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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 수첩 May 07. 2020

[손광주]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의 저글링이 ....

2019. 생생화화

이미지와 사운드텍스트의 저글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손광주 (b.1970) 는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예술대학에서 영화/비디오/뉴미디어를 공부했고 이후 극/실험/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간략한 그/녀에 대한 소개이다. 솔직히 손광주의 이러한 배경,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영화계에서 오래 활동하다가 미술계에서 활동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게 하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사진계와 미술계가 있고, 각각이 조금씩 다른 생태계를 가지고 있어 이를 넘나드는 작가가 많지 않으며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듯, 손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면 영화계와 미술계의 다른 생태계와 서로 다른 언어에 대해서 숙지해야 하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손광주 작품의 각각에는 영화의 흔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지훈은 <두 개의 아방가르드를 종합하기, 다른 내러티브의 다면체>라는 글에서 시종일관 손광주의 개별 작업들에 묻어있는 영화적 레퍼런스를 짚어내었을 정도로 그/녀는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의 흔적, 이것이 그/녀의 작업을 논할 때 장 뤼 고다르와 장-마리 스트로브, 홀리스 프램튼, 오웬 랜드 등의 거장의 이름이 빈번이 언급되는 이유이고, <동풍 Wind from the East>, <현기증 Vertigo>와 같은 고전적인 영화들이 거론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의 경력을 미루어 짐작한다면 이렇듯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을 쓰는 내내 ‘영화’라는 녀석이 자꾸만 발목을 잡을 것 같지만,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에 대한 그 어떤 레퍼런스도 없이 작품을 보게 되듯 그렇게 무빙이미지 자체로 그/녀의 작업을 읽어보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위안을 삼아 시작해보기로 한다.     


초록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숲 위로 곤돌라가 지나간다. 무려 10분30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며, 등장인물도 없다. 가끔씩 쿵!쿵! 덜컹 혹시 사고라도 날까 싶다가도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올라가는 곤도라의 그림자만 보다가 영상은 끝난다. 2007년작 <Apparition>이다. 처음 본 손광주의 작업이었다. 아. 뭐지? 지루할 법했다.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심지어 보는 내내 마음이 쫄깃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Apparition, Experimetal, DV, color, sound, 10:30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하나의 경향이나 장르로 정리되지 않는 것처럼, 손광주의 작업 역시 장르적 구분을 제외하고는 하나의 경향을 찾기 쉽지 않다. 매 작업마다 조금씩 다른 형식적인 변주가 드러나며, 주제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부분을 건드린다. 한국사에 대한, 개인에 대한, 현대사회에 대한, 때론 여행에서 얻은 영상의 편린들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제 3언어>, <단속평행>과 <Apparition>이 다르고, <리서치>와 <캐릭터>가 다르다. 단편작업이 메인인가 싶으면 장편의 극영화도 있다. 손광주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한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작업은 다양한 형식을 넘나든다.     


손광주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참 어휘력이 풍부한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서 어휘력이란 단순히 시각 이미지의 편집과 사용에 있어서 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시청각이 아우러지는 공감각적 어휘력을 풍부하게 구사한다는 의미다. 그/녀의 이 풍부한 공감각적 어휘력은 편집이라는 장치를 만나 더욱 다양하게 구현되는 듯 하다. 손광주가 편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더 스트림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편집과정은 이미지와 사운드로 쓰는 시나리오 작업입니다. 하나의 이미지는 형태소, 단어가 되고, 편집된 시퀀스는 문장 또는 문단이 됩니다.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며 극적인 재미 뿐 아니라 지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시청각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작품 속 배경음악, 효과음과 같은 청각적 요소는 시각이미지와 절묘하게 만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3언어> 16mm, 실험, 흑백, 사운드, 14:00, 2003 / https://ksonimage.com/the-third-tongue/

