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ntest
작년(2023년)에는 내가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팀인 LG의 우승 장면을 TV로 보며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30년 만의 우승이라는 사실도 감동이지만 직접 뛴 선수들은 물론이고 우승을 시킨 감독은 더욱 기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감독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승을 위한 우리 선수들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이제 숙원을 풀었으니. 당장 내년에도 우승권 전력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자신감처럼 보일 수 있으나 ‘우승 타이틀’은 감독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감으로 다가온 듯하다. 스포츠 세계는 경쟁 세계의 끝판왕이다. 다시 말해, 경쟁에서 이겨야 행복을 쟁취하는 분야이지만 그 기쁨은 우승 직후부터 강도가 약해지며 다시 우승이라는 행복의 도파민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잔인한 정글이다.
그리고 우승을 한 팀이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음에도 ‘우승’이라는 사실임을 일깨워주었다. 2연패, 3연패…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결국 경쟁에서의 행복을 위한 플러스적 행동은 점점 나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건강이 안 좋아져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종합운동장이 있음에도 그동안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나서보기로 했다. 일단, 아들의 신발을 빌려 신고, 집에서 굴러다니는 반바지랑 티셔츠를 입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보다 더 잘 달리고 싶다는,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이 아니라는-이미 복장부터 초보티가 팍팍 나지만-마음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냅다 뛰었다. 자세 따위는 지난 40년간 달린 폼이 기억할 테니 걱정 말고 그냥 뛰었다.
……그리고 1분도 못 가서 헉헉 거리는 내 모습과 이런 나를 불쌍하게 쳐다볼 것 같은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조용히 운동장 한 켠으로 물러나 스트레칭하는 척하며 창피함을 감췄다. 몸을 푸는 척하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초보는 뭐 하는 놈이야’라는 시선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근심 어린 눈으로 슬며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문적인 훈련을 하는 듯한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과 자녀와 함께 걷는 사람들, 살을 빼기 위해 가볍게 달리는 사람들, 핸드폰을 보며 그냥 걷는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자신만의 레인 위에서……
나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줄까 봐-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별 걱정을 다하며 뛰었는데 이는 경쟁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내 몸상태도 모른 채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달리기 경쟁에서 앞서고자 무리하게 달렸던 것이다. 결국 잘못된 자세와 잘못된 러닝 습관이 나를 갉아먹었던 것이었다. 마치 경쟁이 행복을 갉아먹은 것처럼…… 그로 인해 허리가 너무 아파 주말 내내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일주일 간의 병원 치료(심지어 복부 CT촬영도 했다)와 휴식을 병행한 후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이번에는 와이프가 사준 새 러닝화와 러닝복을 입고 아파 쉬면서 연구한 제대로 된 달리기 자세와 호흡법을 바탕으로 운동장으로 나섰다. 작은 아들과 와이프도 동행한 채…….
이젠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나의 자세와 호흡에만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는 1분 달리기로 시작했다. 그리고 3분간 걸었다. 이것을 대여섯 번 반복했다. 이어서 달리기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달렸다.
타인의 레인이 아닌 너만의 레인을 가라고……그들이 앞서 달리든, 뒤에 지쳐져 있든, 서로 다른 레인에 있는 사람일 뿐 그들과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라고……
그동안 나는 경쟁심리로 인해 나의 레인에서 뛰고 있는 나 자신은 제대로 못 보고 다른 레인의 타인만을 보며 살아왔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달리기를 통해 나의 비뚤어진 경쟁 심리 상태가 편협하고 삐딱한 관점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쟁은 타인이 아닌 그 경쟁의 세계에 스스로 발을 담근 나만 좀 먹었던 것이다. 혼자 상상 속의 경쟁 세계에서 살았던 나만 다쳤던 것이다.
LG의 우승처럼 남과의 경쟁에서의 우위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긴 하겠지만 그 기쁨은 잠시일 뿐이다.
보다 지속적인 행복은 과거와 현재의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알아갈 때 그리고 미래의 나와 연결 지을 때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설령 내가 그들을 앞서서 달렸다 한들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외롭긴 하지만 그냥 나의 길만 가면 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