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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l 03. 2019

[영화보기] 기생충

뭔가 말하고는 싶은데 그 무언가가 정제되지 않고 입 안에서만 데굴데굴 맴도는 기분. 그런 기분을 느낀 영화는 오랜만인 것 같다. 


* 스포일러 주의


영화 '기생충'을 봤다. 

극장을 나와 롯데리아에 들러 아침에도 먹은 햄버거를 또 시켜 먹으며 남편과 동익(이선균)의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 했는데 남편은 '그럼에도 죽인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 나는 '그가 죽었어야 했다'라는 의견. 서로 혀를 내밀며 엘렐레레~하는 식으로 주고받다 싱겁게 이야기를 끝맺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는 죽었어야 했다 싶다. 


끝도 없이 내려가고 내려가서도 또 내려가야 했던 지하방이었지만 가족들과 둘러 앉아 필라이트를 마시다 삿뽀로를 마실만큼의 희망이 쌓이던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가난한 가족이 알콩달콩하게 지낼리가 없다 했지만 망하고 떨어져 씨발씨발 하더라도 잘 지냈던 그 가족의 공간이 홍수로 전부 무너지는 순간, 계획이 다 있던 그들에게 무계획이 계획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힘든 밤을 지냈음에도 고용주의 부름에 옷을 골라입고 나가야 했던 그 순간, 동익은 죽었어야 했다. 


겉으론 예의를 차리지만 냄새로 선을 긋고 경계 밖에 선 이에게 어차피 주말수당 받을 거 좋게 일하자며 으름장을 놓을 수 있는 존재. 매몰차게 내쳐져도 충성을 외치는 근세(박명훈)의 기생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존재하는 귀신 정도로 취급했던 가족. 


'갑'이라곤 그나마 대거리는 해 볼 수 있는 정도의 피자가게 주인이 다 였던 기택(송강호)의 가족에게 오르지도 올라서지도 말아야 할 곳이 있음을 불편하게 말하고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조차 그 선이 선명하게 그어진 걸 확인시켜주는 동익은 경계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경계를 제 손으로 치웠음에도 기생하는 이로 남아 죄책감을 느끼며 안도하는 기택과 그 경계 위로 오르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진지하게 다짐하는 기우(최우식)의 대비로 마무리 된 결말은 그래서 더 찜찜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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