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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Feb 06. 2020

치매 고양이와의 작별인사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여덟 번째 만남 : 이서윤 님(下)


▼전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얘는 몸이 불편한 거지,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에요!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그와 함께 고나비를 돌봐주던 A도 합세해 편을 들어준 덕분에 새로운 사무실 베란다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었다.


베란다에는 입양을 못 가 사무실에 눌러앉다시피 한 고양이 2마리까지 더해 3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먹성은 고나비가 제일이었다. 비록 시청각 장애에 치매까지 있어 똥오줌도 못 가렸지만 생존 의지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것이다.


아픈 고나비를 케어하기 위해 그와 A는 쉬는 날에도 교대로 당번을 맡아가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들의 노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중증이었던 고나비의 증상이 조금이나마 회복된 것이다. 물론 입양 가능성은 여전히 제로였지만 돌봐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만으로도 고맙고 보람된 일이었다.

 


하지만 동물을 돕는 일에는 뚜렷한 명과 암이 있었다. 그가 사명감에 부풀어 시작했던 동물보호단체 활동은 끔찍한 동물학대 현장을 맨눈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잔혹하게 살해되거나 버려지고 상처 받은 동물들을 돕기 위한 일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해 동참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싸워야 했으며,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한 마리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007 작전을 펼치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건, 위기에 처한 동물 모두를 살리고 도울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돕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미처 구해주지 못한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패배감과 자괴감이 후폭풍처럼 뒤따라와 그를 괴롭혔다.



자칭 '유리멘탈'이었던 그는 결국 보호단체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같은 시기에 A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그만두고 나면 베란다에서 생활하던 고양이 3마리는 누가 돌봐줄까, 어쩐지 눈칫밥 먹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퇴사를 하며 고나비를 비롯한 고양이 셋을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단체를 나온 후 A는 저렴한 지하공간을 임대해 고양이 쉼터 겸 유기묘 카페를 만들었고, 베란다 고양이 3마리도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엔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자 건강이 유독 좋지 않았던 고나비의 상태가 악화되고 말았다. 요양이 좀 필요할 것 같다는 A의 말에, 그는 앞뒤 잴 것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한 달이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예상대로 한 달쯤 지나자 고나비의 건강상태가 다시 호전되었지만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지금 보내면 금세 안 좋아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너무 추워서 안 되겠다. 봄 되면 보내야지'


마음속 계획을 수정해가며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새 3개월이 지나갔고, 이제는 정이 들어서 다시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나비는 자연스럽게 그의 집 셋째로 눌러앉게 되었다.



한편, 동물보호단체를 나온 후에도 동물 관련 일을 계속하고 싶었던 그는 수의테크니션 자격증을 취득해 동물병원으로 이직하게 되는데…….


버려지는 동물은 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병원 앞에 CCTV가 버젓이 있는데도 밤 사이에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병원에 맡겨놓고 찾으러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넷째 고양이가 된 '치이'는 후자였다. 보호자가 중성화 수술을 맡겨놓은 뒤 잠수를 타버렸다. 병원에서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 않았고 찾으러 오지도 않았으니 사실상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대체 왜 버린거냥?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던 그는 '입양자를 찾아보겠다'며 원장님을 설득했다. 입양자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말 하나만큼은 자신감 넘치게 했고, 마음씨 좋은 원장님은 그의 간청에 못 이긴 척 치이가 당분간 계속 병원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큰소리는 쳤지만 좋은 입양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병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치이가 사고만 안 치고 얌전히 있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식탐이 많은 편이라 판매용 사료를 자꾸 뜯어놓는 바람에 원장님께 미움을 산 것이다.


"얘 그냥 보호소 보내야겠네."


인내심이 바닥난 원장님이 툭 뱉은 말이 그의 귀에 닿은 순간,


"안돼요! 제가 데려갈게요!"


