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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Apr 25. 2022

자가격리기간 동안의 자가 격려기

방 안에서 보낸 자가격리 일주일

남들 하는 거 거의 못해 보고 살아온 인생에 이변이 일어났다. 남들 다 걸린다는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오한은

일종의 출발 신호였다. 지난 3년간 지긋지긋한 팬더믹 시대를 건너오며 몇 번이나 '코로나에 걸린 거 아니야?' 싶어 겁을 먹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건 진짜구나, 싶은 강하고 확실한 싸함이 몰려왔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감싸 안은 채 보일러를 한껏 올리고, 전기장판 온도를 높이며 확신했다. 상상만 하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구나.  

구비해두었던 자가 키트에 선명하게 그어진 두 줄. 쐐기를 박듯 확인한 PCR 검사 확진. 그렇게 나는 코로나19에 걸렸다. 내 인생에서 이런 메인 스트림에 발을 담근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웬일인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갑작스럽게 집 안으로 들이닥친 역병 손님 탓에 원래 계획해두었던 밥벌이 일정들을 잠시 접어두고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원체 바깥 외출을 잘하지 않는 방구석 프리랜서이지만, 자의로 안 나가는 것과 타의로 못 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 나의 우주인 내 방이 불현듯 너무 좁게 느껴졌다.

숨이 탁 막혔다.   

전화가 걸려오는 곳이라고는      

부모님 뿐이었다. 구호의 음식과 약을 보내주는 사람 또한 근처에 사는 그 두 분뿐이었다. 간단하게 챙겨 먹을 끼닛거리와 과일을 문 앞에 놓고 갈 테니 가지고 들어가라는 엄마의 전화. 스마트폰을 귀에 겨우 갖다 댄 채로 삐꺽삐꺽 몸을 일으켰을 때, 어머니 작사 작곡의 결혼 타령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구절이다.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결혼은 안 해도 되니 대신 니 앞가림은 할 수 있게 돈이라도 좀 벌어라, 로 잔소리의 기조가 변화했었는데 의탁할 곳 없이 역병에 걸린 딸내미를 보니 예전에 그 타령이 떠오른 게다. 우리 죽으면 너는 어쩔 거냐, 아프면 약 사줄 사람이라도 옆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 아직 늦지 않았다, 희망을 갖고 짝을 찾으라, 너의 걱정에 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머니! 반대로 제가 누군가의 병시중만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약이며 밥이며 다 배달할 수 있잖아요, 같은 방어술을 펼치기에는 체력적인 여유가 없었다. 물론 희망적인 자세로 배우자를 찾아보기에도 부정적인 열과 기침이 너무 강력한 상황이었다. 퉁퉁 부은 목으로 겨우, 알겠다는 소리를 무성의하게 던지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조금 들어서 얼른 숨겨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방에서 혼자 아프다 혼자 죽으면 정말 아무도 모르겠구나, 그런.


혼자만의 시간이 잘 맞는다는 건

다행이다 싶으면서, 조금 무섭기도 하다. 혼자 먹는 밥과 혼자 자는 잠, 혼자 벌고 혼자 쓰는 혼자의 삶에 인이 박혔지만, 몸이 약해진 틈으로 괜한 서운함이 파고든다. 이 바이러스가 떠나가면 함께 사라질 잠시의 센체함인 걸 알지만, 그냥 누군가가 괜찮냐고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어리광이 피어오른다. 비극을 상상할 시간이 너무 많이 주어진 탓이다.

이래서 혼자 사는 사람은 늘 좋은 팬티를 입고 다녀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나, 언제 어디서 쓰러져 누군가에게 발견될지 모르니... 그런 주책맞은 가정들을 수십수백 개 부풀렸다 터트렸다 하며 누워있다가 샛 노란 꽃 한 다발을 주문했다. '엄마, 이젠 생화도 배달이 되는 시대라니까'라고 당장 말하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싱싱한 꽃이 도착했다. 고운 빛깔에 꼭 어울리는 '버터플라이'란 이름의 꽃.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작은 우주에 갇힌 일주일을 위로하며 내가 나에게 자가 격려의 꽃을 선물했다.

그래, 아직은 괜찮다. 아마도.

*이 글은 빅이슈 272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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