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 개리 마커스
락다운이 길어지고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원대한 꿈이 있었다. 매일 블로그, 브런치에 글도 쓰고, 투자한 회사들 기업 분석, 하루 한 끼 건강식 요리하기, 재테크 공부, 친환경 업체들 검색 및 분석 등등. 하지만 브런치에 글은 며칠에 한 번 건너 쓰고 친환경 업체 검색은 시작도 안 했으며, 투자 회사 기업 분석은 검색만 하고 내용 정리를 안 했다. 분명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문제의 해답을 책 "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 역시 진화의 과정에서 항상 완벽한 방향으로만 발전된 것이 아니라 클루지가 섞여 있어 인지적 오류를 적지 않게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확증 편향, 정신적 오염, 닻 내림, 틀 짜기 등등 다양한 종류의 인지 결함에 관해 논하지만 내가 초점을 맞춘 내용은 '부적절한 자기 통제'였다.
왜냐하면 진화는 우리에게 분별 있는 목표들을 세우기에 충분한 지적 능력을 주었으나, 그것들을 관철하기에 충분한 의지력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체계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만큼 영리한 유일한 종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주의 깊게 짠 계획을 순간의 만족 때문에 내팽개칠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인간의 자아는 총 3가지로 나뉜다고 배웠다. Id, Ego, Superego. Id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존재, Superego는 융통성 없이 도덕적인 존재, Ego는 Id와 Superego 사이를 중재하는 현실적인 존재다. 과제나 시험 준비를 안 하고 술 마시러 갈 때면 학교 동기들과 Id가 날 조종하고 있다며 농담 따먹기를 하곤 했다.
곧 우리의 사고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주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하고도 판별력 있게 천천히 진행되는 사고이다.
책에서는 인간의 의사결정이 두 가지 사고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고 나와있다. 전자는 진화의 아주 오래전 단계부터 발달된 반사 체계, 후자는 도구를 사용하고 각종 산업이 발전하며 발달된 숙고 체계이다.
Id이든 반사 체계이든 쾌락과 통제를 관여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진 자기 통제에 포커스를 맞추면, 반사 체계는 단기 목표에 숙고 체계는 장기 목표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인 경우, 숙고 체계는 다이어트를 하는 목적 등을 상기시키며 군것질을 하고 싶어도 참게 하지만 반사 체계는 지금 당장 초콜릿을 먹고 당 충전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선조 때부터 이용해 온 반사 체계는 대게 숙고 체계보다 강력하고 빠르다. 실제로 책에서 다이어트 실패의 이유로 운동 부족 때문이 아니라 뇌의 발달이 편리해진 현대인의 삶을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내가 살을 못 빼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내 뇌의 문제다!
심리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전 세계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심리 치료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어렵다. 이를 다르게 보면, 내가 계획 세운 일을 미루고 넷플릭스만 보는 게 클루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 나의 행동 개정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다. 또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을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해결책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다.
저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반사 체계의 언어를 사용하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반사 체계는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숙고 체계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어를 사용한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었을 때, 숙고 체계를 통하면 "체중을 줄이겠다"라는 막연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반사 체계의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스크림을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와 같이 X이면 Y다의 형태로 바꿀 경우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곤 한다. "(건강 유지라는) 나의 장기 목표에 비해서 (단 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을 만족시킨다는) 나의 현재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의 중요한 꿀팁을 알려준 책. 이 글을 쓰는데만 해도 반사 체계가 강하게 작동해서 딴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알다가도 모를 나의 뇌란 녀석. 이제 나를 조종하는 존재를 알았으니 나를 더 잘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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