다는 것. 드디어 내가 책임졌던 제품이 Org 차원에서도 상당히 주목을 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특히 매니저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많이 돌아보고 생각했던 한 해였다 - 여러 어려움도 겪고 맘고생도 정말 많이 했던. 또 리더십 커뮤니케이션과 상위 관리자와의 호흡/눈높이 맞추기, 유관부서와의 조율에도 정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우고 성장한 한 해였다.
아래는 일터 밖에서 해볼 수 있었던 몇몇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이다. 일터에서 받는 여러 스트레스와 목마름을 또 이런 일들을 통해 충족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풍성했던 한 해였다.
교수로서의 꿈을 다시 꾸고 확인시켜 준 한양대 겸임교수: 올해 처음, 한양대 경영대 겸임교수로서 한 학기 한 개의 강의를 맡았다. 아래 1학기 학부수업을 마친 자세한 소감을 남겨놨다. 2학기에는 한국어로 MBA강의를 해보기도 했고,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부수업이 더 재밌어서 다음학기에도 아마 학부수업을 한 번 더 진행할 계획이다. 일이 바빠지면서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조금 더 학교란 세팅에서 다음세대와 같이 부대끼고 호흡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만들어줬다.
1. 어쩌다 하게 됐는지: 올해 초에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 너무나 존경하고 따르는 한양대 교수 형이 혹시 겸임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 있는지 물어봤다. 외국인 학생들이고 영어로 주 1회 수업하는 것이며 직장시간을 고려해 퇴근 후 저녁시간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평소 가르치는 것에 대해 로망이 있었던 차이고 직장매니저도 선뜻 응원해 줘서 바로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설렘반 기대반으로 지난 3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 총 15주간, 약 50여 명의 한양대 경영학부 1-2학년 학생들을 맡아서 전공필수 경영의 이해 (3학점) 수업을 가르쳤다.
2. 학생들에 대해: 외국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동남아, 중앙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국가에서 왔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국, 스웨덴, 멕시코, 독일,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등 국적도 정말 다양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미국은 너무 비싸고 가기도 어렵고 그 대안중 하나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K pop 등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진 것도 크게 한몫했다. 한국으로 유학 가는 유학원도 계속 늘고 있고, 경희대/한양대 등이 장학금도 적극 주면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외국 학생들이 생활하기엔 여전히 너무나 불편한 생활환경이 안타까웠다. 많은 학생들이 자국에 비해 높은 학비와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여름 인턴을 하고자 했지만 비자, 언어 등 장벽이 너무 높았다. 외국인 학생이 쉽게 결제할 수 있는 결제시스템도 매우 불편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폐쇄적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갈길이 멀다.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참 많다. 방글라데시 출신 친구들이 있었는데, 돈을 아끼려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신림동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음식도 많이 해 먹고 지내고 있었다. 이슬람교인 이들은 한국에 와서 너무나 놀란 게 많은데 하나는 다들 질서를 너무 잘 지키고 거리가 너무 깨끗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누구도 어른을 공경하는 것 같지 않고 대중교통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에게도 깍듯이 "professor". "sir"라며 예의를 갖췄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더라.
3. 수업에 대해: 수업 목표는 크게 세 개로 잡았다. 1) 기본적인 개념 이해 2) 실제 산업현장의 경영자로부터 배움 3) 직접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움 (learning by doing). 시험은 없었고, 수업은 기본적으로 business model canvas를 활용해 고객이해/문제정의, 프로토타이핑, 빠른 이터레이션,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을 가르치고 직접 팀프로젝트로 이 과정들을 만들어서 최종 발표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중간에 5-6회 외부전문가를 불러서 강의를 들었다. 조금은 MBA 스럽게 진행했는데, 학부 1-2학년인데도 계속 응원해 주며 필요한 정보와 리소스를 공급해 주자 학생들이 곧잘 따라왔다. 최종발표 퀄리티는 상당했다. 한두 개 팀은 정말 꼭 이런 비즈니스를 했으면 좋겠다는 수준의 아웃풋을 내놨다. 크게 네 개로 구성된 강의 (1) 팀프로젝트, 2) 팀최종발표, 3) 일반강의, 4) 외부강사 렉쳐) 중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것은 외부강사 렉쳐였고 두 번째는 팀최종 발표였다.