그는 이렇게 주워 담지 못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그때 원장님이 그냥 구박한다고 가볍게 한 말을 너무 진심으로 받았다는 걸 눈치챘지만 이미 때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는 '치이'의 입양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보호자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다. 끈질기게 전화해도 받지 않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 책임은 묻지 않을게요.

제가 입양할 테니까 소유권 포기각서 써주세요.


그러자 몇 개월 동안이나 잠수 탔던 보호자가 떡 하니 나타났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친구와 함께 들어오며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치이야, 안녕?"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어디 팔다리라도 부러져서 나타났다면 또 몰라. 너무 태연하게 친구랑 웃으면서 들어오는 거야.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타나니까 내가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니까. 진짜 저런 사람이 키우면 언제 갖다 버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딴 얘기 못하게 포기각서 받았지."


그는 한참 전의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그때 일을 설명했다.


"포기각서 받고 나서 마지막으로 치이랑 인사하라고 했더니 글쎄 아주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은지, 치이야 안녕, 잘 살아! 그러고 가더라."



그가 마지막으로 인사 나눌 기회를 주었던 건 같은 반려인으로서의 배려였다. 한때나마 가족이라고 여겼다면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미안함 같은 감정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지나치게 경쾌했던 마지막 인사는 그로 하여금 씁쓸함을 넘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이 말이야.
자기 좋을 땐 가족 이랬다가
싫어지면 짐승 취급이야.
진짜 가족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어도
끌어안으려고 애쓰지, 그렇게 버리겠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의 얼굴에는 성난 기색이 역력했다.


"치이야 안녕, 잘 살아!"


짧은 인사말을 끝으로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치이는 그의 넷째 고양이가 되었다.


(좌) 치이 / (우) 하루, 나나


치이가 그의 집에 입성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픈 고나비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텃세 없이 잘 받아주었던 하루와 나나가 둘이서 작정이라도 한 듯 틈만 나면 치이를 때리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이후로도 그가 '입양 보내겠다'며 고양이들을 데려왔다가 실패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허약체질을 타고 난 ‘캠벨’과 임신 중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왔던 샴고양이 ‘아미’까지 2마리가 더 늘어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와 나나는 아직도 유독 치이만 구박이다.


(위) 입양이 성사된 '나오미'(올블랙)와 입양 실패한 '캠벨'(턱시도) / (아래) 교통사고를 당해 걷지 못했던 '아미'와 '캠벨'


치이부터 캠벨, 아미까지 잇따른 입양 실패가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입양에는 정답이 없다'는 깨달음과, 고양이 6마리를 돌봐야 하는 집사로서의 막중한 업무들이었다.

 

1인 6묘 가정의 유일한 일꾼으로서 고양이들을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체력적인 부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치매 걸린 고나비를 케어하는 일까지 혼자 도맡아야 하니 퇴근해서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왼쪽부터) 나나, 아미, 캠벨, 치이, 고나비 (사진에 하루가 빠짐)


아픈 고양이 하나를 돌보는 게 다른 고양이 5마리를 합친 것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프니까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잖아. 내가 고나비 챙기느라 다른 애들한테는 거의 신경을  써줘서 미안하기도 한데, 고나비는 내가 유기동물 문제에  뜨고 의욕이 제일 충만했을  극적으로 만난 애니까 아무래도  특별하지. 그런 애가 아픈데  챙길 수가 있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마나 살까 싶었던 아픈 아이.

그런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할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은 늘 불편하게 집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어준  바로 치이였다. 

고나비는 아파서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그루밍조차 하지 못했는데, 치이만이 유일하게 그 곁에서 제 온기를 나누어주고 살갑게 보듬어주었다.


치매 걸려 아픈 고나비와 형들의 구박 때문에 기를 못 펴고 사는 치이의 우정은 지켜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을 짠하게 만들곤 했다.


사람도 아프면 더 외롭다는데, 동물이라고 해서 왜 그렇지 않을까.


