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여덟 번째 만남 : 이서윤 님(上)
고양이 한 번 키워볼래요?
뜬금없이 날아든 아주머니의 질문에 깜짝 놀란 그는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네? 정말요?”
아주머니는 그가 반색하는 거라 여겼는지 재차 권했다.
“좋아하는 거 같은데 한 마리씩 데려가서 키워요.”
그때 옆에 있던 나까지 생각해서 한 마리씩 키우라는 말에, 나는 용케도 잘 거절했지만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아니에요.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오늘 소개할 분은,
저의 오랜 벗이기도 한 이서윤 님입니다. 예능 PD였던 그는 고양이 집사가 된 뒤 몇 번의 이직을 거쳐 동물병원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08년, 봄햇살이 쏟아져내리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 나의 짝꿍 PD였던 그는 촬영을 마친 스테프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촬영장 한 귀퉁이에 놓인 개집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파란 지붕이 덮인 개집 안에는 고양이 부부 한쌍과 생후 2개월 정도 된 새끼 고양이 4마리까지 여섯 식구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는 새끼 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은 듯 해사하게 웃으며 연신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했다.
봄햇살만큼이나 들떠 있는 얼굴이어서 얼핏 보기에도 고양이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주머니도 아마 나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고양이 한 번 키워볼래요?”
아주머니의 질문이 날아든 순간, 손사래 치며 거절한 나와 달리 그는 어색하게 되물었을 뿐이었다.
'네? 정말요?'라고.
한 톤 높아진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그것은 놀람과 환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잇따라 내뱉은 그의 거절도 평소 같지 않게 완곡했다.
“아니에요.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그는 싫다거나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른다'며 부드럽게 표현했다. 평소 화법이 그런 사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여하튼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촬영팀의 장비 정리도 끝이 났고, 다른 스텝들은 우리 두 사람이 차에 탑승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가 차에 타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상자에 넣고는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건넸다.
“한 마리만 있으면 외로우니까 두 마리 같이 데려가서 키워요.”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네? 진짜 데려가라고요?”
마지막 거절의 기회였는데도 그는 이렇게 되묻기만 했다. 차창밖에서는 고양이 키우는 거 별로 안 어렵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 곁을 떠나게 된 새끼 고양이들도 상자 안에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확고한 거절 의사가 있었다면 그는 차를 출발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잠시 차에서 내려 고양이들을 돌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의 매력에 취했던 것인지 그는 고양이 상자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냐옹 냐옹…….’
그날 사무실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는 2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울다 잠들었다.
사무실에 복귀한 그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편의점에서 사 온 우유부터 먹였다. 반려동물 관련 지식은커녕, 동물을 키워본 경험조차 전무했으니 일반 우유를 먹이면 배탈이 난다는 것도 모른 채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아주머니에게 했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냥집사가 된 그는 새끼 고양이 2마리를 집에 데려다 놓자마자 제일 가까운 동네 펫숍으로 달려갔다. 점원이 추천해주는 대로 각종 물품을 구비함으로써 그 나름대로의 육묘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심사숙고 끝에 '하루'와 '나나'라는 번듯한 이름도 지어주었다.
비록 계획에도 없이 얼떨결에 키우게 됐지만 그의 눈에 비친 새끼 고양이들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고양이의 모든 것이 처음인 그로서는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묘하게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특히나 강아지처럼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화장실 척척 가리고 깔끔하게 뒤처리까지 하는 모습은 초보 집사인 그의 마음을 더 가볍게 만들었다.
“알아서 잘 크니까 처음에는 고양이 키우는 거 별로 안 어렵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부터 나나가 이불에 소변 테러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빨아서 널어놓은 이불 위까지 올라가서 오줌 지도를 그려놨다.
빨래를 하다 하다 더 이상 덮고 잘 이불조차 없게 되자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그 지경이 된 집안 꼴을 목격하고 울분이 차올랐던 그는 급기야 나나를 붙들어 앉혀놓고 엉덩이를 두들기며 야단을 쳤다.