손광주의 이 같은 작업적 특징은 시카고 예술대학 재학시절 제작한 <제3언어>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 멀리서 음산하게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블랙화면을 배경으로 ‘Tell me the Story/ Of all these things/ Begining, whereeve you wish,’라는 차학경의 <딕테>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나온다. 이어 지붕위에 있는 까마귀의 실루엣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무엇인가 웅장한 서사가 시작될 것 같지만, 화면은 갑자기 아이들 알파벳 카드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들이 삽입된다.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영어문장을 또박또박 읽는 목소리와 함께 보게 되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은 영상. 텍스트와 이미지는 계속해서 어긋나고, 그 어긋남은 질문으로 다가오고, 영상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서현석이 <제3의 권력을 위한 독백>이라는 글에서 꼼꼼하게 쓰고 있듯이 이 작품은 언어와 이미지의 공생적인 관계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둘 사이의 미끄러짐이 발생하면서 생겨나는 의미의 균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품이다. 화면과 사운드가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의문과 불편함을 관객에 직접적으로 들이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미끄러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에도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그/녀가 선택한 이미지들, 예를 들면 전쟁의 참상을 다룬 푸티지, 광고사진, 영어시험 사운드 와 제목에서도 언급되는 ‘권력’과의 유추 때문은 아닐까. 대부분 이런 류의 작품들이 형식적인 실험에서만 그치는데 반하여, 손광주의 작업은 주제적으로도 묵직한 역사, 권력 등에 닿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목소리는 최대한 절제하고 있고,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는 없으나, 이미지가 삽입되는 순서, 텍스트의 삽입, 째깍째깍 시계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후반부에 드라마처럼 바뀌는 음악 등으로 인해 작품을 다 보고나면, 뭔가 한편의 한국현대사를 훑은 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한 켠이 퍽퍽해지는 느낌.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은 없으나 이미지와 사운드의 변주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비슷한 느낌은 2005년 한일 우정의 해에 짧게 일본을 방문하고 기록한 <요요기 공원>에서도 나타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뭔가 마음속에 모호하게 잡히는 불편함, 의문 따위가 생긴다. 작품은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연설 중 일본의 근대화와 분리, 상처에 대해서 연설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일본의 거리의 풍경들과 스냅사진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까마귀 소리. 화면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나뭇가지들을 훑어가는 사이 뒤로 붉은 태양이 나타나는데, 즉각적으로 일장기를 떠오르게 한다. 직접 겪지 않았어도 역사를 통한 간접경험, 일본에 대해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간직한 우리가 바라보는 일본이 객관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는 작가의 생각을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오래전 요요기 공원을 찾았을 때 공원에 가득했던 까마귀들과 스산했던 분위기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 이 짧은 영상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파편의 경치> 역시 여행에서 비롯된 작업이지만 사운드와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요요기 공원>과는 사뭇 다르고 구조적으로도 레퍼런스와 장치들을 조금 더 넣어 작품의 레이러르 복잡하게 했다. 작품은 주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에 있으면서 채집했던 사진, 영상 자료들로 이루어졌다. 컬러를 모두 뺀 흑백 영상, 그래서 이미지는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꽤 먼 이야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영화 도입부 배경음악으로 루이스 부뉘엘(Luis Bunuel)과 달리(Salvador Dali)가 공동작업한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에 사용되었던 사운드 트랙을 사용하여, 21세기 초반 미국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달루시아의 개>가 만들어졌던 1900년대 중반의 미국처럼 보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초반 미국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시계 이미지, 거리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화면 중앙에 이미지를 채집했던 날짜를 삽입했는데, 현대미술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날짜를 쓴 방식, 폰트에서 이것이 온 카와라(On Kawara)의 ‘날짜 그림’ 시리즈인 <Today>를 연상시킨다. 미국의 풍경, 꽃 영상과 함께 하는 미국가정사의 고백, 동물원 풍경, 홈 무비 이미지 합성 등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익숙해지면 변해가는 편집방식과 스토리텔링은 이야기에 몰입되어가는 것을 계속적으로 방해하면서 시각은 계속해서 깨어 있게 만든다. 하나의 이미지에 대해서 해석하려하면, 바로 다음 이미지가 맥락을 끊고 들어오고, 안정적인 편집방법에 익숙해질 무렵, 전혀 다른 편집 방식이 들어와 병치 대립되면서 다른 이야기를 끌어드린다. 어쩌면 해석이나 설명 자체가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파편의 경치>이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뉘엘과 달리가 <안달루시아의 개>의 시나리오를 쓸 때 가졌던 원칙은 심리적, 이성적 혹은 문화적 설명이 가능한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에 굳이 <안달루시아의 개>의 사운드 트랙을 사용했던 것은 어쩌면 달리와 부뉘엘의 생각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비교적 최근작인 <거울 없는 방>은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건물의 유리 파사드에 비친 풍경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2005년 발견된 여의도 지하벙커에 대한 이야기다. 버스정거장 아래에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는데 정작 이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고, 이런저런 설들이 있었다. 그/녀는 비밀벙커를 기억상실에 걸린 가상의 정치범으로 의인화하여 ‘기억상실’에서부터 ‘최후진술’까지 다섯 개의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11분25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짧은 상영시간 동안 매 에피소드마다 편집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야기와 더불어 한국현대사를 담아냈다. 물론 작품은 교훈적이지도 설득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영상아카이브에서 찾은 파운드 푸티지들과 사운드, 음악, 텍스트들이 묘한 균형을 이루어가면서 또 다시 감정선을 흔들며 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쯤 살펴보면, 손광주는 특별한 스토리와 배우의 등장 없이 영상/이미지와 사운드의 편집을 통해서 작품을 제작하는 듯 보인다. 사실 대부분의 작가가 영상/이미지 작업을 하던가 아니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극영화 스타일을 작업을 하던가 둘 중 하나에 집중하곤 한다. 그런데 손광주는 이 둘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단속평형>, <캐릭터>, <리서치>와 같은 작품들은 명확한 시나리와 배우의 연기가 더해진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영화적 형식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한 <단속평행>은 흥미롭게도 장르상 드라마/코미디 부문에 들어갔다. 미국 MBA 출신의 노재원이라는 남자주인공의 클래식 카페에서 처음만나기로 한 여성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가를 누구라고 해야할 지 고민하는 과정을 주요 스토리로 삼고 있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집 안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르느와르와 고갱의 클래식 그림들, 영상 사이사이 노재원의 이야기 맥락을 끊고 들어오는 한국 사진, 정지 신호들에서 대기 중에 옆에 대기 중이던 차에서 갑자기 창문을 열고 베토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하는 어린아이, 아이의 베토벤 설명이 끝났을 때 또다시 뜬금없는 ‘참 잘했어요’ 도장. 어느 음악가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할 때 ‘하마터면 베토벤이라 할 뻔 했다/ 역시 베토벤은 아니다’ 라는 그의 진지한 멘트는 진지해서 더 웃기다. 부산영회제 측 코멘트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이 작품은 중산층 남자주인공과 그와 얽힌 에피소드, 클래식에 관한 통념을 뒤틀어 보여줌으로써 한구사회 중산층, 인텔리적 삼의 허위와 자기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는 점이서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담고 있다.      