아픈 고나비에게는 집사인 그의 사랑만큼이나 치이와의 우정이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

.

.

치이와 고나비가 함께한지도 7년.

어느 날부터가 고나비는 식음을 전폐하고 기력 없이 누워 있기만 했다.


줄곧 아프기는 했지만 먹성 하나만큼은 다른 애들 못지않았던 고나비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축 늘어져 있으니 불길한 조짐이 분명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없을 때 죽으면 어떡하지?'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하면서도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마지막 순간에 작별인사 조차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버릴까 봐 속이 타들어갔다.


그는 매일 퇴근하고 돌아올 때마다 아직 살아있어 주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멀어져 가는 고나비를 위해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오랜 시간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휴일 밤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고나비를 어루만지던 자정 무렵의 시간.


그의 품에 안겨 작은 숨을 내쉬던 고나비가 끝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치이가 그 곁을 지켜주었다.

모두 함께라서 다행이었다.

평생 아프기만 해서 더 힘들었을 생의 마지막 순간,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보내줄 수 있어서.



2017년 2월 1일.

아직 추운 겨울밤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흐느껴 울며 고나비가 방금 죽었다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짙은 슬픔의 잔해가 쏟아져 들어왔다.

죽음을 예감하고 며칠 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부질없는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는 계속 눈물을 삼키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몇 분만에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아마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울었을 것이다.

별 하나를 가슴에 묻는 일은 필연적으로 눈물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아픈 손가락이었던 고나비가 떠난 후, 그의 일상에는 커다란 싱크홀이 생겼다.


“그동안 고나비 뒤치다꺼리하느라 일주일마다 이불 빨래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고나비가 가고 나니까 집에 가서 할 일이 없더라고. 예전에는 퇴근해서 집에 가면 청소하고 고나비 상태 체크하기 바빴는데 걔가 없으니까 시간이 남는 거야. 다른 애들은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지내니까 내가 필요 없는 존재 같아서 갑자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어느덧 고나비가 죽은 지도 3년이 흘렀고, 아직도 그의 집엔 고양이 5마리가 살고 있다.

집사 업무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면서도 그는 이상하게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 내게는 그 말이 '허전하다'는 말로 들릴까.




마지막으로

이서윤 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


“심사숙고하고 신중하게 입양했어도 함께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데, 단 하나의 망설임이라도 있다면 키우지 말라는 거야. 털 빠짐 문제나 대소변을 치워야 하는 게 싫다거나, 사료 값, 병원비, 휴가철 호텔비 같은 게 부담스럽다거나, 너무 바빠서 오랫동안 집에 혼자 둘 예정이라면 애초부터 안 키우는 게 나아.

지금 당장 예쁘고 귀여운 것만 보지 말고, 정말 늙어서 병들었을 때까지 멀리 바라보고 모든  포용할 준비가 됐을  입양했으면 좋겠다 거지.


그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일장연설을 했지만,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되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병수발을 했지만 이별의 징후는 뚜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그의 상황을 써 내려가면서 마음이 아팠다. 반려인이라면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가 일하는 곳은 동물병원.

다른 보호자들의 아이를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에게 묻지 못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일하며 다른 동물의 죽음을 많이 접했다고 해서, 혹은 병수발을 오래 했다고 해서 가벼워지는 슬픔이 아니기에.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들의 일상도 시든 풀처럼 싱그러움을 잃게 된다. 그래서 간혹 환자보다 먼저 지쳐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반려인으로서 긴 여정을 함께 했다.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사용되는 요즘도 버려지는 동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말 사랑한다면 생로병사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반려인의 모습 아닐까.



글·그림 / 자유지은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유기동물 수는 최근 5년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5년 8만 456마리, 2016년 8만 8561마리, 2017년 10만 789마리, 2018년 11만 8697마리, 2019년 13만 3462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으며 사설단체에서 구조한 동물은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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