4. 교수로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도 예상도 했지만 정말 좋았다. 매주 월요일 저녁 천금 같은 몸을 이끌고 가서 수업하고 나면 녹초가 됐지만 많은 기쁨과 에너지를 주는 시간이었다. 강의평가도 진행했는데, NPS score avg. +9 이 나왔고 전체 경영대학 평균보다도 높은 강의평점을 받았다. 학생들이 너무나 encouraging 한 피드백들을 남겨줘서 힘이 많이 됐다. 아래는 가장 기분 좋았던 피드백이다. 물론 더 잘할 것도 많았지만, 잘했다는 피드백이 더 많아서 발췌독했다. 시험도 안 보고 좀 더 실무적으로 접근한 게 학생들한테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된 게 아닌가 싶다.
For complete freshmen, this class is absolutely essential. It’s fun and engaging, as students are encouraged to come up with their own ideas and bring them to life. The professor has made the classes light while teaching us essential skills. The first-semester courses can be daunting, so the professor's soft yet encouraging approach has been very supportive. The classes were designed effectively and were stress-free, giving new students a chance to get comfortable with university life.
As a second-semester student, for me it felt refreshing to be able to create and work passionately without fearing harsh judgment and negative grade like in other classes. Constructive criticism is necessary for growth; however, being softly guided towards realizing our weaknesses is encouraging. Hence,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the professor for warmly accepting our efforts and for making the classes so enjoyable. Thank you.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학교도 다양한 행정적인 절차가 꽤 많다는 것.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는 것부터 외부강사 초청비용지급, 나중에 성적 매기는 것까지 신경 쓰이고 손이 가는 일이 꽤 있었다. Part of the process/deal I guess...
5. 마치며:이 친구들이 눈에 밟히는 거 보면 정이 꽤 들었나 보다. 정도 주고 마음도 주고 가진 작은 지식과 네트워크도 줄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고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아서 참 감사했다. 2학기에는 MBA수업을 맡아보게 됐는데 벌써 기대된다. 학생들 밥 사주거나 특강으로 만나보고 싶으신 분들 언제든 환영입니다.
다음세대와 미래의 한국을 꿈꿔볼 수 있었던 2045 펠로우십: 올해 또 잊을 수 없는 것이 2045 펠로우십 1기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한 경험이다. 2045 펠로우십은 사회문제에 관심 갖고 헌신하고자 하는 차세대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올해 그 첫발을 내디뎠는데, 개인적으론 공직을 떠나고선 생각하고 접하기 어려운 공공영역의 주제들을 다루는 것 만으로 내게는 안식이고 즐거움이었다. 거기에 더해 펠로우 한 명 한 명이 또 다 같이 내뿜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고 여러 멘토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너무나 뜻깊었다. 기억에 남는 게 너무 많은데 세 가지만 꼽자면 하나는 한국의 기업거버넌스 문제의 심각성을 배울 수 있었던 것 (주주거버넌스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주식시장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만연한 것), 그리고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와 같은 자기 분야에서 정진하는 차세대 리더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마지막으로 펠로우 한 명 한 명이 보여준 놀라운 에너지와 추진력들이었다. 내년도엔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 지금 2기를 활발히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마켓플레이스에서 꿈꾸는 사람들과의 교제 - 어벤쳐스와 Praxis: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크리스천 스타트업 벤처 경연대회/커뮤니티 어벤저스 분들과 종종 교제를 가졌고, 내겐 늘 영혼의 샘물과 같은 Praxis 단체와도 관계를 이어갔다. 중간에 Praxis Annual summit을 다녀오고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고, 올해 멘토링을 맡은 팀이 어벤저스 우승을 하기도 하는 기쁜 일도 있었다. 한국사회의 기독교 부흥을 경험했던 50/60대의 선배들과 이제 바통을 넘겨받으려 하는 30/40대 분들과 마켓플레이스에서 교제하는 건 스트레스 많은 일상에 재충전과 쉼을 주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년도에도 이분들과의 교제가 기대된다.