어차피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서로 마음만 상할 뿐.
성질에 못 이겨 혼을 내놓고서도 속상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제야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어가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봤다. 중성화 시기를 놓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중론이었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수컷 고양이는 발정기가 되면 영역표시를 위해 곳곳에 소변을 분사한다. 이러한 행동을 흔히 스프레잉이라고 말한다.
혼나야 될 대상은 나나가 아닌 그 자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모든 문제가 바로 자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줄도 모르고 그렇게 엉덩이를 때렸으니 나나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지금도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나나한테 너무 미안하지. 내가 그런 일을 겪고 나서야 고양이 키우는 것도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 느낀 거야.”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양이 관련 책들을 사서 보며 육묘 공부를 시작했고, 고양이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그와 고양이들이 함께 한지 3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고양이들은 그의 마음 깊숙이 침투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버렸다.
관계가 가까워진 만큼 반려인으로서 고양이들과 더 오랜 시간 함께하며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방송 PD라는 직업 특성상 지방 출장과 밤샘근무는 생활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일에 빼앗기는 시간만큼 고양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로 고심하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방송가를 떠나고 말았다.
PD를 그만두고 한동안 이일 저일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던 그는 우연히 접한 동물보호단체의 활동 영상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지냈던 일들에 눈이 번쩍 뜨인 거지. 그때 그 활동 영상을 보면서 이게 내가 앞으로 해야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 거야. 피가 막 솟구치더라고."
일종의 사명감과 열정에 불타오른 그는 동물보호단체 대표에게 이메일을 썼다.
이런 활동을 하고 싶은데 일손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며 이력서까지 첨부했고, 그의 진심이 닿았는지 바라던 대로 동물보호단체에 입사하게 되었다.
마음에 꼭 맞는 일을 찾았다며 기쁨과 사명감에 부풀어 출근한 바로 그 첫날. 업무파악할 새도 없이 이른 오전부터 사건이 터졌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희 고양이가 많이 아파요.”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가보니 켄넬 안에는 야생 삵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치는 고양이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응급상황이었다.
첫 출근날 신고식처럼 들이닥친 응급상황에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곳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동호회가 아니라 회원들이 낸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동물보호단체였다. 긴급한 동물 구조를 위해 의료비를 지원하는 경우라도 규정에 따라 절차를 밟아 진행해야 마땅했다. 더군다나 엄연히 보호자가 따로 있는 상황이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첫 출근해서 동물을 살려야 한다는 열의만 충만했던 그는 절차를 무시한 채 병원으로 이송하길 바랐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고양이의 울부짖음은 처절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참을 진정시키고 중심을 잡아야 할 선임 직원도 냉철함을 잃었고, 세 사람은 곧장 병원으로 내달렸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진료로 각종 검사를 모두 시행하고 떡하니 입원까지 시키고 말았다. 이렇게 첫 출근날부터 사고를 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고양이의 퇴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고양이는 병원 진단 결과 뇌손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상태라 여기저기 쿵쿵 부딪혔고, 한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정형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대소변도 못 가렸다. 사람으로 치면 중증 장애나 치매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치료방법도 딱히 없었다. 그저 영구적인 장애가 남겠다는 의사 소견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고양이의 보호자는 본인도 장애가 있어 서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와 선임 직원은 이런저런 논의 끝에 보호자로부터 고양이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이 고양이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했기 때문에 퇴원과 동시에 사무실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고, 사무실 직원들은 거창한 이름을 지어주는 대신 그냥 '나비'(이후 고나비)라고 불렀다.
은근히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사명감을 갖고 첫 출근한 날 극적으로 만난 고양이라 쉬는 날에도 출근해서 이 아이를 돌볼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그 덕분인지 며칠이나 살까 싶었던 고나비는 잘 먹고 버티며 생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단체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면서 고나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동안 이 고양이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던 분위기가 곪아 터진 것이었다. 입양 가능성 제로에 건강상태도 안 좋으니 안락사해야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안락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얘는 몸이 불편한 거지,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에요!”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글 / 자유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