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팅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언더우드 타자기
연세대 세브란스는 설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의 친형인 존 토머스 언더우드 John Thomas Underwood의 5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5,000억) 기부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큰 돈이 기부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언더우드 Underwood 타자기의 혁신이 있었다. 아래의 사진이 1940년대 제작된 언더우드 타자기이다. 버클리 대학 근처에서 걸어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타자기 전문점에서 실물을 보게 되었다.
언더우드 타자기 이전에는 타자기를 쳐도 어떻게 쳐지는 지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래 사진이 그 이전에 나왔던 타자기이다. 타자를 치면 마치 레이저 프린터가 프린트 다 되고 출력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듯이 그 결과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종이가 수평으로 놓인 상태에서 밑에서 위로 활자가 올라오면서 타자가 되었다. 마치 모니터 없이 문서를 작성해서 프린트 하고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그 당시 타이피스트는 전문직이었다. 보지 않고도 어떻게 글자가 타자되어 나올 지 예상해서 입력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가나 직접 타이프를 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손으로 써가면 타이피스트가 쳐주는 식으로 일을 했다.
이랬던 타자기가 언더우드 타자기가 나오면서 큰 혁신을 갖게 되었다. 타자기가 소수 전문직이 아니라 누구든지 쓸 수 있는 기계가 된 것이다. 이제 작가나 일반 기업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 직접 타자를 치면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혁신으로 모두가 쓸 수 있는 타자기가 된 것이다. 1900년에 출시 된 넘버 5가 현대식 타자기의 원조라고 한다. 1920년대에 200만대가 팔려나가며 업계 부동의 1위가 되었다. 언더우드 타자기는 헤밍웨이도 즐겨썼다고 한다. 1940년대 생산된 제품으로 아래처럼 지금도 타자가 잘 되었다.
불편했던 타자기를 독일계 미국인 Franz Xaver Wagner이 새롭게 혁신했고, 그 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한 토마스 언더우드는 이를 지원하고 결국 회사를 샀다. 이 회사가 성장하고 세계에 퍼지면서 큰 돈을 벌게 되었고 그 돈의 일부가 한국 연세대와 세브란스 병원을 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 13세기 금속 활자를 만든 것은 고려였고, 이 기술은 구텐베르크 인쇄 기술 개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 인쇄 기술은 계속 발전되어 미국으로 넘어가 언더우드 타자기로 현대적인 타자기가 나왔다. 이 제품으로 번 돈은 다시 한국으로 기부되어 연세대학과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어졌다. 800년이 넘게 이어진 동양과 서양의 문명의 합작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