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고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중심에서 바라보다
우선 필자는 본교의 교무부장으로 입학 업무의 실무 담당자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비평준화학교(제주에서는 제주시 동 지역을 제외한 곳을 일컫는다.)의 입시는 거의 처음 경험을 하였다. 다만 지난 1년간 입학 및 전편입학 문의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올해 입학컷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예측을 할 뿐이었다.
12월 13일(금)부터 17일(화)까지 3일간의 접수기간이 있었다. 교육청과 협의하에 이번에는 모든 학교가 지원자수를 학교 홈페이지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 공개하기로 하였다. 참고로 지원자의 내신은 접수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도, 교육청에서도 알 수 없다. 접수처리를 하면 해당 학생의 내신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접수 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접수하는 순간 변심으로 인해 원서를 반환하려면 해당 중학교에서 공문으로 반환요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첫째 날이나 둘째 날은 괜찮지만 마지막 접수마감일에는 이와 같은 접수처리는 중학교나 본교나 서로 힘들 뿐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경쟁률이 증가하면서(작년에 비해 약 30명 정도가 더 증가했다.) 예상 커트라인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막연히 작년(79점)보다는 높겠지라는 예상만 할 뿐 어느 정도까지 점수 컷이 올라갈지는 알 수 없었다. 한 학교에서 문의가 왔지만 경쟁률의 상승으로 점수가 높아질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고 끊었다. 인근 학교에서는 직접 찾아와 운동부 학생의 원서를 건네주며 마찬가지로 예상 점수대를 문의하였으나 원론적인 답변만 할 수밖에 없었다.
(표선고 입시 결과 분석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school.jje.go.kr/jjps/na/ntt/selectNttInfo.do?mi=110641&bbsId=115999&nttSn=40495273
문제는 지금부터다. 문의에 대한 나의 답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표선고에서 예상 내신컷을 말해주지 않아 해당 중학교들이 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일담을 여러 경로를 통해 듣게 되었다. 만약 지원자들의 원서를 접수처리하여 내가 말해주었다면 그것은 입시 비리가 아닐까? 해당 중학교에만 말해줄 수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고입에서의 관행이라면 이것은 대단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이것이 고입이 아니라 대입이라면 어떻게 될까? 서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서울대 입학처에 전화해서 예상 점수를 문의했는데 답해주지 않았다고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말해주었다면 서울대는 입시 비리를 자행하는 꼴이 된다.
좀 전에 언급한 중학교에서 대거 불합격생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합격 커트라인이 우리의 예상을 훌쩍 넘은 49.125를 기록하면서 제주시내 평준화고등학교의 내신 컷을 넘어버린 것이다. (제주도의 고입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의 다른 글을 참고하시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학교가 아닌 제주시내 학교를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 표선고를 지원하면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다른 학교들도 정원을 다 채워서 불합격생들에 대한 구제가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표선고의 입시 문제가 IB학교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즉, 중학교에서 IB를 배운 학생들(MYP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정작 DP과정을 지원조차 못하고 일반고 혹은 특성화고에 입학하는 현실에 대해서 학부모님들이 직시를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불만을 교육청, 아니 IB과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교육감을 향해 터트리는 형국이 되었다.
관련 기사는 하단의 링크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34158
https://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546
12월부터 이어진 입학 전형부터 위의 신문 기사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표선고 입학 희망자 증가로 인한 내신 커트라인의 갑작스러운 상승
인근 중학교 및 표선 지역 학생들의 소외,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우려되는 표선 지역에서의 불만
MYP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위한 입시에서의 제도적 조정 및 변화의 필요성
IB DP 학교 증설을 통한 해소 방안 마련
결국 표선고는 제일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태풍의 눈으로 아주 조용하다. 가끔 전학 문의가 오는 편을 제외하고는 평온하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잡음은 지금도 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방안은 표선고라는 단위 학교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선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학부모님들로부터 고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제주도의 일반고라는, 다시 말해 제주도 교육청 소속으로 입학전형 규정을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 독자적인 전형 마련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교육청과 협의하에 조정 가능성 여부는 알아보겠지만 이 부분은 교육청의 연구 사항이며 동시에 지원 사항이기도 하다.
첫째, 특목고의 지위를 받아 전기 모집(10월 경)을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그리고 면접 및 자기소개서 제출을 통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3월부터 전담부서에서 이를 논의하고 추진해야 하며(외고, 과학고처럼) 실시 결과가 정말 의도한 대로(인근 지역 중학교 살리기) 나올지 여부가 핵심이다. 제주외고 역시 2012년 말에 이를 처음으로 도입했지만 인근 중학교의 입학생 수가 급증했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쿼터제 혹은 지역 할당제 도입 방안이다. 하나고, 인천 하늘고, 충남 삼성고와 같은 사립학교들은 일부 정원을 임원 자녀 등을 위해 할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립학교이기에 가능하고 표선고와 같은 전국의 공립학교에서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는 한 군데도 없다.
표선고 학급수 증축 방안이다. 현재 학년당 5 학급, 전체 15 학급으로 약 37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빈 교실이 없다. 이는 교육청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예산을 지원하여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문제는 학급수 증설은 타 학교의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며 교육부와의 협의도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제일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다.
제주시 혹은 서부 지역에 IB 고등학교 과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해당 고등학교 구성원들의 의지와 학부모님들의 지원이 갖추어져야만 한다. 기사에서 처럼 일부 학급(2-3개)만 도입하는 것은 대구의 IB학교들처럼 장기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일부만 도입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없앨 수 있다는 뜻이기에 지속성과 도입 의지 부문에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와 같은 문제점과 해결 방안은 교육 현실과 교육청의 의지, 학부모와의 소통 등 학교 범위를 넘어선 차원들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와 같은 문제점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칠 문제점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첫째, 내신 커트라인 상승으로 이제는 MYP 단계의 중학교에서 IB의 목표와 가치를 구현할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즉, 1점 단위로(이번에 똑같은 내신 49퍼센트여도 49점 후반대의 학생은 억울하게 탈락하였다.) 갈리는 상황에서 수행평가 및 지필평가 등에서 중학교 교사들은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 증가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IB 교육의 근본적 가치가 퇴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둘째, 우수한 학생들의 지원으로 학교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2025년도에는 내신 49%가 표선고에서는 꼴찌라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인근 일반고에 가면 중위권 이상의 고등학교 내신을 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1년 안에 걱정과 불안 속에 전학 및 자퇴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를 빈번한 전학으로 메꿀 확률이 높다.
셋째, 학부모들의 학교 흔들기가 표선고에서도 일어날 우려가 높다. 지금까지는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원 속에 안정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했으나 높아진 눈높이와 그에 따른 요구가 늘어나면서 자칫 IB학교의 가치가 흔들릴 수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작년 입학 설명회에서도 한 학부모로부터 학교 측의 수능 지도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다른 학부모님들의 반발로 무산되었었다.)
올해부터 지난 4년간 버팀목을 해주셨던 교장 선생님이 임기를 마치시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존 교감 선생님이, 그리고 빈 교감 선생님은 기존의 교무부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즉, 내부에서 교감, 교장 승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인사가 공립학교에서는 없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올해 표선고는 위기라는 반증이며 내부 승진을 통해서 표선고를 둘러싼 갈등과 잡음을 해결하라라는 교육청의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 작년까진 교무부장으로서 실무를 담당했지만 올해부터는 교감으로서 새로운 교장 선생님과 함께 표선고의 두 번째 도약을 위한 설계를 해 나가며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IB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관리자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계속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