위에 써놓고 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감사하고 뿌듯한 것부터 써보자면
거침없이 일해볼 수 있었던 것: 미국에 살면서 가장 답답하고 목말랐던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되게 느껴진 것. 직장에서의 일을 빼면 나의 "일하는 자아"를 찾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별달리 없다고 느껴져서 참 힘들었는데, 그래서 한국에 와서는 할 수 있는 일을 거침없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본 한 해가 아니었나 한다. 우스갯소리로 "난 돈 안 되는 건 안 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하는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 중에 돈 되는 일은 없는 듯 - 내 버전은 "난 재미없는 건 안 해"이다. 그래 이것저것 하면서 마음껏 즐긴 듯하다.
(조기) 축구: 올 한 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회에서 시작한 조기축구이다. 난 왼쪽 윙 포지션으로 축구인으로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가져가고 있다 (please don't judge me). 전에는 조기축구에 목숨 거는 아저씨들 보면서 웃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있다. 마음껏 축구할 때면 일터의 스트레스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다 내려놓을 수 있다. 한 주 중 가장 (?) 기다려지는 시간.
투자를 조금씩이나마 시작한 것: 사실 시작했다기엔 너무 적은 액수고 미약하지만 늘 미루기만 하다가 (투자할 자산도 없었고) 드디어 몇 개 account 만들어서 미국 index fund중심으로 투자하고 있고 에인절투자도 올해 처음 시작해 봤다. 주식투자관련해선 투자 관련 책 몇 개 봤는데, 늘 들여다보는 투자할 자신이 없어서 장기투자 콘셉트로 해보고 있다. 아직 집 한 채 없는 외벌이 애셋 아빠인지라 조금씩이나마 재정이 모이는 게 참 소중하고 어서 더 모아서 집도 사고 내 역할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들: 올해 한 친구가 하나님을 만나고 가까워지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생각하며 중보기도를 종종 하기도 했고. 오랜 친구들과도 종종 봤고 새로운 친구도 몇 사귀었다.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서로 의지하고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삶에 큰 힘이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도 여럿 있다.
성령님과의 동행/말씀에 기반한 신앙생활: 무엇보다도 올해를 돌아봤을 때 얼마나 동행했는가. 얼마나 그분 안에 거했는가. 얼마나 말씀이 육신이 됨을 경험했는가 봤을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기도의 깊이도 깊지 않았고 말씀 묵상 생활도 너무 얕았다.
책: 올해는 유달리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주로 유튜브를 하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며 머리를 식힐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책이 몇 권 있지만 홈런은 없지 않았나. 내년도엔 내 영혼을 흠뻑 적셔줄 책을 더 만나고 싶다.
아직 송구영신 예배도 드리지 않았고 2024년이 며칠 남아서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래 기도제목과 소망을 나누며 2025년을 맞이하고 싶다.
1. 성령충만. 더 동행하며 더 사랑받고 사랑하며 그분 안에 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2. 가족이 계속 단단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특히 우리 가정에 시작된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계속 열매 맺어가기를
3. 일에서 더 승리할 수 있기를. 더 잘하고 싶다. 그리고 덜 스트레스받으며 조급해하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힘닿는 한 거침없이 일해보고 싶다.
4. 내년도엔 근육 벌크업도 좀 더 하고 축구도 더 잘하고 싶다. 그리고 유튜브/게임 줄이고 읽고 쓰는 시간을 더 확보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pour over 할 수 있는 여러 다음세대를 더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