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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비튬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바쁜 삶

EBS <나도 작가다> 3차 응모전

나를 나답게 해주는 바쁜 삶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나를 나답게 해주는 방법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내가 제일 자주 했던 행동은 손가락으로 내가 다니는 학원의 개수를 세보는 것이었다. 태권도, 서예, 미술, 글쓰기, 수학…. 이렇게 하나하나 세어가며, 5개가 넘어가면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매일 7시가 넘어, 아버지 보다도 늦게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다른 식구들은 아버지의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고, 나는 늦게 따로 혼자 먹으면서도 행복했다. ‘아,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살았구나!’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게, 나에게는 열심히 살고 있고, 알차게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가끔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그때, 네 아빠 월급으로 너 학원비 대느라 매우 고생했어. 아빠는 공무원이라 월급 많지 않고, 집 산지도 얼마 안 되어서 이자에 원금 갚았는데, 너는 이것저것 시켜달라고 해서 현금서비스까지 받았었다고” 나는 정말 복 받은 아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나에게, 어렸을 때 피아노 가르쳐 달라고 조르면 부모님께서 돈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내 성향을 이해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께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지금도 꾸준히 바쁘게 사는 걸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현재 30대 중반의 나이에 박사과정 막바지에 있다. 심지어 올해 초에는 결혼까지도 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너무 바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든 걸 결정해야 했고, 많은 업체에서 시시때때로 전화해서 내 결정을 기다리는 질문을 해댔다. 10개월 간의 결혼 준비가 길기에, 미리 다 하고 나중에는 편하게 있자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식 한 달 전에 결정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삼 개월 전에 결정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10개월 동안 결혼식 준비를 한다고 6개월 전에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식이 끝나야 끝나는 문제. 정말로 10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결정을 내렸고, 마지막에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결정을 번복하거나 취소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결정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2월 29일에 결혼식을 올려, 갑자기 식장의 뷔페도 취소되어 마지막 그 순간까지 답례품을 구하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트레스받고 항상 바빴지만, 나는 즐거웠다. 바쁜 게 좋았다. 뭔가 진행되고 있음이 눈에 보였고, 실제로도 게임 깨듯이 하나하나 클리어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바쁘게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요즘에도 코로나-19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고,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새롭게 결혼한 부부들은 제주도나 남해 쪽으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의 한 복판에 있었기에 신혼여행을 못 갔다. 다행히 교수님의 배려로 나는 5일 정도 쉬었지만, 남편은 결혼 전, 답례품을 비롯하여 여러 일을 처리하느라, 신혼여행 기간 내내 밀린 일을 밤을 새우며 일 했다. 신혼여행 기간 나는 새로운 신혼집을 정리하는데 대다수의 시간을 보냈다. 이러다 보니, 결혼 준비를 10개월을 하고도 끝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분명 끝났는데, 일이 끝맺음이 없는 기분. 늘 바쁜 일 끝에는 보상이 있었지만, 이번 결혼식은 보상이 없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고, 결혼식 후에도 코로나-19의 잠복기간 2주일은 마음을 졸여야 하였고, 바쁜 10개월간의 결혼식 끝에 신혼여행이라는 달콤한 여행과 휴식을 보상으로 달려왔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바쁘게 사는 게 나의 삶의 이유이지만, 늘 그 끝에 있는 보상을 원했다. 그렇지만 이번 결혼식은 없었다. 보상 없이 시간이 흐지부지 흘러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도 않고, 끝내지도 않은.. 결혼 전에는 매리지 블루라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 부부에게는 결혼 후 후유증이 심하게 왔다. 둘 다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었다. 박사 졸업. 학위 취득이라는 큰 목표가 있음에도, 이는 너무나도 막연하고 힘든 과정이기에, 결혼식을 기점으로 놓아버렸다. 6개월이 흘렀지만, 이도 저도 아닌 기분. 기운도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할 의욕도 생기기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은 바쁜 삶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비록 결혼 준비로 바빴던 삶은 보상받지 못했지만, 다시 바쁜 삶을 살면서 새로운 보상을 원했다. 나는 바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바쁠 때 가장 공부나 업무의 효율이 좋으며, 생활도 활기차 진다. 지금 준비하고 정리하는 박사논문은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스스로 동력을 얻으려면, 바빠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고민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이 지루한 과정을 때려치우고 그냥 취직을 해야 하는 건지… 그러다 매일 등굣길에 다니던 길에 현수막을 하나 봤다. “상록야학”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학교 가까이에 이사 왔는지 몰랐다. 바로 인터넷을 찾아 교사 모집 상황을 보니, 지난주에 이미 마감이 되었다. 혹시 모르니 담당자에게 문자를 남겼다. “저.. 혹시.. 교사 모집 마감되었지만, 지금 지원 가능할까요?” 다행히, 신입교사 교육이 이번 주부터 시작한다고 오라고 하셨다. 8월은 신입교사 교육의 달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모임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렇지만,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서 힘이 조금씩 나려고 한다. 여태 내가 받고 누려왔던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바쁘게 사는 게 내 삶의 원동력이기에, 이 바쁨이 또 나에게 많은 도움이 주리라. 아직 시작 단계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난 새로 다시 일어나 마지막 학위과정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바쁜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봐야겠다. 그동안 큰 일을 하나 마무리해서 너무 나태하게 지내왔다. 다시 바쁘게 살면서 나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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