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 발매 40주년 맞아 기념 콘서트
1989년 거리 곳곳 전파사에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들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합창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가요도 아니고 성악도 아닌 노래, 유행가 가사와는 사뭇 다른 강렬한 힘을 가진 노래라 기억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아래 노찾사).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아가던 고등학생의 귀에는 저항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긴 노찾사의 노래가 가슴 뛰게 다가왔다. 전파사 앞에 멈춘 듯 서 '광야에서'를 들으며 알 수 없는 희열앞에 눈물도 흘렸다.
필자가 소위 민중가요를 들은 건 노찾사의 노래가 처음이었다. '사계',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의 가삿말은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향하는 필자의 마음을 마구 두드렸다.
전두환 정권하에 시작된 노래를 찾는 여정
89년 당시 발매된 노찾사 앨범은 사실 2집이었고 1집은 그 존재도 알지 못했다. 노찾사 1집은 1984년 발매되었는데 이때는 필자가 중학교 1학년때였으니 알 턱이 없었다.
2집임을 알고 찾아본 1집은 2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항의 가사는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약간 건전가요 같은 느낌마저 들었지만, 노찾사의 지향점을 알고 들었을 때 이 1집이 전두환의 서슬퍼런 시기에 얼마나 힘들게 세상에 나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노찾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동안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대학가 서점 등에서 유통되던 민중가요를 음반과 공중파를 통해 듣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1989년은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사회는 아직도 억압적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 와중에 노찾사 2집은 비공식이지만 10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간 것으로 기록됐다. 90년대 대학가 민속주점에서는 노찾사의 노래가 당연히 흘러 나왔고, 기타를 들고 노찾사의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 것은 그 당시 당연한 풍경이었다.
1집 음반 발매 40주년, 2일과 3일 기념 콘서트 '1984-40-2024' 개최
우리나라 한국 운동가요의 대표적 상징이 된 노찾사가 1집 음반 발매 40주년을 맞아 2일과 3일 양일에 걸쳐 기념 콘서트 '1984-40-2024'를 개최했다.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이번 콘서트에서는 사계,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그루터기,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등 노찾사의 대표곡과 신곡들 일부가 선보였다. 한동헌 노찾사 대표도 노래를 불렀다.
1989년 발매된 노찾사 2집 수록곡인 '오월의 노래'를 불렀던 가수 최문정이 다시 이 곡을 불렀다. 80년대 광주의 청춘, 세월호 참사 때 별이 된 아이들,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를 바쳐 큰 박수를 받았다.
게스트로 출연한 권진원, 윤선애, 조경옥, 김창남 등이 노찾사의 대표곡과 당시 사랑을 받았던 운동가요를 불렀다. 노찾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노찾사의 열성 팬들,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공연실황 음원 등 미공개 음원을 담은 특별 LP '노래를 찾는 사람들 1.5' 와 20주년 기념 도서, 노찾사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한정판 포스터도 눈길을 끌었다.
노찾사의 노래는 단순히 노찾사와 운동권 세대들만의 노래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래를 무기로 삼았던 저항의 상징, 나아가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을 끼쳐 운동권 가요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중화에 성공했다.
노찾사의 노래가 40년이 되었지만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