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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Feb 27. 2024

다음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2023)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뒤늦게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2023)를 보았다. ‘전주 콜센터 실습생 자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개봉 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독립 영화로는 드물게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관람을 망설였던 이유는 이랬다. 첫째로, 실제로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서사적으로 재현되었을 때 그것을 관람이라는 형태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둘째로 더욱 솔직한 심정은, 안 그래도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영화가 남길 감정적 후유증이 버거웠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다음 소희>는 ‘보이지 않는 현장’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중한 작품이며, 따라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보아야만 하는 영화’라고 말이다.     




   소희는 대기업의 하청업체 콜센터로 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이다. 춤추는 게 취미였던 밝고 씩씩한 아이는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소희를 죽음으로 몬 원인은 짐작하는 대로다. 할당된 콜 수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과 과중한 업무, 고객의 성희롱과 협박에도 미소로 응답해야 하는 감정노동,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하는 불공정한 대우. 회사는 실습생에겐 근로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해 정해진 기준보다 낮은 월급을 주었고, 약속한 인센티브는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몇 달 뒤로 지급을 미뤘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소희는 아직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사회로부터 어떤 보호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소희가 약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한 소극적인 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희는 회사의 불합리한 처사에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입막음용 서류에 서명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텼고, 윗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서 현장실습의 문제를 고발하기도 했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자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저항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불리하게 돌아갔고 소희가 돌아가야 할 현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출근을 앞둔 겨울의 어느 날, 소희는 회사가 아닌 까마득히 깊고 차가운 저수지로 걸어 들어갔다.     


   유진은 소희의 사건을 맡은 여형사이다. 그녀는 사건을 조사하며 회사, 학교, 교육청을 차례로 방문한다. 불법적으로 이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사, 노동 현장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현장실습을 내보낸 학교, 특성화 학교의 취업률만 중시하는 지방 교육청. 방만한 행정의 증거를 들이미는데도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며 다른 곳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심지어 학생 개인의 탓(가정불화, 불안정한 정신, 욱하는 성질)으로 돌리며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한 아이가 죽었는데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현실에 유진은 분노한다.      


   영화에서 유진은 저수지 앞 소희가 섰던 자리에 서 본다. 소희가 마지막으로 들렀던 슈퍼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소희가 마셨던 맥주를 마신다. 소희의 마지막 행적을 되짚어가는 유진을 따라 관객도 소희의 자리에 서 보는 경험을 한다. 소희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음속 상처와 무력감을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을까. 자신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하니 가족과 친구에게도 차라리 침묵하자 했던 걸까. 얼음장 같은 저수지가 사회의 냉담함보다 낫다고 생각했을까.      




   소희의 다음 차례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여전히 비슷한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 “처음 한 명의 죽음은 ‘자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부터는 ‘타살’이고, 수백 수천 번째가 되면 그것은 ‘학살’이다.” 현장 실습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근로자가 산업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었다. 산업재해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223명이었다. 국가와 사회라는 시스템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죽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숫자에 단 한 명의 죽음도 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포도밭 묘지>의 마지막엔 죽은 포도나무 가지들 사이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죽지 마.” 영화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저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다음 소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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