<캐릭터>, HD, 드라마, 컬러, 사운드, 99:00,2011  https://ksonimage.com/characters/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가진다는 점에서 <단속평형>과의 연장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는 90분 가량 되는 극영화이다. 한때 주목받는 신인작가였으나 생계를 위해 보조작가 일을 하면서 되풀이되는 이야기와 틀에 박힌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에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을 담았다. 흥미롭게도 5년 정도 후에 작가는 다시 첫 장편을 꺼내들어 새로운 작업 <캐릭터 Revisted>를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이전 작업에 대한 코멘터리를 만들었다. 전작 <캐릭터>가 외부시선에 의해서 상품화될 수밖에 없는 장편이었다면, <캐릭터 Revisited>은 마치 카메라 뒤의 이야기, 촬영장에 대한 스케치인 듯도 보이고, ‘캐릭터’를 맡을 수 밖에 없었던 배우들의 현실모습처럼도 보인다. <캐릭터 Revisited>는 <캐릭터>와는 달리 줄거리에 의지한다기 보다는 이전 작업들처럼 모호한 이미지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줄거리는 없으나, 오히려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 더 탄탄한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듯도 하다. 물론 이것 역시 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형식적으로 본다면, <리서치 Re-search>는 <캐릭터>와 <캐릭터 Revisited>의 사이쯤 어딘가에 있는 작품인 듯 하다. <리서치>는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연구원의 하루를 담고 있는 극영화다. 언뜻 줄거리만 보면 질척이고 복잡한 감정선으로 끌고 갈 듯 하지만, 이야기는 의외로 절제되어 있고 건조하다. 대단히 미니멀한 연극적 무대처럼 꾸며진 하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 가방에서 원서를 잔뜩 꺼내 마트 카트에 싣고 무대같은 하얀 공간으로들어와 책상에 앉아 리서치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잠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찾기도 한다. 사이사이 시간이 삽입되고, 그녀의 독백인 듯한 짧은 대사들은 영상의 조각들을 이어주기 충분하다.


[12:13p 도대체 연구는 언제하려고...] 오후쯤인 듯하다. 연구원은 책을 들고 운동장의 경기장 선을 걸어 다닌다. 그 사이로 책을 들도 테니스를 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명확한 대사도 없이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표정, 사운드, 삽입되는 문장과 인서트 컷으로 등장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 등의 연결로 인물에 이입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업이 그렇듯 이입은 늘 다음 컷에 의해 배척되고, 그래서 감정이 몰입되기 이성이 작동하게 했다. 감정과 이성의 밀당.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품에는 늘 이런 밀당이 존재했던 것 같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다 보고 난 후,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로 저글링을 하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저글링은 순서와 타이밍 하나를 던지고 다음을 잡아내면서 또 다른 공을 던져야 한다. 결국 이 세 개를 다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손광주의 작업이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저글링에 능해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작가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작가고유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없는 듯도 보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계속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손광주의 스타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규칙을 답습하는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했다. 어쩌면 이미지와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다양한 편집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예술로서의 영화가 단순한 이야기로 축소되는 것에 대한 작가 개인의 저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무리 뚝뚝 끊기는 듯해도 보고나면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기억된다.      


얼마 전 그/녀를 만났을 때, 신작 준비로 한창 바빴다. 그/녀의 촬영 스케쥴과 나의 출장 스케쥴이 계속 어긋나 간신히 하루를 맞춰서 만났던 일요일 오전 작업실에서 신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는 갑자기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남은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낸 지 3년.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서 어머니를 이제야 보내드리는 것 같다고, 3년 상을 치르는 것 같다고 하면서 보여줬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편집본은 이전 작업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역사나 계층, 이미지와 텍스트에 대한 작품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질척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어머니’를 떠올리는 딸의 작업이니 다분히 감성에 더 다가가는 이야기가 될 터이지만,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균형 잡기를 놓치지 않으려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지극히 감성적이지만,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을 이미지, 사우드, 텍스트의 저글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보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그/녀의 작품과의 밀당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https://ksonim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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